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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주 Jul 12. 2021

현대적 생활패턴

과거적 사고

사진에 담긴 어렸을 때의 나의 모습을 보면 손가락이 스치기만 해도 펑하고 터질듯한 빵빵한 두 볼과 아래로 겹겹이 쌓인 턱이 끈에 묶여있어 날아가지 못하는 헬륨 풍선 같았다. 거기엔 눈물겨운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늦둥이 막내로 태어난 나는 엄마의 젖이 부족해 우유를 먹고 자랐다. 그 당시 우유가 무척 귀했기 때문에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아가 몸무게를 재고 적당한 양의 우유를 타다 먹었다. 첫돌이 지나기도 전에 병원에서는 내가 몸이 실하다는 이유로 우유 배급을 끊고 이유식 하기를 권했다. 그러자 유모는 나보다 몇 달 먼저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삐쩍 마르고 엉덩이 살이 없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이웃집 아이를 대신 데리고 가서 우유를 타다 먹였다며 집안 어른들이 회상하며 웃곤 했다. 


아이가 곧 터질 것 같다는 야유에도 우리 집에서는 그저 내가 토실토실해 건강해 보인다는 이유 하나로 만족하셨다. 오히려 젖살은 곧 빠진다고 걱정하시며 두 살이 넘도록 남의 아이를 데리고 가서 꾸준히 우유를 타다 먹여주셨다고 한다. 그 덕분에 나는 항상 통통하고 뽀얀하니 건강해 보였고 누가 보아도 부잣집 딸인 양 부티가 흘렀다며 환하게 웃으셨다. 가난함 때문이었을까? 과거에는 살찐 것이 부유함과 풍성함의 상징이었다. 아이가 퉁퉁하면 “돼지”라 부르며 복이 있다고 생각했고, 대장부 감이라는 덕담으로 마른 아이보다는 식성이 좋고 몸이 큰 아이를 선호했다. 또 나이가 들어 몸이 부는 것을 인격이 있어 보이고 삶의 여유가 있어 보인다며 지금도 살이 좀 있는 편이 좋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누구나 하는 이야기지만 과거 우리나라의 식생활은 일반적으로 기본 식단이 단백질과 기름보다는 야채와 탄수화물 위주였다. 가정에서 고기를 먹는 기회가 적었고 흰쌀 밥보다는 조, 보리, 수수 등을 섞은 잡곡밥을 먹었고 학교에서도 혼식을 권장했다. 또한 사회활동도 육체적인 움직임을 요구했다. 버스를 타고 학교나 직장을 가기 위해 아침마다 걷고 뛰어야 했고 식사 준비를 위해서도 매일 동네 시장까지 걸어갔다 와야 했기 때문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환경이었다. 아이들은 아빠의 담배를 사 오는 것부터 엄마가 깜빡 잊고 사 오지 못한 두부, 파, 고기 등을 뛰어가 사 와야 했다. 심부름에서 챙긴 잔돈푼을 들고 소위 불량식품이라는 “뽑기”를 하기 위해서도 골목을 또 뛰어나가야 했다. 하루 종일 뛰어다니며 온 동네의 먼지를 뒤집 쓰고 노는데 정신이 팔려 벌겋게 달은 아이들의 얼굴 위로 검은 먹줄을 그으며 흘러내린 땀자국과 시큼한 냄새가 잠이 든 후에까지 고단했던 하루를 역력히 들어내는 자치기, 말타기, 술래잡기와 같은 놀이를 하며 뛰어놀았다.  


우리의 현대 환경은 고기위주의 기름진 음식이 식생활의 주를 이루게 되었고 주변에 흔한 인스턴트 음식과 패스트푸드는 우리의 입맛을 바꾸어 놓았다. 자가운전으로 걸을 기회가 줄었으며 에레베이터의 사용으로 계단을 오르내릴 일도 없어졌다. 아이들의 놀이도 손과 눈만 움직이면 되는 컴퓨터 게임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러나 문제는 현대 생활패턴의 변화만큼 우리의 사고와 신체적인 변화가 빠르지 않다는 것이다. 소량으로 다량의 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게 되었고 신체적 활동이 덜 필요한 환경으로 변화되었으나 우리는 과거와 같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다. 


많은 부부가 모두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을 하는 요즘 전 같은 가정식 중심의 식생활 방법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또한 사회생활로 바쁘다 보니 부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해주고 있다고 자책감이 들거나 자녀가 잘한 것을 칭찬하기 위해서도 흔히 쉽게 먹는 것으로 보상을 한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입에 좋은 음식이나 돈으로 자녀를 보상하기보다는 함께 나가서 산책을 하거나 자연학습과 같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 활동을 통해 엄마 아빠와의 질 높은 시간으로 보상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거리에서 뛰어놀던 놀이가 바뀌더라도 컴퓨터 게임도 손동작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현실 속에서 온몸을 움직여야 뛰어야 하는 게임이나 가상여행 등으로 바꾸어야 한다. 또한 자녀의 입맛이 기름지고 해로운 음식에 길들여지기 전에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적 생활에 맞는 생각으로 올바른 식습관을 키우는 것이 좋다.


이 글은 2003년 1월 22일자 미주 중앙일보에 게재되었던 내용을 일부 발췌하고 새로운 통계와 정보로 업데이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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