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임 아닌 허용
나는 궁금하면 늘 물어보고 관심이 있으면 직접 해보는 성격이라 늘 바쁘게 산다. 장애가 있어도 "남이 하는 것은 나도 분명히 할 수 있고, 남이 못하는 것은 나는 시도라도 해볼 수 있다"라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대한다. 하지만 혼자 바삐 사는 나에게 잘한다고 말을 해준 사람도 없었고, 학교 공부를 못하지도 않았지만 남다르게 잘하지도 않으며 그냥 관심 있는 일에 몰두하는 스타일이다. 대학 졸업 후, 특수교사로 근무를 하면서 더 알고 싶은 것이 생기자 대학원을 다녔고, 더 연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자 5년간의 교사생활을 접고 유학을 선택했다.
미국에서는 같은 전공이라도 대학마다 졸업하는데 필요한 이수학점이 다르다. 어느 대학은 3년에 논문까지 쓰고 박사를 끝낼 수 있는가 하면, 필요한 수업만 듣는데도 꼬박 3년이 걸리는 학교도 있다. 나는 미네소타 대학에서 제공하는 많은 과목들에 정신이 팔려버렸다. 박사과정 이외에도 영문과의 영어과목을 들었고 생물, 물리, 과학 수업도 들었으며 컴퓨터 프로그램과 통계에 빠져 살았다.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되니 다양한 과목을 들을 수 있는 미네소타가 천국이었다. 한 학기에 20학점 이상을 듣기도 했고 결국 학위에 필요한 학점의 두배 이상을 들었다. 나를 잘 아시는 한 교수님께서 왜 수업에 왔느냐고 첫 시간에 물으셨다. 나는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라고 답하자 그분은 학위를 먼저 끝내라고 하셨다. 그분의 조언으로 정신을 차린 나는 7년 만에 공부를 끝낼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박사를 끝내고 나면 일반적으로 교수 종신계약 (Tenure) 트랙이란 조건의 조교수로 직장을 잡게 된다. 조교수가 되면 매년 교수평가를 해서 재계약을 하다가 6년이 될 때 종신계약과 함께 부교수로 승진을 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소위 말하는 철밥통이 된다. 그 후 또 6년이 지나 면 평가를 통해 정교수로의 승진이라는 당근이 기다리기는 한다. 남들은 3년이나 5년 만에 박사를 마치고 교수들이 되었는데 나는 미네소타에서 7년을 노느라 남보다 늦게 교수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 놀던 생활은 다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있는 두 가지의 좋은 기회를 주었다. 하나는 조교수를 건너뛰고 바로 부교수로 임용이 되었고 4년만에 정교수로 조기 승진이 된 기회였다. 다른 하나는 공부만 한 친구들보다 나는 연구기획과 계획서 작성방법을 배운 기회를 가졌던 것이다.
얼마 전 자신의 아이에 대해 걱정을 하던 동료 교수가 나에게 평가를 부탁했다. 꼬마는 4살인데 양손을 쓰는 것 같기도 한데 한쪽 손을 잘 안 쓰고, 왼손 오른손을 잘 모르는 것이 문제이며 몇 년째 작업치료와 언어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요즘 줌(Zoom)으로 하는 때라 편안하게 꼬마가 움직이는 것을 보기 위해 나의 수퍼독 도우미견을 사용하기로 했다. 왼쪽으로 돌고 오른쪽으로 돌고 배꼽인사, 왼발로 하이파이브, 오른손으로 하이파이브 (솔직이 내가 봐도 넘 귀엽다!!!)를 하게 하고 도우미견의 동작을 꼬마에게 엄마와 함께 해보라고 하자 "한다!" 우와! 4세니까 어른만큼 정교한 동작은 아니지만 팔 근육의 기능이 좋은 것이 아닌가! 내 말을 다 알아듣고 왼쪽 오른쪽으로 돌고 90도 배꼽인사까지 하니 언어 이해력도 좋고 움직임도 문제가 없다. 치료를 무료로 해준다니 조기 천재교육받는 기분으로 계속 받아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교수는 자기 아이에게 문제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며 도우미견을 이용해 아이가 거부감 없이 평가에 참가하게 한 나에게 "똑똑하다"는 말을 했다. 교수가 며칠이 지나 아이의 사진을 보냈다. 음식을 왼손으로도 먹고 오른손으로도 먹는 장면이었다. 나는 양손잡이가 뭐 어떠냐며 나도 양손을 쓴다고 했다. 근데 난 완전 양손잡이는 아니다. 어떤 것은 왼손으로, 어떤 것은 오른손으로 한다. 화투엔 완전 왼손잡이다. 그 친구는 자신도 양손잡이였는데 어렸을 때 부모님이 오른손을 강요했다고 한다. 우리 가족은 너무 바빠서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이 없었고 혼자 맘대로 했다고 무심하게 말을 했다. 그때 그 친구는 "아! 그래서 창의적이구나"라는 글을 보냈다. 순간 깨달았다. 엄마였구나!! 엄마의 무심타 교육법이 나에게 흥미로운 것을 끝까지 추적해 보고 잘못된 것은 왜일까 생각에 생각을 해서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허락하는 동안에 내 안에 있던 창의성이 몸집을 불리고 있었던 것이다.
캐프리(한국명:김개뿔)이는 도우미견 기관에서 훈련받고 졸업한 전문 조교로 유튜브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c/SuperDog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