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군과 을군없이 "우리"가 될 때까지...
내가 교사로 재직하던 특수학교에는 다양한 장애학생들이 다니고 있었지만 가장 큰 두 그룹이 있었다. 한 그룹은 소아마비로 근육의 움직임이 마비된 학생들로 마비된 부분 외에는 정상적인 학생들이었고 다른 그룹은 뇌신경계의 마비로 복합적인 장애를 보이는 뇌성마비 학생들이었다. 뇌성마비를 가진 학생은 편차가 심해서 머리는 명석하지만 의사소통과 움직임에 어려움을 가진 학생도 있고 말도 잘하고 움직임이 크게 마비가 없더라도 공부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도 있었다. 한 반에 십여 명의 학생만 있어서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서로 도와가며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학교였다. 그런데 어느 날 너무도 놀라운 노랫소리가 들렸다. "Are you sleeping, are you sleeping, Brother Joe"라는 영어동요를 소아마비학생들이 "Are you CP, are you CP"라며 뇌성마비(CP: Cerebral Palsy)를 가진 친구들을 놀리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자라 가는 과정에서 가까운 친구에게 장난기 있게 놀리는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끼리 자기보다 좀 더 장애가 심한 사람을 놀리는 것이 너무도 안쓰러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곤 했었다.
그 후 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 그중에 하나가 휠체어 농구를 시작한 것이었다. 내가 루키로 뛰던 첫해에 우리 팀이 힘과 기술이 뛰어난 일리노이 주립대 소속 팀을 이기고 미 전국 챔피언을 하는 바람에 지금까지 챔피언쉽 반지를 간직하고 있다. 여자 휠체어농구 챔피언쉽 경기는 미국 남자 대학(NCAA)의 4강 경기인 파이널 포 (Final Four)가 치러지는 도시에서 같은 시기에 같은 농구장에서 치러진다. 파이널 포 경기는 NBA 프로농구로의 입단이 결정되는 중요한 경기라 미국 전역에서 관심이 있는 중요한 스포츠 이벤트이다. 물론 휠체어 결승전은 파이널 포와 같은 도시, 같은 경기장, 같은 기간에 치러지지만 파이널 포와는 달리 신문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조그만 지면에 소개될 정도로 미미한 경기이지만 선수들의 마음 준비는 파이널 포에 밀리지 않는다.
우리 팀은 휠체어 농구의 결승전이 다가오기 한두 달 전부터 연습시간 전후로 경기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 위해 근육 완화를 돕고 마음의 평점심을 찾는 명상시간이 시작되고 선수들 모두 다 피땀을 흘리며 연습에 임했다. 토너먼트 1주일 전에는 모든 선수들이 코트에 모여 휠체어를 분해하고 닦고 조이고 기름을 칠하며 최상의 컨디션을 만드는 것이었다. 우와! 진짜 가슴이 뛰었다. 세상의 모든 운동선수들이 결승전을 준비할 때 바로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토너먼트 3일 전에 우리 팀은 비행기를 타고 결승전이 벌어질 캔자스시에 도착을 했고 매일 농구장을 찾아 연습을 하며 마지막 점검을 했다. 결승전 하루 전날 밤에 우리 팀의 최고 선수는 결승전에 입을 유니폼을 꺼내어 곱게 다리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몸과 마음을 다해 준비한 결과 결승전에서 우승을 했고 미네소타로 돌아와 미식축구 개막식 날 우리는 축구장에 내려가 직접 우승반지를 받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그 후 나는 미네소타 장애인 단체에서 제공하는 휠체어 테니스, 수영, 골프, 승마, 스키등 다른 운동종목들을 경험하기 위해 루키였던 한 해 동안의 화려했던 휠체어 농구에서 은퇴(?)했다.
전국 챔피언이라는 정점까지 경험하게 된 휠체어 농구는 나에게 두 가지를 깨우치게 했다. 첫 번째는 장애인들이 남이 어떻게 보던 본인이 선택한 활동에서 최선을 다하고 자부심을 갖는 모습이 너무 신선하기도 했고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놀랍기도 했다. 내가 살던 6-70년대의 우리나라에서 나에게는 누군가 비장애 사회인이 암묵적으로 정해진 "을"의 역할이 주어졌고 나는 장애인으로서 이기려는 욕망을 드러내기보다는 스스로 포기하고 "내 주제에 뭘"하는 자조감으로 눈에 보이지 않은 사회의 기대치를 충실하게 살아냈었다. 그런데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찾아주는 관중도 없이 우리만의 게임을 너무도 진지하게 준비하고 최선을 다해 승리를 기원하는 모습은 스스로를 초라하게 생각해야 했던 나를 깨우쳤다. 남의 시선보다도 내가 좋아해 선택한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며 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번째 점을 말하기 전에 여기서 팁 한 가지! 휠체어 농구는 일반 농구와 똑같은 넓이와 골대의 높이를 그대로 사용하고 규칙도 거의 같다. 좀 다른 것이 있다면 선수들의 장애정도에 따라 1~4.5 사이의 8등급을 정하고 경기 중 플로어에 뛰는 선수 5명의 합한 등급이 14점을 넘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선수 등급을 정하는 것이 불편한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아주 좋은 장치인 것이다. 왜냐면 낮은 점수일수록 장애가 심한 선수인데 14점이라는 합계는 농구와 같이 격렬한 운동에서도 장애가 심한 사람들의 위치가 중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장애가 경한 3 사람이면 13.5점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세명으로 다른 팀의 5명과 경기를 치르는 것도 불리하지만 무엇보다도 규칙을 어기기 때문에 그렇게 팀을 짤 수가 없다. 다양한 장애등급의 선수를 적절한 시기에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장애가 심한 1~2등급의 좋은 선수를 가지고 있는 팀이 유리하게 된다. 그러니 등급제는 훈련에서도 실전에서도 장애가 심한 사람들의 위치가 게임 결과를 결정하게 되는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기준이 되어 장애인 안에서 나보다 못한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규칙인 것이다.
내가 자랄 때 우리나라에도 차별하지 않고 나보다 못한 친구를 배려하는 법칙이 있었다. 바로 "깍두기"규칙이었다. 좀 부족한 사람은 이 팀에도 저 팀에도 동시에 속해 게임에 참여했었던 것이다. 나는 줄넘기나 말뚝박기, 닥싸움등 동네 남자아이들하고 어울려서도 다 참여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깍두기 규칙은 부족한 사람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실전연습을 통해 실력이 향상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좋은 규칙이다. 그리고 보니 우리나라가 고속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소중한 뭔가를 잃고 가는 것은 아닐까? 가진 사람이 덜 가진 사람을 무시하고 장애인 간에도 "덜장애인"이 "더장애인"을 구분 짓기도 한다. 요즘 사람들과 많은 미디어에서 심한 경쟁으로 내몰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을 한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 조금만 돌아보면 좋겠다. 우리의 따뜻했던 인간미가 넘치던 그 느낌을 잊기 전에 또 더 찾아서 소외되고 약한 친구를 돌아보는 일을 나부터 실천하고 사회복지에서도 누구에게나 똑같이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평등성(Equality)의 사고에서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는 공평성 (Equity)의 개념으로 복지의 기초를 설정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