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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주 Jul 14. 2023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전환교육 아시죠?

멀리 희미하게 들리던 사이렌 소리가 점점 우리 집 쪽으로 다가오며 어두운 밤의 정적을 깨는 요란한 소리로 변해 덜덜 떨고 있는 내 몸속으로 울려 퍼졌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엔가 벌써 건장한 남자들이 집안으로 들어와 빠른 동작으로 중태에 빠지신 엄마를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허둥지둥 병원에 도착해 보니 이미 연락을 받은 오빠들과 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몸이 불편한 나를 위해 어떻게 해서라도 건강히 오래 사시며 평생 내 뒷바라지를 해주신다던 약속을 뒤로하시고 엄마는 그날 저녁 그렇게 내 곁을 홀연히 떠나셨다. 늘 나 때문에 눈을 감으실 수 없다던 엄마의 말, 유학 중에 서울을 방문할 때마다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 손질해 주시던 옷, 나이가 들어서도 편식으로 입에 대지 않는 음식은 이미 알아서 다 제외한 맛깔스러운 아침상, 아직도 동이 트지 않은 새벽에 시간차로 잠을 못 이루고 있던 나에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건네시던 엄마의 모습과 목소리가 지금까지 머릿속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특히 장애아 부모를 대상으로 교육을 할 때마다 우리 엄마와 똑같은 말과 똑같은 행동을 하시는 부모님들의 모습에서 우리 엄마는 내 마음속에 늘 새롭게 되살아난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죽기까지 자녀를 위해 최대한 뒷바라지를 해 주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사랑의 마음이다. 그러나 그 순수함에 기초를 둔 부모의 고귀한 마음이 의도와는 다르게 자녀의 앞길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노파심으로 바뀌도 자녀를 통해 이루지 못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욕심으로 변질하곤 한다. 부모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자녀가 원하는 것을 하며 독립적 사회인으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끌어주되 자신의 방향이 아닌 자녀가 스스로 원하는 방향을 찾도록 자유를 주어야 한다. 모든 일을 대신해 주고 한없이 돈과 명예를 대신 벌어다 주는 맹목적인 사랑이 아닌 자녀들이 스스로 해보고 성취감을 느끼고 경험을 쌓게 삶의 바탕이 되도록 도와야 한다. 부모는 자녀가 힘들어할 때 위로와 격려로 재 충전할 수 있는 정서적인 디딜 언덕이 되어주면 된다. 특히 장애가 있는 자녀는 성인이 되기 전에 가정생활, 자립생활, 사회생활 능력을 갖도록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는 일이다. 그동안 많은 부모교실을 통해 나는 전환교육의 의미와 어떻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장애자녀를 위한 전환교육인지를 알려왔다. 강의 후에 자녀를 위한 부모의 행동을 냉정하게 생각해 봤다는 한 부모의 글은 진정한 자녀교육의 산 지침이었다. 그의 글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아프지 말고 오래 살아야 한다 
 그래서 아이를 돌봐야 한다 
 나를 희생해서라도 힘자라는 데 까지 아이를 보살피리라”

그런 갸륵한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데 
 이제 그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차피 나는 아이보다 먼저 죽을 텐데…
 내가 없을 때 아이는 어떻게 살까를 생각해 보니까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애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으니까요…

안되니까 대신해 주고

바쁜데 아이가 빨리 못하니까 대신해 주고 
 사랑스러우니까 대신해 주고 

그러다 보니 애는 마냥 아린아이이고 의지만 하려고 하고 
 큰일이더라고요. 

이제 냉정하게 다시 생각하기로 했어요 

내가 없을 때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라도 더 가르쳐야겠다고요 이것이 바로 전환교육인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네요.     

                                                                                                                - 석이엄마


이 부모의 깨달음은 그동안 전환교육을 알리고 다니던 나에게 깊은 감동을 가져왔다. 진정으로 많은 부모들이 의도와는 달리 자녀의 학습기회를 가로막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지나친 도움과 간섭은 자녀와의 갈등으로 비화되고 문제행동을 더욱 키우게 될 뿐이고 궁극적으로 자녀가 성취해야 하는 사회생활 능력을 배울 기회도 박탈하게 되고 자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눈을 가리게 된다. 다시 한번 자녀를 향한 사랑의 마음이 어떤 행동으로 표현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그리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좋아하는 일을 잘 할 수 있게 되도록 연습할 기회를 많이 제공하여 스스로 비상하는 기쁨을 선물하도록 해보자.



이 글은 2002년 5월 31일 미주 중앙일보에 게재되었던 글을 새롭게 다듬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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