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력의 재발견
2009년 제주도에서 제22회 아시아 지적 장애인 컨퍼런스가 있었다. 나는 기조연설자 중의 한 명으로 미국의 특수교육 현장을 들려주기로 했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참여를 하였다. 그때부터 아마 나의 노년기가 시작된 것 같다. 나도 모르지만 조직위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제자며 후배들이기에 미국에서 오랜만에 온 나를 보면 한국적 정서에서 예의상이라도 하던 일을 멈추고 한 번의 대화라도 해야 하고 이것저것 챙겨주어야 할 텐데 그것이 민폐란 생각에 스스로를 창살 없는 호텔방 감옥에 감금시키고 내가 발표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온 것을 안 몇몇 제자들이 방으로 드나들기는 했어도 그들은 대회 운영진은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는 노화가 시작되어 나의 새로운 처신이 시작되었다. 후배들과 제자들을 앞장 세워 스스로 해내는 경험을 통해 배우게 해야 한다는 새로운 신념이 생긴 것이었다. 그곳에는 내가 존경하는 정년을 하신 지도 오래된 노신사 교수님이 계셨다. 그분은 국제행사의 전체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운영진을 진두지휘를 하시면서 노익장을 과시하시는 그 모습도 내 눈에 좋아 보였다. 나이가 든 후라도 저렇게 나서서 이끄는 분도 있고 나처럼 앞에서 끌던 자세를 뒤에서 미는 자세로 전환하여 내 눈에 좀 부족해 보여도 후배와 제자가 땀구슬을 흘리며 배우는 과정을 응원하는 기쁨조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영어로 발표하라는 운영진의 주문에 따라 버벅대는 영어로 어떻게 해야 장애학생들이 학교를 떠나 일반사회로 순조롭게 전환할 수 있는가 하는 주제를 가지고 설명했다. 전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미국의 사례를 예시로 들어가며 장애학생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의 개발과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강조해 강의를 했었다. 미국에서는 경제활동이 어려운 장애인들도 기본적으로 살 수 있는 복지혜택을 주고 있으며 주택마련, 다양한 사회활동 프로그램, 직업훈련, 사회성 교육, 대학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등이 있다고 비디오를 보여주며 설명을 했다. 또한 미국에서 어떻게 그러한 발판이 세워졌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 나가고 있는지도 설명을 했다. 아시아 국가의 현실과 미국의 현실을 비교하며 개발도상국가이던 선진국가이던 미래에는 어떤 방향으로 장애인 교육과 복지가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나름 조리 있게 발표를 했다. 나는 발표를 끝내고 인도에서 온 청중에게 질문을 받았다. 시간상 많은 질문을 받을 수는 없었으나 아주 핵심을 찌르는 중요한 질문도 있었다.
그중에 몇몇 질문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미국은 시민들의 장애인식도 좋고 경제력이 받쳐주는 데다가 훌륭한 리더들이 있어 늘 보다 나은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지만 인도에서는 지도자가 없어 제도를 만드는 일도 실질적인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도 쉽지 않은데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분이 질문한 내용이 맞는다는 말로 대답을 시작했다. 미국은 어느 정도 다 수립이 되어있고 수많은 지도자들이 있어 따라가는 것이 쉬운 것은 사실이라고 그분의 실정의 어려움을 동감했다. 그래도 나는 그 문제에 대한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 내 대답의 핵심이어야 했다. 큰 도움은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 그분의 나라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리더십이 있고 특수교육의 미래를 이끌어 가는 사람이 보이면 그 사람과 연대를 하고 함께 일을 하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둘러봐도 주변에 리더가 없으면 바로 당신이 깃발을 높이 들고 나를 따르라 하며 리더가 돼야 한다라고 답을 했다. 누군가는 시작을 해야 한다. 컨퍼런스에 참여하기 위해 그 먼 한국까지 온 열정을 가진 그 사람은 이미 내 눈에는 리더였기 때문이라고 얘기해 주었다.
지도자는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지도자이고 리드를 할 사람이 주변에 없을 때는 당연히 내가 리더가 되어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 핵심이 있다. 하나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도 과소평가도 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따라 남의 지시를 따르기도 하고 내가 남을 이끌기도 해야 하는 역할을 과감히 받아들여 지도자의 역할을 성심성의껏 충실히 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스스로의 능력을 인정하기 않기도 하고 어느 때는 지도자라는 역할을 맡으면 일을 더 많이 해야 하기도 하고 일에 몰입하여 자신을 버리기도 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나기가 어렵다. 하지만 누군가 꼭 해야 한다면 그게 바로 당신이면 좋겠다.
두 번째는 리더를 하면서 같이 일할 동료를 모으기도 해야 하고 그들을 격려하고 도와야 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차세대 리더계발에 힘을 써야 한다. 지도자로서 힘들여 일을 해서 공이 쌓이다 보면 쌓인 자산을 뒤로하고 떠나는 것도 힘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내가" "우리가" 쌓아 놓은 공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능력 있는 사람들을 찾기가 어렵고 가능성이 있는 젊은이들이 있더라도 미덥지 않아 떠나지 못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지도자들이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미래는 미래의 사람이 주도해 나갈 수 있게 차세대 지도자를 교육하고 믿어주어야 한다.
다른 한 사람은 내가 정부의 높은 관리자라면 장애인을 위해 어떤 일을 해주겠느냐고 물었다. 내 대답은 "나는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입니다"였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고 했다. 바로 나에게 투표를 해서 나를 대통령 자리로 보내주어야 한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와 1970년도 초에 장애인 부모가 중심이 되어 장애인을 위한 공교육을 의무화했고 그들이 성인이 되어서 일반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본복지를 완성해 나갔는데 그들의 큰 힘은 바로 정치적인 힘을 키우면서 가능해졌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케네디 대통령의 누나인 로즈메리 케네디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케네디가에서 장애인 잇슈에 큰 관심을 보였다. 전 세계적으로 지적장애인들의 축제인 스페셜 올림픽이 케네디가에서 시작되어 현재는 지적장애인들의 전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장애인 복지를 위해 싸우는 분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중에 장애인 본인이 싸우는 분들도 많다. 나는 그분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30년 전부터 싸워왔던 그 모습 그대로 그 전략 그대로 싸우고 있는 것은 바뀔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차세대 지도자들과 현재형 싸움과 미래형 싸움의 전략을 싸면 더 좋을 것 같다. 미국의 장애인 교육과 복지는 장애를 가진 자녀들의 부모님들의 힘으로 이루어냈듯이 한국의 X세대 M세대 젊은 부모님들이 과거의 부모님들과는 다르게 "권리주장"을 하신다. 참 잘하신다. 미국의 운동과 한국의 운동이 좀 다른 면이 있다면 미국은 체계변화를 좀 더 중심이 두었다면 한국은 역시 정이 많은 나라여서 그런지 사람 간의 갈등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줄사람과 받을 사람과의 전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칼자루를 쥔 사람들이 소외계층이나 약자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야 한다. 그런데 내 생각은 그 문제의 해결책은 역시 교육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을 받은 후에 이성적 판단을 하는 사람이거나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성장을 하겠지만 그래도 어려서부터 시민정신을 배우고 함께 사는 세상을 꿈을 꾼다면 시간이 흘렀을 때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보인다.
특수교육은 장애학생을 가르치는 학문이라는 개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 학생을 포함한 모든 학생 개개인의 좋아하는 것과 재능을 고려한 개별화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며 누구나 최대한의 교육적 성취를 이루기에 필요한 도움을 주는 교육을 의미한다. 그래서 특수교사와 장애학생의 부모는 교실 내에서 장애학생의 교육과 행동지원 방법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특수교육의 반을 사회교육을 통해 일반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데 할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