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쿠키 153
가난하면
가난하면 불편한 것이 참 많아요. 남들이 먹고 입고 사는 것과 다르게 생활해야 하는 것도 불편하지만 무엇보다 친구나 형제도 멀어지게 되는 것이 속상해요. 형제들도 어느 정도 균형이 맞아야 서로 어울리고 나누고 하는데 어느 한 형제가 너무 가난하면 그 형제 스스로가 함께 어울리는 것에 대하여 부담을 느껴요. 만나는 것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도 있고 도움을 받는 것도 마음의 짊이에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활동 범위 넓어져서 친구가 많아요. 마음의 여유가 있으니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나눔도 하며 만나는 사람들이 다양해지고 점점 더 많은 경험을 쌓아가요. 기회가 더 많아지고요. 부익부 빈익빈이 그런 것 같아요. 돈이 돈을 벌고 있는 사람에게 기회가 많은 것이 자본주의가 아닌가 싶어요.
저는 가난한 농부의 둘째 딸로 태어나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지 못했어요. 경쟁하던 친구들은 모두 고등학교에 진학하는데 저는 고등학교에 갈 수 없는 것이 정말 속상했어요. 결국 언니의 도움으로 서울에 올라와 고학으로 공부를 했으나 한계가 있어 결혼이라는 도피처로 숨었어요. 가난의 꼬리는 길게도 저를 따라왔고 결혼 후에도 10여 년 동안 열등감으로 외부와 차단하고 살았어요. 가난하면 형제도 멀어진다는 것을 그때 알았어요. 가난한 것이 죄는 아닌데 마치 죄인처럼 숨어 살았어요. 저의 초라한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이 싫었으니까요.
지금은 부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난한 것도 아니고 숨어 살지도 않아요. 여전히 시장표 옷을 즐겨 입어도 당당하게 살 만큼 마음이 단단해졌어요. 혼자 사시는 어머니(89세)께 수시로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을 택배로 보내요. 어머니는 택배를 받을 때마다 ‘네가 이렇게 살 줄을 누가 알았겠냐 고맙다. 그런데 택배비 많이 들어서 어쩌냐’ 하시며 울먹이세요. ‘저 이제 택배비 걱정 안 해도 될 만큼 살아요. 저도 이렇게 사는 날이 있네요.’ 하며 깔깔 웃어요. 어머니는 저의 웃음소리에 같이 따라 웃으며 밝아지세요. 부자도 아니고 가난하지도 않은 지금의 삶을 감사해요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날 부하게도 마옵소서’라는 아굴의 기도가
저의 기도가 되는 아침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