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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Feb 12. 2023

미움받을 용기를 타고난 사람이 있을까?

나로서기 조건

동생과는 서로의 삶의 무게가 무거워 1년에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고 살았던 세월이 길었어요

정말 길었어요

유년시절에는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씩씩하고, 용감해서 인기가 많았던 동생

결혼해서도 돈을 잘 벌어다 주는 신랑 만나 행복하게 사는 줄 알았던 동생

그 동생이 갑상선 암으로 수술하고

기형으로 자라는 갈비뼈를 하나 잘라내고

(잘라낼 필요가 없었는데 의사의 과잉진료라는 사실을 수술 후 알게 됨)

 긴 시간 우울증 증상으로 사람을 만나지 않고 고립되어 외톨이로 살아왔어요

그런 동생이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이사 오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어요


20대 초반 경기도 부천에서 함께 자취할 때

병약해서 항상 보호받는 존재였던 저를 대신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것을 불평 없이 잘해주었는데

지금은 전혀 다른 아이가 되어 있어요

손발이 차가워 항상 장갑을 끼고 다니고

30분 이상 차를 타는 것이 어려워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사람 만나는 것이 싫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요


그런 동생과 한 시간을 통화했어요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하다가

언니는 태어나면서부터 미움받을 용기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하고

자기는 엄마가 태몽으로 예쁜 고구마 세 개를 치마로 받는 꿈을 꾸었는데

첫째가 아들이었는데 돌이 지날 무렵 홍역을 앓다 죽었고

큰 언니와 둘째 언니가 태어났으니 세 번째는 당연히 딸이라고 생각했는데

낳아보니 또 딸이라 출산해서 이불을 덮어 놓고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처럼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들어와 들춰보니 그때까지 살아있어서

살 운명인가 보다 하고 그때야 젖을 물려 살리기는 했지만

딸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 사랑받지 못한 존재였고

자기는 끊임없이 사랑받기 위해 잘 보이려고 노력하다 보니

성인이 되어서도 내가 나로 살지 못하고 

항상 남편에게 잘 보이고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로 보이고

집도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쓸고 닦고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살아왔다는 것을 나이 60이 넘어서야 알았다는 거예요


문득 미움받을 용기를 타고난 사람이 있을까? 궁금했어요


동생과 통화를 끝내고 정말 제가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고 태어났는지 생각해 보았어요

그리고 저에게는 미움받을 용기가 아닌 견뎌내는 힘(그릿) 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어떻게 견디는  힘이 생겼는지 생각해 보니

병원도 없고 약도 쉽게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허약하게 태어나 수도 없이 잔병치례를 하며

통증과 괴로움을 참아내고 또 참아내다 보니 참고 견디는 그릿이 생긴 것 같았어요


저의 첫 기억은 

하얀 눈이 무릎을 넘기게 온 날

멸치 한 마리 먹었다 급체해서 축 늘어져 있는 저를 업고 

힘겹게 병원을 향해 가시던 아버지의 등에서 가물가물 의식을 잃어가며

바라보았던 끝없이 펼쳐진 눈밭이에요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일찍 등교해서 교실문을 열다 

문짝이 왼쪽 엄지발가락 위로 떨어져 엄지발톱이 두 동강이가  났는데

신고 있던 스타킹을 벗어 칭칭 감아 지열을 하고

절뚝거리며 수업을 다 마치고 집에 왔어요

남자애들은 그런 저를 놀렸고 

여자친구들은 화장실에 갈 때 손을 잡아주었는데

선생님은 왜 그러냐고 묻고 다쳤다고 했는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은데

그때는 그랬어요


가장 가슴 아픈 기억은

초등학교 4학년 겨울이 시작되는 늦가을

읍내에서 삼촌 결혼식이 있어 모두 결혼식에 가는데 

저는 볼이 퉁퉁 붓고 몸이 불덩이라 가지 못하고 혼자 끙끙대고 있었어요

고열이 나면서 의식이 가물거리는데 누군가 어머니를 찾았어요

삼촌 결혼식에 갔다고 했더니 너는 왜 안 갔느냐고 방으로 들어오셨어요

(요즈음 같으면 성폭행이 일어나고도 남을 것 같아 소름이 돋네요)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이셨는데 

제가 얼굴이 퉁퉁 부어있고 몸이 불덩이인 것을 확인하시고 이마에 손을 얻고 기도해 주셨어요

그리고 저는 잠이 들었는데 밖이 시끄러워서 일어나 보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고 열이 내려 정신이 맑았어요


하나님이 저를 불쌍하게 보시고 살려주신 것 같아요

그렇게 저는 질병과 사투를 벌이며 참고 견디는 것을 몸으로 배우고

저를 가장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어요

그래야 생존할 수 있었으니까요


정말로 미움받을 용기를 타고난 사람이 있는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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