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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May 09. 2023

1. 하루 5분

다른 아이

1. 하루 5분     

하루는 24시간이고 1,440분이며 86,400초입니다. 그중의 5분은 0.003%로 극히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돌아서면 5분이 지나버린 사람도 있고 1분이 하루처럼 느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은 동일한데 몸으로 느끼는 시간의 길이는 각기 다르니까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는 것이 귀찮은 지만이를 5학년 때 만났습니다. 지만이는 뼛속에 새겨진 그 가정의 문화도 같이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뼛속에는 13년 동안의 흔적이 없었습니다. 상처와 분노와 외로움과 슬픔을 꾹꾹 눌러 지하 100층으로 내려 보냈는지 아니면 물 흐르듯 흘려보내버렸는지 텅 빈 공간만이 만져졌습니다.      


 밤이면 엄마가 없는 집이 싫어 콘크리트 숲을 누비다 밤 12시가 넘어 엄마가 집에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들어와 조용히 자리에 눕습니다. 엄마는 ‘어디 싸돌아 다니다 이제 들어오냐’고 야단을 치지만 혀는 제멋대로 꼬여 말이 되어 나오지 않습니다. 엄마는 지만이의 마음을 모릅니다. 초라하고 허름한 울타리여도 괜찮습니다. 엄마라는 울타리가 있어야 잠을 잘 수가 있기 때문에 엄마가 들어올 때까지 이슬을 맞으며 걷고 또 걷는 것을 궁금해하지도 않고 야단만 칩니다.      


일을 하며 매일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오는 엄마를 의심한 아빠의 언어폭력은 도를 넘었고 언어폭력을 견디다 못해 신고한 것이 두세 번 반복되어 긴급 분리되는 바람에 지만이는 생면부지의 낯선 아줌마를 따라왔습니다. 편식이 심하며 손가락하나 움직이기 싫어하는 무기력증이고 밤마다 거리를 방황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이 제가 전달받은 지만이에 대한 정보입니다. 추가 정보는 지만이와 함께 살면서 제가 오감을 열어 보고 듣고 느껴야 합니다.      


지금까지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성장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온 지만이가 의욕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저의 의무이자 책임이니까요.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강제로 무엇인가를 하도록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설사 시작을 한다고 해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스스로 선택해서 하도록 하고 선택한 것에 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합니다.      


첫 번째 주어지는 과제는 명분이 있어야 하고 무조건 쉽고 가벼워야 합니다. 이 정도야 뭐, 까짓것 하지 뭐, 하고 시작해서 한 번 두 번 쌓아갈 때 이전의 습관 위에 새로운 습관이 덧입혀져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삶이 바뀌는 것을 아이들을 양육하며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문제는 지만이가 이까짓 것하고 흥미를 가질 그 무엇을 찾는 것입니다.     


일단 ‘너 휴대폰 가지고 노는 것 좋아하는구나! 컴퓨터 가지고도 놀 줄 아니?’라고 물었습니다.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아이의 손에 들린 휴대폰은 최신폰인데 집에는 컴퓨터가 없다고 했습니다. 방과 후 시간에 컴퓨터실에 가서 몇 번 듣기는 했으나 재미가 없었다고 합니다. 일단 컴퓨터 앞에 앉아 한글 파일을 열고 이름을 타자해 보라고 했습니다. 한참을 버벅 거리며 자판을 찾아다녔습니다. 


‘우리 집에는 하루 5분이라도 생산적인 일을 해야 간식을 먹을 수 있는 티켓이 주어지기 때문에 여섯 살 어린아이도 책을 읽거나 타자를 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색종이를 접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너도 무엇인가를 하고 간식을 먹어야 동생들 앞에서 떳떳하지 않겠니? 내가 보기에 하루 5분 동안 타자를 치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떠니?’ ‘너는 MZ세대야 너의 DNA속에는 컴퓨터를 잘할 수 있는 DNA가 있어 사용하지 않아서 못할 뿐이야’ 


지만이는 곰곰이 생각합니다. 동생들도 자판을 보지 않고 타자를 하는데 자기 이름 하나 치는데 자판을 들여다보며 한참을 찾아야 하는 자기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귀찮기는 하지만 하루 5분 만이라면 그 정도는 하고 당당하게 간식을 먹기로 합니다.      


손가락하나 움직이기 싫었던 지만이에게 하루 5분 타자치 기는 무리력의 늪에서 분주한 세상을 향해 슬며시 발을 내미는 일이었습니다. 분주한 세상은 엄청나게 무섭고 두려웠는데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조금씩 들이민 발이 다 나와서 한 발짝 내디뎠는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손뼉 치며 환영해 줍니다. 쑥스럽지만 기분은 괜찮습니다. 내친김에 하늘에서 내리는 낱말을 손가락으로 되받아 치는 게임을 합니다. 한 단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이리저리 글자를 향해 뛰며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입니다. 재미가 있습니다. 재미가 있으니 자꾸만 하고 싶어 져 시간이 점점 늘어납니다. 5분에서 10분으로 10분에서 30분으로 늘어나고 단어에서 문장으로 바뀝니다.     


심장이 멈추고 2분 안에 심폐소생술(CPR)을 해야 하고 늦어도 5분 안에 병원에 도착해서 응급조치를 해야 하며 호흡이 멈추고 약 5분이 지나면 뇌사 상태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5분이 누군가에게는 쓸모없는 시간이지만 응급환자에게는 생과 사를 가르는 긴박한 시간입니다.


 지금 지만이는 컴퓨터 활용능력을 넘어 일러스트를 배웁니다. 뭔가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지만이에게 하루 5분은 자기의 틀을 깨고 나오는 생명줄이었습니다.

당신에게 하루 5분은 어떤 시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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