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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May 10. 2023

2.엄마라고 부르는 순간

다른 아이

2.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     


세월이를 생각하면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시인의 꽃 중에서-     


4학년 세월이에게 엄마라는 단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필요하지 않은 아니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던 단어인지도 모릅니다.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불러보지 않았으며 느껴보지 못한 엄마라는 단어를 친구들은 너무나 쉽게 잘도 불렀습니다. 그런 친구들이 싫어 세월이는 항상 혼자였습니다.     


세월이가 태어나자 엄마는 집을 나갔습니다. 아빠는 사업에 실패하여 이미 술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었고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갓난아기 세월이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바턴 터치하듯 친척집에서 또 다른 친척집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러다 바턴이 땅에 떨어졌는데 아무도 줍지 않아 길거리에 덩그러니 혼자 있게 되었습니다. 주위가 어둑어둑 해지는데 키가 130cm에 몸무게가 26kg인 작고 꼬지지한 11살 세월이는 그냥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경찰이 지나가다가 이상하게 여겨 세월이를 경찰서로 데려갔고 저와 연결되었습니다.      


아이가 오면 가장 먼저 호칭을 정합니다.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 엄마만큼의 거리가 생기고 이모라고 부르는 순간 이모만큼의 거리로 규정지어지기 때문에 누구라고 부르느냐에 따라 친밀감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세월이는 나를 누구라고 부르고 싶은지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무표정한 얼굴에 까무잡잡한 피부, 멍한 눈동자, 작고 왜소한 체구의 세월이는 앙다문 입술을 깨물며 저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듯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세월이의 눈을 들여다보면 눈동자는 빛을 등지고 돌아 앉아 세월이의 마음을 만질 수 없었고 눈빛은 아득한 외로움으로 반짝였습니다.  

    

때로는 지나친 친절이 독이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 답일 때도 있으니까요. 서두르면 오히려 아이와의 관계는 나빠지고 영영 회복 불가능한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한 번씩 처다 보며 씨익 웃어주고 밝게 인사를 건네며 안전한 사람임을 각인시켜야 합니다. 아이는 음식의 간을 보듯 저의 말과 행동을 보고 느끼며 가까이 다가갈지 아니면 더 멀리 도망갈지 가늠하기 시작합니다.      


그 시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았습니다. AI처럼 주어진 알고리즘에 의해 집과 학교를 오고 갈 뿐 무엇인가를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이 없던 세월이는 한 달쯤 지났을 때 현관문이 열리고 ‘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라고 들어왔습니다. 한 달 동안 얼마나 많이 연습하고 또 연습했을까요?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10분 동안 불러보고 또 불러보며 몸 안의 모든 세포들이 엄마라는 단어에 집중하도록 했을 겁니다.

 ‘그래 잘 갔다 왔니?’하고 가볍게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는 세월이 방으로 저는 제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눈물이 나서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월이가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 저는 세월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저는 세월이를 배 아파 낳은 엄마는 아닙니다. 11년 동안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배웠어야 할 것들을 소급해서 가르치고 경험하고 기억 속에 저장하도록 도와야 하는 양육자 엄마입니다.     


어버이날입니다.


양주동 작사 이홍렬 작곡의 ‘어머니의 마음’을 가만히 불러봅니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닮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그냥 눈물이 납니다.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아이는 엄마에게 엄마는 아이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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