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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May 11. 2023

3. 아이가 어떻게 되면 책임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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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이가 어떻게 되면 책임질 거예요?     


아이가 아프면 누가 책임을 질까요? 의사 선생님일까요 아니면 부모일까요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내던져진 아이는 생존보존본능에 의하여 위험한 것은 피하고 존재로서의 자리를 만들어갑니다. 제 몸의 난 상처를 치유하는 우리 몸의 생존을 향한 치밀한 움직임은 신비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자꾸만 겁을 줍니다. 이 주사를 맞고 저 약을 먹어야 고통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약이 체질에 따라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데 그 부작용에 대하여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0.1%의 부작용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우리는 의사 선생님이 처방하는 약에 의존해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회복하려고 합니다.     


여기 의사 선생님의 처방에 손을 들고 ‘아니요’를 말하는 엄마가 있습니다.     


세 살 소리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바들바들 떨고 있습니다. 한 명의 간호사는 소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꽉 붙잡고 있고 다른 한 명의 간호사는 날카로운 주삿바늘을 들고 소리의 여린 팔을 찌릅니다. 소리는 깜짝 놀라 자지러지게 웁니다. 간호사는 미동도 없이 주삿바늘 끝에서 피가 올라오는지 관찰합니다. 간호사가 찌른 주삿바늘은 혈관을 제대로 찾지 못해 피가 올라오지 않습니다. 소리의 몸은 공포로 혈관을 몸속 깊숙이 숨겨 버립니다. 간호사는 숨은 혈관을 찾아 다시 한번 주사 바늘을 찌릅니다. 이번에도 실패입니다.


소리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에 채혈실 문을 박차고 들어간 엄마는 ‘당장 주삿바늘 빼세요. 입원 취소할 겁니다’하고는 소리를 번쩍 안았습니다. 소리는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더 깊은 곳으로 숨으려는 듯 자꾸만 엄마의 가슴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소리가 소아과에서 처방한 해열제를 먹였지만 40도를 오르내리는 열이 3일째 떨어지지 않아 아침 일찍 어린이 전문 병원을 찾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입원하라고 하셨고 일단 병실이 없으니 릴거주사부터 맞고 병실이 나오는 대로 병실로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9kg의 작은 소리의 여린 팔에는 링거주삿바늘이 꽂히고 저는 자꾸만 칭얼대는 소리를 힙시트에 앉혀 가슴에 안고 병원 주변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3시간이 지나 병실이 나왔다는 연락이 와서 절차를 마치고 병실에 올라가 막 소리를 내려놓으려는데 간호사가 와서 채혈실로 가서 피를 뽑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 피를 뽑느냐고 했더니 혈액에 염증이 있어서 열이 오르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라고 입원하려면 필수로 하는 검사라고 했습니다. 소리는 체중이 또래보다 적게 나가고 혈관을 찾기가 어려운 아이인데 링거주사 맞을 때 채혈을 하지 왜 지금 다시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부서가 다르고 병원시스템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린이전문 병원에서 어린이 중심 시스템이 아닌 일반적인 병원 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하느냐, 그것이 무슨 어린이전문병원이냐고 따졌지만 병원 시스템대로 해야 한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한 번에 혈관을 찾을 수 있다면 채혈실로 가고 그렇지 않으면 채혈을 거부하겠다고 했더니 한 번에 혈관을 찾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해서 채혈실로 갔고 그 사달이 났습니다.     


2.3kg으로 작게 태어난 소리가 생후 30일쯤 되었을 때 즐거운 집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건강검진을 해야 한다는 행정절차에 따라 안양에 있는 소아과병원에 갔습니다. 간단한 진료를 마치고 간호사는 소리를 번쩍 안아 채혈실로 데리고 들어갔는데 10분이 넘도록 소리의 숨 넘어가는 울음이 계속되어 문을 박차고 들어갔습니다.      

소리의 오른쪽 팔은 끈으로 묶여 있고 팔 중앙이 시퍼렇게 멍들어 있는데 간호사는 다시 한번만 해볼게요. 아가야 조금만 참아줘 하더니 바늘을 찌르려고 했습니다. 저는‘잠깐 멈추세요.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갓난아기 팔이 저 모양인데 거기에 또다시 주사 바늘을 찌른다고요? 하지 마세요. 꼭 채혈을 해야 한다면 대학병원을 가든 어디를 가든 한 번에 채혈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해올 테니 그만두세요’하고는 소리를 뺏다시피 안았습니다. 


어쩌다 세상에 태어나 이리저리 보내지더니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이 몸을 찔러대니 혈관은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몸 안으로 숨고 소리는 세상은 믿을 수 없는 곳이라는 공포만이 남았습니다.     


이후 소리는 6개월이 넘도록 카시트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지 못했습니다.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에게 안전벨트를 맬 수 없어 가까운 거리는 위험을 감수하고 그냥 다녀야 했습니다. 그런 악몽이 되살아나 입원을 취소하고 집으로 오기로 결정했습니다. 입원을 취소하려면 의사 선생님을 만나야 한다기에 진료실로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대뜸 아이가 어떻게 되면 책임질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럼 ‘엄마가 아이를 책임지지 누가 아이를 책임지나요?’ 되물었지요. 의사 선생님은 어이가 없다는 듯 쳐다보더니 그럼 알아서 하라고 입원을 취소하는데 동의해 주었습니다.     


어떤 책도 어떤 의사도 부모의 직관과 세심한 관찰보다 나을 수는 없습니다. 부모만큼 아이를 잘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제가 입원을 취소할 수 있었던 것은 애민한 관찰 덕분입니다. 보통 열이 오르면 경기를 하거나, 축 늘어지거나, 설사를 하거나, 토하거나 여러 가지 증상을 동반하는데 소리에게는 어떤 증상도 없었습니다. 동네 소아과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였지만 열이 떨어지지 않아 혹여 다른 증상이 동반될까 염려가 되어 어린이전문병원을 찾았습니다.      


링거 주사를 맞는 사이 열이 내리겠다는 확신이 들었지만 입원하기로 했으니 하루쯤 입원하며 확실하게 열이 내리면 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주삿바늘에 찔리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아이에게 또다시 그런 공포를 주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으로 입원을 거부했지만 일반적인 경우 의사 선생님의 처방에 따라 입원해서 치료받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엄마는 날마다 아이의 표정과 행동, 피부색과 대변의 묽고 단단함과 색깔, 오줌 농도와 색, 밥을 먹는 양과 태도까지 일거 수 일투족을 관찰하며 아이의 건강을 체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아프면 온갖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쩌다 감기에 걸렸을까? 왜 조금 더 조심하지 않았을까? 모든 것이 내 잘못으로 아기가 아픈 것 같아 미안하고 죄인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아프면 속죄하는 마음으로 밤잠을 설치며 돌보고 챙깁니다. 엄마는 아이의 주치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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