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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Aug 28. 2023

23. 겹치지 않는 환이

다른 아이


환이는 참 많이 울었습니다. 보통 아기가 태어나 밤과 낮이 바뀌고 뭔가 불편하면 말로 표현할 수 없으니 울음으로 말하는데 그 울음이 다섯 살이 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한번 울기 시작하면 안아주고 업어주고 달래주어도 환이도 저도 지칠 때까지 울었습니다. 저는 과연 환이를 키울 수 있을까. 차리리, 이쯤에서 끝내버리는 것이 환이에게도 저에게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한여름에 같이 차를 타고 가다 환이가 갑자기 왜 이렇게 덥지 합니다. 달리는 차는 창문을 열어놓아 시원한 바람이 상쾌하게까지 느껴지는데 환이는 계속해서 손부채질을 하며 덥다고 합니다. 저는 시원한 물을 건네며 그럼 물을 마시라고 하며 창밖을 보니 구멍가게를 지나고 있습니다. 구멍가게를 지나쳐 달리는 순간 환이는 화를 내며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고 그런 말도 못 알아듣냐고 합니다. 저는 덥다고 하는 말을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구나로 해석하지 못합니다. 사사건건 환이는 에둘러 말하고 저는 액면 그대로의 말로 해석합니다. 그렇다 보니 대화가 안 되고 대화를 하려고 했다 언성을 높여 야단을 치게 됩니다.   

  

네 살에 암으로 수술하러 갈 때 화장실도 업고 가야 하는 환이에게 제가 수술해야 해서 병원에 입원하기 때문에 환이와 함께 집에 있을 수 없다고 얘기하면 또 3발 4일쯤 울고 불고 난리를 칠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갔습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증발해 버린 것으로 씻을 수 없는 충격을 준 것이라고 해서 후회하고 또 후회했지만 이미 지나버린 시간을 돼 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다섯 살에 환이가 탈장되어 수술하게 되었는데 불안한 환이는 저를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환이가 마취될 때까지 곁에 있어주면 안 되냐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간호사님은 환이를 얼음보다 더 차갑게 수술실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환이는 자지러지게 울었고 그 울음소리는 서서히 자자들었습니다. 훗날 상담치료를 하며 그때의 충격은 죽음과도 맛 먹는 충격이라고 알았습니다. 이런 사건들이 환이를 힘들게 하고 애민 하게 하고 저와 다른 아이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합리화의 도구는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힘들고 더딘 하루 또 하루가 갔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너무 답답하여 상담학 교수님께 상담을 했습니다. 교수님은 힘들겠지만 키우면 자기 몫을 충분히 할 테니 견뎌보라고 했습니다. 그냥 견디기에는 한계가 있어 공유하는 무엇을 찾아다니다 MBTI를 만났습니다. 검사결과 환이는 ESFP이고 저는 INTJ였습니다. 겹쳐지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서로의 말을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ESFP인 환이의 특징을 보니 

서프라이즈, 깜짝 파티를 좋아하며 사료성이 좋고 집에 오래 있으면 무기력을 느낀다고 합니다. 또한 정이 많고 건망증이 심하며 고집이 세기는 하나 다른 이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설명에 어쩌면 이렇게 환이를 잘 설명했을까 싶었습니다.          

반면 INTJ는 따뜻한 얼음이라고 명명했습니다. MBTI를 알기 전부터 저는 차가운 사랑을 한다고 했는데 마치 저의 성향을 잘 알고 표현한 말 같습니다.

INTJ의 성향은

분석력이 아주 좋은 문제 해결사로 혁신적이 아이디어를 제시하여 문제 상황을 개선하고자 하며 논리적인 추론과 복잡한 문제 해결을 좋아합니다. 독립적이고 이성적이며 외로움을 잘 타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공과 사를 정확하게 구분하고 자기 얘기를 남에게 잘하지 않는다는 설명에 저보다 저를 더 잘 아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왔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연인으로 만나더라도 독립 공간을 존중해 줄 것을 제안하는 내용에서는 MBTI의 기질에 대한 설명을 듣고 한 것은 아니지만 저는 저만의 공간과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무수히 노력했고 지금은 즐거운 집 골방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환이의 성향을 알고 나니 죽음을 생각할 만큼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도 환이와 저는 겹치지 않습니다. 저의 일하는 모토는 쉽고 가볍게인데 환이는 복잡하고 어렵게 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한 가지 음식을 만들어도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저와는 완전히 다르게 여러 단계를 거치며 데코레이션까지 완벽하게 합니다. 처음 더하기 빼기를 배울 때도  +표시가 뭐냐고 왜 그렇게 하냐고 해서 이것은 사람들이 합의한 기호이고 두 모둠을 하나로 모은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만 환이는 그러니까 그걸 왜 만들었냐고 물었습니다. 저의 입장에서는 하기 싫어서 따지는 것으로 느끼고 환이는 본질을 알고 싶은 질문이었다고 말합니다. 


나와 겹쳐지지 않는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자녀입니다. 그런 아이는 왜 그러냐고 비난하고 정죄하면 답이 없습니다. 그냥 그런 성향이구나라고 이해하고 지켜보며 유아기에 아무리 떼쓰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옳음과 그름에 대하여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면 아이는 자기 몫의 삶을 잘 살아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힘들겠지만 잘 키우면 자기 몫의 삶을 잘 살아낼 것이라는 교수님의 말씀처럼 환이는 스스로를 책임지며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성인이 되어 저도 환이도 서로로의 성향을 이해하고 포용하려고 노력합니다. 


겹쳐지지 않는 자녀를 양육하며 힘들고 지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분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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