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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Dec 23. 2023

요리 레시피, 레시피 없는 엄마의 손맛

엄마로 산다는 것


옛날 우리 엄마들은 레시피 없이 요리를 했어요

그냥 손대중 눈대중으로 엄마만의 독특한 맛을 만들어냈는데

엄마만의 맛은 기가 막히게도 일정한 맛을 냈어요

요즈음에는 레시피가 있어

어떤 재료를 얼마나 넣는지 계량해서 넣고

그렇게 해야 일정한 맛이 난다고 믿어요


그런데

같은 재료를 가지고 같은 양을 넣어 요리를 해도

요리를 하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요

왜 같은 재료를 가지고

똑같은 레시피를 보며 요리를 했는데

맛이 달라지는 걸까요?


유명 요리사들이 나와서 경합을 벌이거나

삼시 세끼 같이 연예인들이 자기만의 요리를 선보이는 경우에도

정확한 양을 제시하지는 않아요

감각적으로 양을 조절해 소금을 넣어 맛을 내는데

엄마가 하는 요리를 레시피로 만들어 달라고 하면 참 곤란해요


겨울이면 여름에 말려 놓은 야채를 불려서 나물 반찬을 해요

묵나물이라고 하는데

어떤 야채도 말렸다 다시 불려서 삶은 다음 볶으면

비슷한 맛이 나는 것 같아요

그때 특별한 레시피가 없어요


그냥 말린 야채 불려서 다시 소다를 약간 넣고 삶아서

(질기지 않고 잘 삶아지도록 소다를 넣어요)

들기름에 달달 볶으며 당근, 양파, 마늘, 파를 넣고 볶은 다음

통깨로 마무리하면 맛있는 나물 반찬이 돼요

그런데 제가 해 놓은 나물 반찬이 맛있다고

레시피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으면

양념의 정량을 말해주지 못해요

그냥 그동안의 경험에서 나오는 감각으로 하기 때문이에요


운전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어떤 상황을 만났을 때 감각적으로 핸들을 조작하지 않나요?

위급한 상황에서 우로 두 바퀴 돌리고 좌로 반바퀴 돌린 다음

서서히 브레이크를 밟아야 해라고 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냥 상황에 따라 운전자가 순간적으로 핸들을 조작해서

최대한 피해를 줄이려고 하는 것처럼

엄마의 요리는

요리를 할 재료의 상태에 따라

감각적으로 양념을 넣고 볶거나 묻혀요

그것이 엄마의 손맛이고

우리는 그 엄마의 손맛을 혀끝으로 기억하는 것 같아요


엄마의 요리는 레시피가 없어요

그런데 일정한 맛을 내요

그것이 엄마의 손맛이고

엄마의 손맛은 우리 가슴속에 따뜻한 기억이 되어

힘들고 어려울 때 또는 지칠 때 엄마의 손맛을 찾게 돼요

제가 그랬어요

한글도 잘 모르시던

지금은 93세 노모가 되신 농부의 아내였던 엄마가

비 오는 날 해주시던 호박전, 부추전의 맛을 잊지 못하고

비가 오면 호박전, 부추전을 부쳐 즐거운 집 아이들에게 주며

엄마의 엄마가 비 오는 날 해주시던 요리하고 소개해요

즐거운 집 아이들은 엄마의 엄마를 궁금해하며

엄마의 고향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아이들과 함께 

엄마의 고향방문 여행을 했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즐거운 집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힘들고 지칠 때

엄마의 손맛을 기억하고 엄마의 손맛이 느껴지는 음식을 먹으며

다시 일어설 힘을 얻기 바라는 마음으로

23년째 즐거운 집 아이들을 위한 밥상을 차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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