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길 조경희 Sep 16. 2020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

53.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     

네 살에 위탁해 키우던 민우가 4학년이 되었을 때 일이야. 어느 날 친구를 집에 데려오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현관문을 들어서는 친구는 덩치도 크고 건강해 보였어. 민우는 친구에게 여기는 ‘내방’, 여기는 ‘동생 방’, 여기는 ‘누나 방’ 하며 집안 곳곳을 소개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지. 친구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억지로 끌려가듯 방으로 들어가서도 놀이에는 관심이 없고 집안의 가구며 책장 그리고 장난감의 종류에 호기심을 보였어. 

 점심시간이 다가와 민우에게 뭘 먹을 거냐고 물었어. 라면을 좋아하는 민우는 

 “당근 라면이죠.” 하기에 

 “친구도 라면 괜찮니?”라고 의사를 묻자 좋다고 하여 점심으로 라면을 끓였어. 친구는 식탁에 와서도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식탁에 둘러앉은 아이들을 한 번 훑어보고는 

 “너희 아빠는 어디 계셔?” 

 “수원에”

 “거기서 뭐 하시는데? 그럼 너는 왜 여기 와 있어”

 “아빠가 나를 잘 돌볼 수 없어서 여기 온 거야”

 “그런데 너희는 형제가 왜 성이 달라?”

민우는  “응 저기…” 하며 말을 잊지 못했어. 보다 못한 내가 식탁에 앉아 친구에게 물었지.

 “ 지금은 여러 가지 형태의 가정이 있는데 엄마랑 아이만 사는 가정도 있고 아빠랑 아이만 사는 가정, 할머니와 아이만 사는 가정이 있어. 우리는 성이 다른 아이들이 모여 함께 사는 특별한 가정이야. 이제 궁금증이 풀렸니? 그런데 한 가지만 물어볼게. 우리 집에 민우랑 같이 놀기 위해서 왔니 아니면 민우네 가정을 조사하기 위해서 왔니?”

 “민우랑 놀려고 왔어요.”

 “그럼 민우랑 재미있게 놀다 갔으면 좋겠어. 아이 아빠가 뭘 하느냐에 따라 친구로 사귀고 안 사귀고 하고 가난한 집에 사는 아이하고는 친구 안 하고 잘 사는 집에 사는 아이만 친구 하기 원한다면 우리 집에 잘못 온 거야 그냥 가도 괜찮아 난 민우가 그런 친구를 사귀는 것 원하지 않으니까 

어떻게 할 거니? 

그냥 돌아갈 거니? 

아니면 민우랑 같이 놀다 갈 거니?”

“민우랑 놀다 갈게요” 

이후 친구는 민우와 함께 마당에 나가 공도 차고 술래잡기도 하고 재미있게 놀다 돌아갔어.      

그동안 우리는 민우 친구처럼 가족의 성이 같아야 하고 엄마 아빠와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어. 당장 우리만 봐도 성이 다른 일곱 명의 남자아이들이 모여 엄마와 함께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잖아. 모두가 해체가정을 경험하고 상처 받은 마음으로 오는데 시간이 지나면 상처가 아물고 서로에게 소중한 가족으로 기대며 살아가는 것 같아. 반면에 가정이 해체되지는 않았지만, 가족 구성원들의 소통이 잘 안 되는 가족도 있어. 우리 집도 마찬가지야.     

네가 1학년 때 너무나 애민한 성품이 걱정되어 심리검사를 받았어. 검사 중의 하나로 가족을 그려보라고 했는데 너는 도화지를 네 칸으로 나누어 아빠는 텔레비전 보고 있고 오빠는 책을 읽고, 엄마는 부엌에서 음식 만들고 너는 장난감 가지고 노는 그림을 그린 거야. 검사를 진행한 선생님은 가족이 단절되어있는 것을 나타내는 거라고 말씀하시면 함께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어.      

오빠도 상담학 공부를 하면서 세미나에 갔을 때 가족을 떠올려 보라고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빈방이 보일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정말 슬펐다고 해. 오빠와 너를 키우며 이곳저곳 놀러도 다니고 함께 했던 시간이 많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시간보다 평소에 함께 놀아주고 너희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 엄마가 늘 일에 쫓기며 사느라 정말 중요한 것을 몰랐던 거야. 조금 가난하게 살더라도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엄마가 현관문을 열어주며 “학교 잘 다녀왔니?”하고 반갑게 맞아주고 간식도 챙겨주는 엄마를 간절히 소원했는데 그 소원을 들어주었어야 했던 거지. 그랬다면 너에게 따뜻한 가족으로 기억될 텐데 그렇지 못했어.      

가족의 진정한 의미는 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성이 같은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 행복한 가정만이 진짜 가족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 같아. 낳아준 엄마, 아빠가 다르고 성이 다르지만 한 집에서 서로 사랑을 나누며 가족으로 살아간다면 이 또한 아름다운 가족이라는 생각이야. 우리 집의 실제 법적인 용어도 ‘공동생활가정’이거든.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나 각기 다른 성향의 아이들이 모여 가정을 이루고 가족으로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지금 너에게 가족을 그려보라고 하면 어떻게 그릴까?

-무조건 너를 지지하는 엄마가-

작가의 이전글 삼세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