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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꿈 Nov 24. 2020

여기까지! 더 이상 선 넘지 말아 줄래?

손님이 찾아왔어요.

지인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 오늘 메뉴인 찜닭을 주문하며 A가 말합니다.

“순살 먹는 사람 없죠? 닭은 뼈 있는 걸 먹어야지. 나는 순살 먹는 사람 이해가 안 되더라.”

아, 나는 순살 좋아하는데, 하지만 아무 말 않길 다행입니다. 닭뼈 취향으로 이해받지 못할 사람이 될 뻔했어요.

머리 모양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제가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머리를 길러보고 싶다고 하자 A가 단호하게 말합니다.

“하지 마요.”

아니, 왜요? 내 머리카락인데요. 저는 어색하게 웃으며

“왜~ 나 머리 길렀을 때 괜찮았는데.”

라고 소심하게 항변해봅니다.

“아니요. 이상하거든요.”

이제 기분이 살짝 상합니다.     


A는 호불호가 뚜렷합니다. 표현도 직설적이지요. 개인의 취향이니 뭐라 할 건 없는데, 가끔 자신의 취향이 아닌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할 때 다른 사람들은 불편해집니다. A가 절대 사지 않을 벨벳 스커트와 뾰족한 구두, 호피 아이템은 놀림거리가 되고, 엄격하고 학습에 열정적인 A에게 허용적이고 공부를 조금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엄마들은 무책임하거나 한심한 엄마가 됩니다. 저와 지인들은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고, A와 함께 하는 자리가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손님이 찾아왔어요> | 소냐 보가예바 글 , 그림 / 시공주니어 / 2008.2.25

어느 작은 섬에 언니와 동생이 살았어요. 두 사람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우체부는 화요일에 가겠다는 사촌 한스의 편지를 전해줍니다. 놀랍게도 편지가 온 날이 화요일이네요. 네, 한스는 우체부와 같은 배를 타고 언니와 동생이 사는 섬에 도착한 거죠. 갑작스러운 방문이었지만, 언니와 동생은 진심으로 사촌을 반겨줍니다. 사촌 한스는 밥을 먹다 말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어? 가만있어 봐! 내가 도와줄게. 나한테 다 맡겨.”     


그러고는 고장 난 수도꼭지와 거실 전등, 의자 등을 모두 고쳐줍니다. 분명 처음엔 언니와 동생도 사촌 한스의 도움이 고마웠을 겁니다. 두 사람은 한스의 도움에 기뻐하며 활짝 웃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한스 이 친구, 도와줘도 너무 도와주는데요. 페인트로 벽을 칠하고, 더는 아침으로 팬케이크를 먹지 못하게 하지요. 집안에 동물은 안 된다며 멍멍이와 야옹이와 짹짹이를 쫓아버리고 매일 아침 일찍 체조 동작을 따라 하도록 합니다. 분명 한스는 두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인데, 어찌 된 일인지 언니와 동생은 점점 행복해하지 않는 것 같아요. 결국 언니와 동생은 병이 나고, 한스에게 그만하라고 확실하게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언니와 동생은 그 말을 할 수 있을까요?     


A가 나쁘기만 한 친구는 아닙니다만, 자신과 다른 취향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가 부족한 건 사실입니다. 다르다는 건 틀린 것이 아닌데, A는 자꾸만 틀렸다고 말합니다.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내 삶에 대한 가치관이 잘못됐다고 자꾸 지적하니, 내가 어딘가 이상하고 부족한 사람이 된 거 같습니다.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자주 만납니다. ‘내 말이 옳아.’ 확신에 가득 차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나를 뜯어 바꾸려 합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지키고 사랑하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가진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지 않는 사람 때문에 내가 스스로 나를 미워할 순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좀 더 단호해져야겠습니다.


‘여기까지! 더 이상 선 넘지 말아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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