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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꿈 Nov 18. 2020

설거지가 서러워

돼지책


밤새 잠을 잘 못 잤습니다. 깊게 잠이 들지 못했고, 이상하게 목이 타서 여러 번 깼습니다. 알람에 맞춰 일어났는데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픕니다. 몸살이 오려나 봅니다. 오늘은 큰 아이 교통봉사도 해야 하는 날인데 큰일니다. 따뜻한 오미자차 한잔을 마시고 몸을 따뜻하게 해 줍니다. 맹하던 코는 다시 돌아오는 듯싶은데 팔다리는 자꾸 덜덜 떨립니다. 그래도 교통봉사를 안 할 수는 없어서 옷을 단단히 입고 갔다 옵니다.


집에 오니 몸이 더 아파집니다. 이불속에 들어가 있는데도 한기가 듭니다. 이렇게 누워도 저렇게 누워도 편치가 않고 몸을 뒤척일 때마다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납니다. 급한 대로 타이레놀 한 알을 먹습니다. 타이레놀로 잡힐 수 있는 초기 감기였으면 좋겠습니다. 잠깐 눈을 붙인 줄 알았는데 일어나 보니 벌써 12시가 가까워져 옵니다.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 친구가 선물해준 기프티콘으로 프랜차이즈 죽을 시킵니다. 입이 까끌까끌하지만 억지로 몇 입을 막고 다시 침대에 누웠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부탁해 약국에서 약을 사달라고 합니다. 처음엔 짜증스러워하더니 제 눈에도 엄마가 심상찮아 보였는지 알겠다고 합니다. 기특해서 오는 길에 너희들 먹을 빵도 사 오라고 합니다. 약을 먹으니 근육통이 조금 준 듯싶습니다. 그래도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아얏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식은땀이 나서 덥다가도 이불을 걷으면 금세 한기가 듭니다. 아이들 저녁을 어찌하나 싶은데 큰 애는 볶음밥을 만들어 동생과 저녁을 챙겨 먹겠다고 합니다. 다행이다 싶습니다. 약 기운에 남편이 온 것도 아이들이 잠드는 것도 비몽사몽 합니다. 밤새 열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식은땀이 계속 흘렀습니다.


다음날 어제보다는 조금 나은 듯합니다. 머릿속으로 얼른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떠올려봅니다. 교통봉사를 하러 가고, 그림책 수업을 들으러 가야 합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니 여전히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남편이 대신 교통봉사를 하러 가겠다고 합니다. 한 번도 안 해봐서 모를 텐데 대신해주겠다는 남편이 고맙습니다. 다시 또 정신없이 잠에 빠졌다 남편이  오는 소리에 일어났습니다.


아침 약을 먹으러 물을 뜹니다.

“죽이라도 먹고 먹어. 빈속에 먹으면 속 버려.”

“죽 있어?”

“아, 죽 없어? 어제 좀 많이 사놓지.”

아, 남편이 죽이라도 사 왔나 싶었습니다. 빈속에 약을 먹고 개수대를 보니 어제 하루 동안 쌓인 설거지가 그대로 있습니다. 집은 엉망입니다.  물을 틀고 손을 담그는데 아 소리가 절로 납니다. 물이 닿는 곳이 시리고 아픕니다.

 “오늘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

출근하며 남편이 말합니다.


하루를 쉬면 하루치 일거리가 쌓입니다.

이틀을 쉬면 이틀 치 일거리가 쌓입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습니다.

쉬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할게.’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설거지하고 빨래를 돌리고 나니 다시 식은땀이 나고 어질어질합니다. 그림책 수업에 가지 못하겠다고 선생님께 문자를 드리고 다시 침대에 누워 또 잠이 듭니다. 아이들이 돌아오는 소리에 잠이 깨 빨래를 다시 건조기에 넣습니다. 어질러진 집을 보이는 대로 조금씩 치웁니다. 다시 어지러워 눕습니다. 오늘 저녁도 해 먹으라고 할 수 없어 인스턴트 국을 꺼내 저녁을 먹입니다. 일찍 와줬으면 하는 마음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술 약속이 있는 모양입니다. 개수대에는 또 오늘 하루치의 설거짓거리가 쌓여 있습니다.


‘약도 사 오고 저녁도 만들어 먹었잖아. 남편은 대신 교통봉사도 했잖아. 우리 가족은 돼지는 아닐 거야. 내가 너무 욕심이 많은 거야.’

설거지하러 물을 틉니다. 물에 닿는 손가락 마디마디가 조금 덜 아픈 것 같기도 합니다. 내일은 아마도 모든 게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겁니다.


 

[돼지책] |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 웅진주니어 / 2009. 4. 13

크고 멋진 집에는 멋진 차고와 멋진 차가 있고, 잘 가꾸어진 멋진 정원에서 피곳 씨와 두 아들은 위풍당당 서 있습니다. 마치 가족사진처럼 보이는 그 장면에 엄마는 없습니다. 피곳 씨의 아내는 어떤 수식어도 없는 그냥 아내지요. 피곳 씨와 두 아들이 중요한 회사와 학교를 가는 동안 아내는 그림자처럼 집안일을 하고 먹을 것을 준비합니다. 아내는 이 집에서 어떤 의미일까요?  엄마의 노동과 희생이 주는 안락함과 편안함을 가족들은 고마워할까요?  엄마는 "너희들은 돼지야"라고 시원하게 내지르고 사라져 버립니다. 아휴 통쾌해. 이제부터 피곳 씨와 두 아들의 고생길이 열립니다. 그러니까 있을 때 좀 잘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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