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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꿈 Jan 12. 2024

첫 번째 편지

통이는 그런 고양이야

저희 책방을 아시는 모든 분들께     


안녕하세요. 저는 대구에 있는 ‘그림이 글에게’라는 책방의 책방지기입니다.


새해가 밝았어요. 여러분은 어떻게 새해를 맞으셨나요? 일출을 보며 한 해를 시작하셨을까요? 아니면 이루고 싶은 소원이나 계획을 쓰며 시작하셨을까요? 아니면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로 맞으셨을까요? 해가 바뀐다고 해서 어제와 크게 달라지는 건 없지만, 그래도 해가 바뀌고 처음 맞는 하루는 다른 기분이 듭니다.     


저는 올해 편지를 써볼까 합니다. 그냥 편지는 아니고요, 그림책과 함께 보내는 편지입니다. 때로는 받는 이가 있는 편지이기도 하고, 때로는 지금처럼 불특정한 다수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할 겁니다. 편지를 쓰자고 생각만 했지, 이 편지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어요. 그래서 살짝 설레고 기대도 되네요.     


첫 편지를 쓰며 어떤 그림책을 가져올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처음’이라는 건 왠지 뭐든 의미를 두게 되니까요. 그래서 책들과 가만히 눈을 맞춰봤어요. 책들과 눈을 맞추다니 웃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셨죠? 수업에 쓰거나 책방 인스타그램에 올릴 책을 골라야 하는데 딱 떠오른 책이 없을 때 제가 하는 방법이에요. 책방에 전시된 책의 표지를 하나하나 가만히 살펴보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아!’ 하고 들어오는 책이 있어요. 저는 이걸 책과 눈 마주쳤다고 말해요.     


그렇게 제게 온 책은 ‘통이는 그런 고양이야’라는 책이었어요. 책에 등장하지 않는 누군가가 통이를 소개해 주며 시작합니다. 통이는 줄무늬가 있고, 초록색 눈에, 분홍색 코를 가진 남자 고양이예요. 많이 먹고 오줌도 많이 싸고 통도 굵게 누는 튼튼한 고양이죠. 여기까지 읽다 보면 보통의 평범한 고양이 이야기인가 싶어요. 그런데 그다음 장에서 통이에게는 다리 하나가 없다고 합니다. 평범해 보이는 통이에게 평범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겠다고 짐작이 되면서 긴장이 됩니다. 역시 이어지는 장면에서 불편한 몸 때문에 통이가 할 수 없는 것들이 나와요. 가만히 앉아 남은 한쪽 다리를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통이가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통이는 그런 고양이야, 마야 막스 지음, 김보나 옮김, 나는별, 2023

저는 작년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어요. 오랜 꿈이었던 책방을 드디어 열었고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고 즐겁게 지내던 바로 딱 그때요. ‘왜 하필 지금, 어째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누군가 너는 행복할 수 없다고 벌을 주는 것 같았어요. 운명이 원망스러웠고,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저를 탓했지요. 수술했고, 한동안 책방 문을 닫아야 했어요. 1년 정도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는 결과에 좌절하기도 했어요. 삶이 이대로 멈춰버릴 것만 같아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항암치료를 하고 있지만 감사하게도 책방 문을 열고 있어요. 물론 쉬는 날이 좀 많긴 하지만요. 그림책을 소개하고, 수업도 하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려요. 물론 암 진단을 받고 바뀐 것들도 많아요. 먹는 것도 조절해야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하고 싶은 일들을 다 하지 못하고 참고 있어요. 하지만 걱정했던 것처럼 내 삶이 멈추진 않았어요. 나는 여전히 살고 있어요. 암 진단을 받기 전과 아주 다르지 않게요.     


문득 통이가 없어진 다리가 아니라 남은 다리를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다리를 보고 있는 통이의 표정이 그리 슬퍼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요. 통이는 다리 하나가 없지만, 여느 고양이와 다름없이 느긋하게 돌아다니고, 비 오는 걸 보기도 하고, 마른 멸치도 먹어요. 통이가 누워서 뒹굴뒹굴하며 ‘아, 좋다, 좋아!’라고 말할 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저도 통이에게 대답했죠. ‘그래, 너무 좋아, 그렇지?’     

파워 J인 저는 매년 신나게 신년 계획을 세우곤 했어요. 하지만 올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제 컨디션이 어떨지, 제가 뭘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서요. ‘희망찬 새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누군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어요. 걱정과 좌절, 불안을 안고 시작하는 새해도 있을 텐데요. 그렇지만 우리가 희망을 말하는 건 응원하고 싶고, 나누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요? 마야 막스 작가님의 독자에게 남기는 말 중에 힘이 되어 준 문장이 있어 소개합니다. 혹시 누군가 저처럼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힘들어하는 분이 계신다면, 통이를 통해 용기를 얻었으면 해서요.     


나에게 없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것 때문에 끙끙 앓기보다

내가 가진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기뻐하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다 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 사실을 오래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통이처럼 올해를 보내려고 해요. 여러분은요?     


2024년 1월 12일

그림이 글에게 책방지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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