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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꿈 Jan 19. 2024

두 번째 편지

나이젤과 꿈꾸는 달

H 그리고 C에게


어젠 다들 잘 갔어요? 네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도 헤어지는 시간이 어쩜 그렇게 아쉽던지요. 어제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오면서 내내 ‘아, 좋다.’를 연신 말했어요. 몽글 몽글 피어나는 그 감정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은데, 아무리 떠올려도 생각나는 단어가 ‘좋다.’밖에 없어 조금 좌절 하면서요.     


우리는 그림 에세이 책을 출간하자는 목표로 함께하게 되었지요. 우리 셋 말고 또 몇 명의 친구들도 함께요. C와 나는 자주 만나는 사이지만 H와 내가 실제로 만난 건 어제가 처음이었어요. C와 H도요. 1년 정도 함께 작업을 하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글로 대화로 오래 나누어서였을까요? 한 달에 한두 번씩 줌으로 꾸준히 만났기 때문일까요? 처음 만남이 전혀 처음 같지 않고 참 편하고 좋았어요.     


우리 셋은 닮은 점이 참 많아요. 결을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꿈을 꾸고 있어서 그런가 봐요. 전공을 한 것도 아니고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지만, 삶의 어느 순간에 너무나 하고 싶은 게 생긴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무모하게 그 일을 하고 있죠. 이런저런 도전과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지만, 아직은 뚜렷한 성과도 결과도 없어요. 부족한 재능에 자주 좌절하고, 재능을 보충할 노력을 하지 않는다며 자책하기도 하고요. “우리는 왜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지?” 하고 함께 웃었지만 나는 두 사람과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참 좋았어요. 우리의 꿈 이야기요.     


그림을 배우고 싶어서 화실에 등록했을 때였어요. 그때 주위 사람들이 “지금 그림 배워서 뭐 하게?”, “그 돈이면 애들 학원 하나 더 보내는 게 낫지 않아?”라는 말을 들었어요. 경제적인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 배움은 의미가 없는 걸까? 주부는, 엄마는 배우고 싶은 걸 배우면 안 되는 걸까?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하기도 했지만 내심 죄책감 비슷한 것을 느끼곤 했어요. 하면 안 되는 걸 하는 것 같은 기분이요. 그리고 그림을 통해 꿈이 생겼지만, 그 꿈을 쉽게 말할 수 없었어요.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거든요. 그 꿈을 이루는 게 얼마나 힘든지,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실현 가능성이 얼마나 희박한지…. 그렇게 지레 기를 꺾는 말들이었어요.



나이젤의 꿈은 우주비행사, 발레리노, 슈퍼히어로예요. 나이젤은 밤이 되면 달에게 자기의 꿈을 이야기하며 소중하게 간직하죠. 나이절의 꿈은 밝고 찬란하지만, 아직 세상에 보여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학교에서는 직업 탐구 주간이 시작되었어요. 책을 찾아봤지만, 자신과 닮은 발레리노는 없는 것 같고, 땅에서 하늘까진 너무 멀어 보여요. 자신의 꿈을 발표하는 친구들과 달리 나이젤은 용기 내서 자신의 꿈을 말하지 못했어요.나이젤이 우리랑 좀 비슷해 보이지 않아요?     


그렇다고 나이젤이 꿈을 포기한 건 아니에요. 친구들 앞에서 말하진 못했지만, 밤마다 달에게 꿈을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큰 꿈을 꾸라고,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라고 응원해 주는 부모님이 계셨지요. 나이젤은 용기를 내어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꿈을 말합니다.     


어제 H, C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에게 두 사람이 달이고 부모님인 것 같았어요. ‘나 이런 거 하고 싶어.’, ‘나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말할 때 부끄럽지 않았거든요. 나를 이해하고 내 고민에 공감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두 사람이었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이 책의 소개 글에 보면 모든 어린이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글이 있어요. 나는 모든 어린이와 모든 어른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한다고 살짝 바꾸고 싶어요. 꿈은 어린이만 꿀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마흔 넘은 아줌마도 꿈을 꿀 수 있고, 꿈을 간직하고 있을 때 얼마나 행복한지 말해주고 싶어요. 설사 그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지금 이렇게 애쓰고 있는 것만으로 살아있는 것 같다고요.     


그러니까 H, 그리고 C. 우리 마음껏 꿈꿔요. 꿈을 이야기하며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내가 두 사람의 달이 되어 다 지켜볼게요. 그리고 가끔 두 사람의 용기가 사라질 때면 내가 이야기해 줄게요. 그대들의 꿈을 응원한다고. 꿈꾸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라고. 나는 두 사람이 자랑스럽다고.


2024년 1월 19일

그림이 글에게 책방지기 드림




나이젤과 꿈꾸는 달 


앤트완 이디 (지은이),그레이시 장 (그림),홍연미 (옮긴이), 열린어린이 2023-09-30 원제 : Nigel and the moon

본문에 사용된 그림책 이미지는 출판사 제공 이미지를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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