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이는 그런 고양이야
몇 년째 한 도서관에서 그림책테라피 수업을 하고 있다. 22년 12월 수업에서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참가자들과 1년 뒤 나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1년 뒤 23년 12월 나는 과거의 내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건강 잘 돌보고 있니? 건강 돌보기를 또 제일 뒤로 미뤘지?” 그리고 그 뒤에는 책방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일을 다 해내고 오랜 꿈을 이룬 나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내용이 이어졌다.
편지를 받고는 꽤 놀랐다. 건강에 관한 질문을 가장 먼저 던졌다는 건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걸 알면서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들을 먼저 하느라 몸 돌보기를 뒤로 미룰 거라는 걸 알고 짐작했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과거의 소망과 달리 나는 편지에서 계획했던 일들을 대부분 하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하느라 책방 문을 제때 여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건강검진을 몇 번 건너뛰었던 게 실수였을까?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책방을 열고 신이나 일에 너무 몰입했던 게 원인이었을까? 갑작스럽게 찾아온 암은 순식간에 나를 무너뜨리고 두려움에 빠뜨렸다. 아직은 엄마가 필요한 아이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 곁을 일찍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아팠다. 좋아하는 것을 찾고 책방을 열고 원하던 일을 하며 난 참 운이 좋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하필 이 순간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마치 누군가 "너는 절대 행복해선 안 돼."하고 벌을 주는 기분이었다. 원망스럽고 절망스러웠다.
정확한 병기와 치료 방향을 찾기 위해 많은 검사를 했다. 병원을 갈 때마다 새롭게 생기는 병원 일정 때문에 책방 문을 수시로 닫아야 했다. 수술과 항암치료, 방사선치료까지 모두 마치려면 1년가량의 세월이 걸린다고 했다. 책방에서 진행하던 책 모임과 강의를 모두 중단했다. 지원사업에 선정됐지만 사정을 설명하고 사업포기서를 제출했다. 진행하고 있던 외부 강의를 마무리한 뒤 새로운 수업 의뢰는 받지 않았다.
이제 겨우 1년 된 책방이 사람들에게 잊힐까 봐, 치료를 받느라 책방 문을 아예 닫게 될까 봐 걱정됐다. 3주 간격으로 항암 주사를 맞는데, 주사를 맞는 주는 몸이 힘들어 책방 문을 아예 열지 못했다. 2주, 3주 차에는 일주일에 겨우 세 번 문을 열었지만, 운영시간도 전보다는 줄여야 했다. 몸이 먼저인 것을 알지만, 워낙 일을 좋아했던 나는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하지 못하는 이 상황이 더 답답하고 힘들었다. 이제 겨우 꼭 누군가 억지로 날개를 꺾어 바닥에 주저앉힌 것처럼 느껴졌다.
통이는 초록색 눈과 연분홍색 코, 줄무늬가 있는 남자 고양이다. 많이 먹고 오줌도 많이 누는 여느 고양이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통이는 사실 다리 하나가 없다. 그래서 통이는 빨리 달리지도 못하고, 새를 잡으려다가도 놓치기 일쑤다.
통이가 꼭 나 같았다. “너는 다리가 하나 없어서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지 못하는구나. 나는 지금 암에 걸려서 꼭 너처럼 그래,” 통이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안쓰러워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는데, 통이가 나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해준다.
통이는 세 다리로 느긋하고 돌아다니고, 꼬리 잡기를 하며 뱅글뱅글 돌기도 한다. 볕이 잘 드는 풀밭에서 잠이 들고 바람 내음도 맡는다. 할 수 없는 일들도 있지만, 통이는 세 다리로도 충분히 고양이로서 소소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아, 좋다 좋아!”
내 삶에서 생기는 불행과 고통, 실패와 좌절은 내가 선택할 수 없지만, 그런 것들을 어떤 자세로 마주하고 대할지는 선택할 수 있겠구나. 나는 암 진단을 받았지만, 다행히 치료가 가능하고, 심각한 신체적 고통은 없다. 머리카락은 몽땅 빠졌지만, 예쁜 가발을 쓰고 다닐 수 있고, 전보다 더 건강히 먹고 운동을 하며 몸을 돌보고 있다. 일할 수 있는 직장과 할 일이 있고 걱정하고 살펴주는 친구들이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같이 먹는 밥, 돌 틈 사이에 피어나는 꽃, 길을 걸어가는 고양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이미 충분히 누리고 있어서 소중한 줄 몰랐던 작은 것들을 더 많이 돌아보고 감사하는 날을 보내고 되었다. 아, 좋다, 좋아! 나는 지금 충분히 행복하구나. 달라진 게 많았지만, 중요한 건 변하지 않았구나!
이 책의 저자인 막스 작가가 독자에게 남기는 말 중에 내게 힘이 되어 준 문장이 있다. 혹시 나처럼 뜻하진 상황에서 좌절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통이를 통해서, 그리고 작가의 말을 통해서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없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것 때문에 끙끙 앓기보다
내가 가진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기뻐하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다 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 사실을 오래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