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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ent G Jun 22. 2021

2관: EGYPTIAN BLUE(3)

남들보다 조금 늦을지라도

EGYPTIAN BLUE 3번째 글 시작해보겠습니다.


(G)  만약 KAIST에 계속 계셨더라면 그런 연구를 하는 직업을 가졌겠네요?     


(A)  네. 아마 그랬을 거예요. 사실 다양한 진로가 있었어요. 연구직에 남는 사람도 많고, 공대 쪽으로 가서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의전원에 가서 의사가 되거나, 변리사도 많이 하고, 행정고시로 기술직으로 가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러한 진로들이 제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러한 일을 하면서 행복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받은 “네가 행복한 일을 하면서 살아라.”에 비추어 본 거죠. 그랬을 때 그나마 연구직이 제일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카이스트에 3년 정도 지내며 여러 경험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제가 제 자신에 대해 그리고 카이스트에 대해 아주 많이 모른 채 카이스트에 입학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죠.     


대학생 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또 다른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는데, 몇몇 사람들은 그 학문에 미쳐있고 그 학문이 아니면 안 되는 생활을 하는데 저는 전혀 아니었던 거예요. 제 인생의 1순위, 2순위로 학문 연구를 삼을 자신이 도저히 없었어요. 유능하고 학문에 진심인 친구들을 보며 ‘이러한 사람들이 연구원을 하면서 사는 것이 진짜 행복하게 사는 가겠구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죠.      


마치, 어렸을 때는 명문대에 가면 성공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생각과 너무도 달랐던 거죠.     


(G)  흔히 좋은 대학교만 가면 꽃길이 열려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니까 생각과 현실이 달랐던 거네요.     


(A)  네. 카이스트에서 선택할 수 있는 진로 중 연구직이 가장 제게 적합하다고 생각했는데, 학문에 임하는 직업을 갖기에는 재능도 재능을 극복할 열정도 제겐 없었단 걸 깨달았죠. 혼란의 시기였어요. 대학교 생활 중 여러 활동을 하면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았죠. 나에 대해 잘 이해하는 게 먼저였던 거에요. 초, 중, 고 시절에 나에 대해 치열하게 탐색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어른들 말씀만 잘 듣는 제 성격 탓도 있었겠지만, 생각해보면 현 공교육 시스템으로는 대학 진학 전 자신에 대해 판단하고 적성을 찾기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여담이지만, 그런 이유로 요즘 사람들이 일 자체에서 행복을 찾기보다는 일이 끝난 후에 행복을 찾는 ‘워라밸’을 추구하는 것 아닐까요? 행복과 성취감을 주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과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그저 흘러온 대로 직장을 구하다 보니 자신과 맞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일을 경제활동에만 국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카이스트에서 했던 많은 경험은 저에 대해 이해하고 지금의 길을 걷게 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어요. 먼저 대전에 있는 마을회관에서 초등학생들 공부 봐주는 봉사를 했었어요. 단순히 해보지 않은 부분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서였죠. 그리고 초등학교 2학년 학생 과외도 했었어요. 우연히도 제가 대학생 때 맡았던 학생들이 모두 초등학생이었더라고요.   

   

(G)  아니, 초등학생 2학년 때부터 과외를 받아요??     


(A)  그 학생은 조금 특수하게 미국에 있는 대학교를 원하던 학생이라서 원서로 된 책을 가지고 선행학습을 하게 된 경우죠. 그리고 국악 동아리를 하면서 ‘해금’을 배우게 되었어요. 규모가 작은 초등학교에서 방학 때 한 학급을 맡아서 1주일 정도 해금을 알려주는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학생들이 너무 귀엽고 기숙사에 돌아와서도 생각이 나고 힐링이 되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여러 고민을 하던 와중에 ‘내가 애들이랑 상호작용하고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구나.’를 알게 되었어요.     


(G)  3학년 때까지만 다니고 수능을 다시 준비한 건가요?     


(A)  3학년 6학기를 모두 마친 것은 아니고요. 카이스트 3년 차 9월에 휴학하고 수능 준비를 시작했죠. 그때 ‘내가 왜 여기 있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얼른 초등교사를 준비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가족과 상의한 후에 수능을 준비해서 교대 진학을 하게 된 경우죠.      

(G)  갑자기 궁금한 내용인데, 교대를 선생님 고향 근처에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었음에도 충청권에 소재한 교대로 가게 된 이유는 따로 있나요?     


(A)  아주 단순한 이유인데, 대전이랑 가까워서 그렇게 선택했어요. 아무래도 대학교 친구들과는 친하게 지내고 있었으니까 그들이랑 계속 어울리고 싶은 마음에 가까운 지역으로 가게 된 거죠! 초등학생 과외 하던 것도 교대 와서 1년 정도 더 하게 되어서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졌습니다.     

(G)  그럼 KAIST 재학 중에 활동했던 동아리는 어떤 동아리였어요?     


(A)  해동검도 동아리, 국악 동아리, 마을회관에서 봉사활동 한 활동을 했습니다.     


(G)  제가 다음으로 질문하려고 했던 내용이 먼저 나와서요. 잠시 정리하고 가면, 제가 교대 가서 실습을 가면 은근히 애들이랑 시간 보내는 게 힘들고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실습 중이나 실습 후에 진로에 대해 걱정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선생님의 경우는 전에 다니던 대학에서 여러 활동을 하면서 초등학생과 함께 지내는 것이 좋아서 교대에 진학하게 된 경우라고 정리해도 괜찮을까요?     


(A)  그렇죠. 교대 오기 전에 초등학생과 어울리는 게 즐겁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항상 ‘내가 무엇을 해야 행복할까?’라는 것을 고민하다가 KAIST에서는 내가 가질 수 있는 진로는 그 질문에 부합하지 않던 찰나에 교대를 가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거죠! 더 이상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겠다. 조금이라도 빨리 교대를 마치고 아이들과 만나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교대 와서 많이 듣던 질문 중에 하나가 ‘왜 졸업하지 않고 왔어요?’라는 질문이었는데 전 대학을 다니면서 제가 하고 싶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남은 학기를 다니는 것이 저에겐 의미 없는 일이라 생각해서 빠른 판단을 내렸었던 것 같아요.      


(G)  처음 KAIST에 와서 힘들었던 것처럼 2, 3학년 때도 힘들었으니까 얼른 벗어나고 싶었던 것도 있었겠네요?     


(A)  오히려 1학년 때가 가장 힘들었고, 2, 3학년 때 올라가면서는 모두가 기반이 없는 곳(zero base)에서 시작해서 더 나았어요. 1학년 때 배우는 내용 일부는 과학고에서도 다루기 때문에 과학고 출신 학생들 수준에 맞춰진 강의 내용이 어려웠죠. 영어 수업에 더 적응하기 어렵기도 했고요. 전공을 들어가면서는 조금 수월해졌어요. 들은 이야기로는 일반고 출신 학생들의 경우 1학년 때 과학고, 영재고 학생들과 성적 격차가 다소 있다가 2, 3학년이 되면서 점차 격차가 준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결론적으로 솔직히 말하면 카이스트에 재학했던 내내 학업이 버거웠던 것은 사실입니다. 학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고, 저보다 학문적으로 우수한 친구들이 아주 많았고, 제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했죠.     


(G)  여러 복합적인 이유와 상황이 있었네요. 그럼 다음 질문으로 가보겠습니다. 과학을 다른 선생님들보다는 많이 알고 있는 입장에서 초등학생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과학 부분이 있을까요? 질문이 다듬어지지 않은 것 같지만요.     


(A)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말하는 건가요?     


(G)  학생들 중에서는 ‘그냥 과학 어렵다.’라고 생각하는 학생도 많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는 과학이나 수학이 조금 실용적인 측면에서 설명해주면 그래도 따라가는 학생이었는데, ‘이러한 부분은 배웠을 때의 도움이 된다.’ 이런 부분이 있을까요?   

  

(A)  음… 다른 과목에서도 비슷하겠지만, 어떤 문제 현상이 발생하였을 때 그 현상이 발생하기 전 여러 가지 원인이 있잖아요. 과학은 그러한 이유를 규명해나가는 거고, 자연의 법칙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잖아요. 그런 탐구 능력을 기르다 보면, 저는 이러한 과정이 실생활에 적용되는 것 같더라고요.      


(G)  탐구 능력도 종류가 많은데 그중에서 특히 강조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제 경우는 수업 시간에 특히 ‘관찰력’을 강조합니다. 문장을 잘 읽는 것, 수학 문제에서 조건을 잘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미술 시간에 어떤 대상을 그릴 때에는 그리는 시간보다 관찰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하거든요. 학생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릴 때 눈앞에 있는 대상을 바라보지 않고 그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A)  음. 탐구 능력 중에 특별히 한 가지가 중요하다 이런 건 없고, ‘어떤 통합 탐구 능력 중에서 특별히 이것을 중요시하라.’는 것도 없습니다. 그런 건 수단일 뿐이고, 탐구 능력을 사용하여 현상을 인지하고, 가설을 세워 실험해보고,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훈련이 되다 보면 실생활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남들보다 주변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이러한 이유가 있으니 이러한 현상이 생기겠지?’라는 질문을 종종 합니다. 어떤 문제를 발견했으면, 왜 그럴까를 생각하거나, 나만의 가설을 세워보고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저만의 ‘사고체계’가 잡혔다고 이야기해 드릴 수 있겠네요!     


(G)  좋은 의견이네요. 저도 앞으로 그런 쪽으로 생각해보려고 해봐야겠습니다.   

  

(A)  갑자기 생각나는 부분이 있어서 먼저 말해드릴게요. 제가 고등학생 때까지는 주변 어른들의 말을 잘 들으며 공부를 해서, 학교에서 제가 어디를 가느냐에 대해 관심도 있고 저 스스로도 좋은 대학교에 가야지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래야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생각의 변화를 준 사건이 있었어요. 그런 생각으로 대학교에 가서 그 안에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교내에 있는 카페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거기서 일하시는 점장분이나 직원분은 일반적인 사람의 표본이잖아요. 흔히 말하는 명문대학교를 간 경우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분들이 명문대를 가지 않아서 불행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했는데, 답은 불행하지 않은 쪽이었습니다. 오히려 즐겁지 않은 것을 하며 불행하고 스트레스 받고 있는 건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그때 하게 되었어요. 이 계기로 인해서 다니고 있던 대학을 그만둘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죠!   

   

(G)  새로운 도전을 하기까지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이유’라고 보면 되겠네요?     


(A)  핵심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은연중에 좋은 대학교를 졸업해야 저 스스로 행복할 것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일이었죠.


<4편에서 이어집니다.>


- 도슨트 G


어딘가로 향하는 문, 20X20cm, Acrylic painting on canvas, 2021, ㅇㅈㅇ(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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