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3학년 때부터는 미술에 시간을 더 쏟을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모두가 저보다 잘 그리는 것 같았고 저만 진도가 안 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그랬을 겁니다. 괜히 미술을 선택했나 싶고, 이제는소스(미술 심화) 변경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을 원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방법이나 행동으로 이 상황을 극복하실 생각이십니까?
여러 방법 중에 저는 ‘다른 사람보다 실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하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스스로를 인정하는 행동이 별 거 아닐 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스스로의 부족함이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꽤 어렵습니다. 주변에 뉴스를 보거나, 친구들을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라고 모든 점을 인정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저 상황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할 뿐 진전되는 것이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한국화 시간에 산수화(서양화에서 풍경화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를 그리는 과제가 있었습니다. 각자 실제 풍경을 사진으로 찍은 다음에 연필을 이용하여 스케치하고 먹으로 그리기 시작하면 되는 과정이에요. 이때 갑자기 오기(?)가 발동해 일부러 어려운 성벽 같은 곳을 찍어서 스케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후회를 여러 번 하긴했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스케치한 초안이 같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비슷한 그림이야 있었지만 똑같은 그림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한 획을 긋는 실력은 차이가 날 수 있지만, 결국 각자가 그려야 하는 것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그림을 그리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그리고 이게 웬일인가 교수님이 제가 그린 스케치로 시범을 보여주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속으로는 너무 좋았습니다. 교수님으로부터 암묵적으로(?) 인정받은 것 같았고, 스케치하는 과정에서 힘들었지만 그 노력(?)에 대해 피드백받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제 그림이 잘 그린 건 절대 아닙니다. 그렇게 작은 성취감들이 시간이 가면서 쌓이게 되었고, 다른 미술 시간과도 연결되었습니다. 각 개인이 과거와 비교해서 발전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옆 사람과 실력을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저는 대학교 미술 시간에 알게되었습니다.
본인의 실력이나 현 상태를 인정하는 것을 조금 어려운 말로 '메타인지(Meta-cognition)'라고 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보시면 전문가가 자세하고 쉽게 알려주시니 참고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내 위에 또 다른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근데 이게 말이 쉽지 실제로는 어렵습니다. 메타 인지 능력을 키우고 싶다면 꾸준히 실천하여 습관으로 잡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지만 시도할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고등학생 때 담임선생님은 아니셨지만, 옆 반 선생님께서 저한테 조언해주시길, “너는 기본은 어느 정도 되어 있는데, 주변에서 맴돌아서 정작 중요한 핵심을 못 찾고 있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때는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고, 어떻게 공부 방법을 수정하고 연결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시간이 흘러 나중에 돌이켜보니 저는 메타 인지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시간을 돌릴 수는 없지만 가끔 돌이켜보면 상당히 아쉽긴 합니다.
대부분 공부한다고 하면, 아는 것을 위주로 공부합니다. 공부할 때 비율이 아는 것 70~80%, 모르는 것 20~30%면 다행일 거예요. 그것도 물론 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부’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요. 일반적인 시험을 위한 공부라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모르는 내용이나 주제를 보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마련이죠. 게다가 틀릴 확률도 높아 보여서 쉽게 포기하게 됩니다. 그런 행동이 반복되면 당연히 원하는 점수와 멀어지고, ‘왜 나는 많이 공부했는데 안 될까?’라는 걱정과 함께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죠.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학습된 무기력감’에 빠질 위험도 있습니다.
개개인마다 처한 위치는 다릅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교사가 개별화된 피드백을 주는 것이 맞지만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저는 진실과 마주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스스로에게 무엇인가를 숨기고 싶었고, 직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돌아와야 하는 여정은 길어질 뿐이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잘못되어있으면 검색을 다시 해서 목적지를 설정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목적지를 재설정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부디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독자 분들은 저와 같은 실수를 덜 겪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시행착오를 하나도 겪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요.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증세이다.” -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이 한 말을 다시 살펴보면, 메타인지가 부족하면 몸이 고생하거나 같은 실수를 계속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알려줍니다.
시간이 지나 메타인지를 조금이나마 발휘하게 되었고 세상에 많은 부분에 대해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질문’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나 서로가 말하고 있는 단어의 뜻이 맞는지 등을 위해서는 물어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첫 단추를 잘 꿰매야 하는 것처럼 첫 질문이 대화를 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변 지인 분들에게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같은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며 행동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같은 장소에 있지만 관점은 모두 다른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해졌고 다양한 질문을 던져서 답변을 받아 이 글이 순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질문만을 많이 하는 것이 물론 능사는 아닙니다. 전제 조건 중에 하나는 ‘제대로 된 질문’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대학교에 입학해 담당 교수님과 면담 시간을 가졌을 때 질문을 잘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곧장 까지는 아니지만 행동으로 옮겨 질문과 관련된 책 하나를 골라서 읽었습니다. 한 권을 읽고 얻은 것은 질문을 제대로 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기자들이 질문하거나 영상에서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면서 아직까지도 살펴보고 적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짧은 기간에 완성(?)되는 것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습관처럼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