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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연한출발 Sep 07. 2015

장춘長春에 첫눈 오던 날

북한 아저씨들의 오징어무침

   창문 틈으로 기름 볶는 냄새가 흘러 들어왔다. 장춘의 저녁 하는 냄새는 거의가 기름 볶는 냄새다. 진동하는 기름 냄새에 지글지글 음식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방 안이 기름 냄새로 가득해지니 금세 허기가 졌다. 이제 익숙해진 손놀림으로 일인분의 쌀을 씻어 밥솥의 취사버튼을 눌렀다.


   조금 지나자 김이 피어오르며 밥 냄새가 올라왔다. 방 안의 하얀 벽들을 주시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내 흰 페인트 벽에 반짝거리는 바퀴벌레가 나타났다. 수십 번을 봤지만 언제나 기분 나쁘게 생긴 놈이다. 최대한 조용히 빠른 속도로 휴지를 두껍게 감아 누른다.


   ‘바스락’


   바퀴벌레의 몸이 뭉개지는 느낌이 든 후에 다시 한 번 휴지를 감아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린다. 벽에 바퀴벌레의 흔적이 남았다. 밥을 먹어야하기에 휴지에 비누까지 묻혀 열심히 닦아보지만 하얀 페인트 벽에 바퀴벌레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버렸다.


   퉁퉁 불어버린 어묵이 몇 개 떠 있는 국을 데우며 밥이 되길 기다린다. 국 속에서 은빛 멸치가루가 둥둥 떠오른다. 그 모양이 액체가 탁한 스노우볼(snowball)같다 생각하며 무심결에 창밖을 보니 하늘도 마침 누렇고 탁한 어묵국색이다.

 

  ‘겨울 황사인가…’   


  창 너머에는 만주벌판이 펼쳐져있다. 만주벌판 너머에는 시베리아벌판이… 12월의 초입이지만 시베리아 바람은 이미 여러 차례 지나간 후다. 만주 벌판이 황량하다.


“챵-츈(長春)”


이 곳의 지명을 되뇌어본다. 11월부터 4월까지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겨울이 계속되다 5월이 돼서야 봄이 되는가하면 금세 여름 날씨가 되어버리는 ‘장춘’. 이곳에서 지낸지 근 일 년이 되고 보니 긴 봄이라는 역설적 의미에 속는 기분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났다.


  “반장 있나?” 


  문 밖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날 찾았다.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북한 아저씨 두 분이 찾아왔다.


  “오늘 수업에는 왜 안 나왔나? 감기가 들었었나? 이거 우리가 한기야. 오징어무침.아주 맵게 되었는데 맛은 어떨지 몰라.  모두 먹고 감기 나아 내일은 꼭 나오라우.”


  아저씨들의 가슴에는 항상 보던 김일성배지가 없었다. 깨끗한 양복과 잘 닦인 구두가 아닌 쑥색 체육복에 슬리퍼 차림의 아저씨들이 내게 반찬통을 내밀었다.


  내가 공부하는 반에는 김일성대학교, 평양의과대학교 교수님이라는 내 아버지뻘의 아저씨 네 분이 계셨다. 학기가 시작되고 혹시 모를 맘에 눈길 한 번 보내지 않았는데 반장선거 때 아저씨 네 분이 뒤에서 뭐라 의논을 하더니 나를 밀어주었다.


  “그래도 같은 동포가 좋지.”


  그 때부터 아저씨들은 내게 농담도 걸고 남한사정도 묻곤 하셨다. 어느 날은 “반장동무! 우리가 무섭나? 북조선이 무서운가?”라는 질문에 당황해 머뭇대는 내게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우린 동포라고 우리가 물리쳐야 할 것은 미국과 일본이지.”라며 굳어버린 내 표정과는 상관없이 유쾌하게 웃기도 하셨다.

 

  “그릇 되돌려줄 때 빈 통은 안 돼. 반장 동무 음식 솜씨 좀 보자우.”


  아저씨들은 그렇게 손 한 번 흔드시곤 방으로 돌아가셨다.

  

  밥이 거의 다 됐는지 밥솥 위쪽의 창에 김이 잔뜩 서려있었다. 불에 얹어놓았던 어묵국을 내려놓고 냉장고에서 조선족회사에서 만든 김치를 꺼내놓고 김 한 봉지도 꺼냈다. 아저씨들이 준 통의 뚜껑을 여니 무와 오징어가 빨간 양념에 맛깔나게 무쳐져 있다. 손으로 덥석 하나 집어 먹어보니 매콤하면서 톡 쏘는 맛이 감기가 싹 달아날 맛이다. 집안일 한 번 해본적 없다는 아저씨들의 솜씨가 나보다 나았다.

   

   ‘딸깍’


    취사가 끝났다는 소리가 났다. 밥통 앞에 쭈그려 앉아 뚜껑을 여니 밥 김이 후끈하게 얼굴로 올라온다. 밥이 아주 잘 됐다. 일인분의 밥을 퍼내고 일어나다 문득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새 어둑해진 겨울 하늘에서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챵-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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