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서 만난 고마운 인도 사람들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아챘을 때는 열차가 떠난 지 30분 뒤였다. 기차 이름을 잘못보는 바람에 기차를 놓쳐버렸다. 열차 예약 사이트에서 너무 많은 정보를 본 탓에 열차 이름을 헷갈린 것이다.
열차 지연이 일상인 인도이니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역무원을 찾았지만 내가 예약한 익스프레스 열차는 '비싼' 열차라서 1분의 지연도 없이 떠나가 버렸다고 했다. 오늘 내로 델리에 가야 한다면 5시간이나 걸리는 열차만 남아있다고 했다.
이 느린 열차를 타면 다음 열차를 탈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낮아진다. 시간이 너무 아슬아슬했다. 오늘 밤 델리에 가지 못하면 바라나시까지 가는 일정이 모두 망가지고 한밤중 델리에서 호텔도 다시 잡아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델리로 돌아가야 했기에 느린 기차라도 타야했고 모든 건 운에 맡길 수 밖에 없었다.
티켓을 살 시간도 없이 열차에 올랐다. 이미 45분이 지연된 상태에서 앞으로 지연 없이 가준다면 바라나시행으로 갈아탈 수 있지만, 여기는 인도.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면 바라나시행 기차표를 새로 예약해야 해서 급히 예약 웹사이트를 검색했는데 표가 없었다. 다음 날의 표도 없었다. 그다음 날도... 오류가 난 줄 알았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가는 날이 장날. 바라나시의 유명한 축제, 데브 디왈리였다.
기차를 놓치면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일정이 엉망이 된다. 왜 한 번 더 확인을 안 했을까.
힘이 빠져버린 나는 기차의 좁은 복도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인도인들이 엉엉 울고 있는 나와 당황한 남편을 바라봤다. 도대체 저 여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무척이나 궁금한 얼굴이었다.
그러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남편에게 힌디어로 무슨 얘기를 했다. 자기는 이제 1층 침대에 앉아서 갈 거니까 자기 3층 좌석을 쓰라는 말인 것 같았다. 얼마나 고마운지. 짜이 한잔 사드리며 연신 땡큐와 단야밧을 말했는데 쿨한 인도 아저씨는 그저 고개를 까딱까딱할 뿐이었다.
(인도 사람들은 고개를 앞뒤로 끄떡하지 않고 옆으로 까딱까닥하는데 그게 참 쿨해 보인다)
남편과 3층 침대에서 엉거주춤 앉아있다보니 검표원이 왔다. 여전히 훌쩍대고 있는 나를 보고 표를 보여 달라기에 일단 우리가 놓친 열차표를 보여주며 "나 이거 놓쳤다. 나 너무 슬프다. 이 열차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는데 막 웃기 시작했다. 이내 궁금해하던 인도 사람들에게도 설명해주면서 또 막 웃었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이여자가 왜 울고 있었는지 이해한 듯 했다. 덕분에 울음을 그치고 지금 탄 열차표를 사려고 티켓값이 얼마인지 물어보니 됐다며 가버렸다. 역시 쿨했다.
기차는 기대에 저버리지 않고 열심히 멈춰가며 달렸다. 온갖 정보를 다 뒤져보며 계산한 예상 도착 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지연이 계속되는 기차에서 가지 않는 시간을 겨우겨우 보내며 델리에 가까워졌는데 열차가 한층 더 느려졌다.
결국 나와 남편은 도중에 기차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탈 계획을 짰다. 구글 맵을 보니 아주 아슬아슬하게 가능할 것 같아서 짐을 챙겨 내리려 했다. 근데 그 순간 우리를 한참 바라보던 청년이 말을 걸었다.
"너네 델리 가는 거 아냐? 왜 내리려고 해?"
우리는 계획을 얘기해주었다. 그러자 청년은 잠시 기다리라며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델리 상황을 물어보더니 단호히 우리를 붙잡았다. 이대로 기차를 타고 가야한다. 만약 내려서 택시 타면 차가 막혀서 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한다. 우리는 청년의 단호한 태도를 믿고 기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기차는 느리지만 계속해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결국 고대하던 뉴델리역에 도착했다.
바라나시행 기차 시간은 이미 10분이나 지나있었다. 하지만 여기는 인도, 그 기차도 지연됐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남편과 나는 달리던 기차에서 뛰어내려 (다른 인도 사람들도 하기에 따라했는데 꽤 위험했다) 바라나시행 기차를 찾아 미친 듯이 뛰었다.
배낭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며 인도의 힌두신들과 부처님 하느님을 다 찾았다.
제발 탈 수 있게 해주세요.
도착한 플랫폼에는 다행히 기차가 있었다. 역시 인도! 이 열차도 출발이 지연됐던 것이다. 이제 막 출발한 기차는 이미 천천히 달리고 있었고 우리는 뛰어올랐다.
(움직이는 기차에서 타고 내리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정말 위험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눈 앞에 기차가 있는걸)
땀범벅이 된 몸을 물티슈로 대충 닦으며 인도의 기차 지연에 감사했고, 힌두신을 비롯한 세상 모든 신들에게 감사하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린 무사히 바라나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