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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강 작가의 독일삶 Aug 06. 2021

독일, 나치라면 다리에 힘이 빠지는 이유

생명존엄은 독일인들의 영원한 숙제

 독일 스스로 나치에 대해  강도 높게 선을 긋고 도리질을 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자신들의 살을 깎아먹은 과거에 스스로도 몸서리를 치기 때문이다. 독일에 살면 살수록 느끼는 것은, 개인적으로 독일이 전 세계에서 가장 지독하고 강한 민족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들을 겪을수록 정이 떨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중 일례로 나치는 유대인 말살 외에도 우월 아리아인 양산을 위해 자국의 장애인들을 강제로 안락사시킨 전력이 있다.

강제 수용된 장애인과 정신 질환자들을 위의 명령에 따라 살해하고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에게는 폐렴이나 뇌질환으로 사망했다는 편지만 보낸다. 이른바 1939년 히틀러가 서명한, 장애인 강제 안락사 살해명령서 T4 작전의 이행과정이다.


 T4는 해당 사무국이 있는 베를린 티어가르텐 4번지,라는 주소에서 유래했다. 병원 4개가 장애인들의 집단 살해장소로 사용되었다. 이 작전에 대해 에우타나시(Euthanasie/ 그리스어 Euthanasia에서 유래; 아름다운 죽음)라는 순화된 용어를 쓰지만 엄연한 살인행위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철저한 유린행위다. 

장애인들은 나치에 의해 아리아 인종의 부적격자로 낙인되어 초반에는 굶어죽이거나 약물주사로, 시간이 흐르면서 나중에는 가스실에서 사라졌다. 장애 아이들은 물론, 치매노인도 대상이었다.

1939년부터 41년까지 이어진 살해행각은 27만 5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후에야 중단되었다. 이러한 희생자들의 사체는 여러 의학실험에 사용되었다고 하니 독일 의학발전의 배경에 살이 떨리는 순간이다. 독일 의학발전과 104개의 노벨상 수여가 누군가의 피를 지불해야만 가능했던 일일까? 억울하게 희생된 한서린 영혼이 꿈틀거렸다고 생각하면 온 몸이 서늘해진다.

결국 나치는 평소 지지기반이었던 독일교회가 생명유린 문제로 반발하자 1941년 8월 18일에서야 T4작전의 칼을 내렸다. 그래서 1949년 제정된 독일헌법 제1조1항 인간의 존엄성 부분은 독일 국민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이러한 광기어린 흑역사로 독일에서는 안락사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금기시하고 있다. 씻지 못할 과오 탓인지 생명 경시는 중요한 화두가 된다. 예를 들어 자살을 도와주거나 자살의 의도가 있음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을 경우 법적 처벌을 면치 못한다. 그래서 일찍부터 존엄성을 가진 죽음의 대안으로 완화의학이나 호스피스가 발달했는지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젊고 건강하게 생명을 보전하고 싶지만 아무도 예측 못할 중병을 만날 수 있다. 또한 무거운 질병의 고통을 움켜쥐며 처절하게 죽어갈 것을 두려워한다.

이러한 삶의 마지막을 위한 대안책으로 독일에서는 안락사와는 본질적 의미가 다른 법적 절차를 도입했다. 즉 질병상황을 대비해 미리 생명연장 여부를 서면으로 명시해두는 제도다.

의식불명이나 중병환자에게 ‘더 이상의 무의미한 생명연장의 가치가 있는가’라는 의문 속에 ‘Patientenverfügung'(파티엔텐페어퓌궁/사전연명의료의향서)이 발효되었다. 사실 이 법 제정 전에도 독일 내 100만 명 이상이 임의로 자신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두었다는 통계가 보도된 적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독일 민법 제 1901조 a항에 명시되어 있다. 꾸준한 검토와 사회적 합의 끝에 지난 2009년 9월 발효된 이 조항은, 삶의 질 뿐만 아니라 죽음의 질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한 복지서비스의 진보적 그림이다.  다시 말해 ‘웰다잉’의 적극적 표현방법인 셈이다.

여기에는 환자의 처분결정의 발생시기, 환자처분 결정의 조건, 후견인이나 보호인들의 행동방침과 업무범위 등이 상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서면작성을 원칙으로 하며, 만 18세 이상의 인지능력이 있는 사람이 작성해야만 효력이 발생한다. 물론 서면철회는 언제든지 가능하며, 어느 때에 작성한 것이 유효한지를 알기 위해 시간과 장소를 명확히 기입해야 한다.


이러한 관련 법률은 강제권은 없다. 또한 이 서류를 미리 작성했다 할지라도 무조건적으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등 의료적 노력을 중단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제도는 본질적으로 생의 마지막에 품위있게 임종을 맞이하고 싶은 욕구를 반영한 최종적 사회복지주의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혹여라도 다가올 죽음의 순간을 대비한 사전 의사표시의 수단이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자치권을 획득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삶의 마지막에 무의미한 생명 연장으로 고통을 받는 것보다 사전에 존엄성을 가지고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장치라고 보면 된다.

삶의 마지막은 노소(老小)에 상관 없고 서열도 없다. 그래서 누구나 순간순간 존엄한 죽음에 대해 고민해야 할 이유다.

 누군가는 오늘 예기치 않게 죽는다. 품위있는 죽음에 대한 연구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보조적 장치가 될 수 있을지는 각각 개인의 판단이다. 하지만  죽음 대비가 먼 미래의 전유물만은 아니라는 것은 상기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죽음의 번호판을 들고 있고 내가 몇 번인지만 모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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