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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강 작가의 독일삶 Aug 03. 2021

당신의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다면?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다.“


 깊은 울림을 안겨주었던 드라마 <눈이 부시게> 대사 중 하나다. 김혜자 씨가 백상 TV 부문 대상 수상식에서도 이 대사를 읊으며 많은 시청자들을 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살아서 좋았다는 말은  후회가 있는 삶에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긴 긍정의 여운을 남긴다. 작중 어머니의 독백이자 방백이다. 비록 삶이 고달프고 미래를 알 수 없지만 눈이 부시게 하루를 살아라,고 남아 있는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다. 치매를 소재로 감동적인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가족 중에 치매라는 착잡한 주제를 만날 때면  방향을 잃어버린다. 어느 날 문득 내 부모가 치매를 앓게 된다면. 그리고 그 오랜  기억을 복원시키는 노력도 무가치하다면.

기억의 실종과 부재에 대한 충격에서 가족들의 정신적 통증은 커지게 마련이다. 실제 삶에서의 치매는 드라마에서처럼 감상적이고 우수에 찬 설정이 아니다. 그것은 곁에 있는 가족들의 정신에 매질하는 가혹한 현실이다. 이미 망각되어버린 존재성을 회복시키기엔 너무 처절한 시간이다.

치매로 인해 요양시설에 있던 한인 어르신 박 씨를 기억한다. 첫 방문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그를 만났다. 그는 무심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찾아와주는 이를 위한 의미없는 가벼운 의식이었다. 아리랑을 불러주자 흩날리는 바람처럼 무언가 그의 귓가를 스쳤나 보다. 내면세계의 그 어디메쯤 내장된 그리움의 소리였다. 그의 코 끝에서 혀 끝에서 음률이 터졌다.


„흠흠흠……음음음……“ 


 소리는 고왔다. 천연의 날 것이었다. 엄숙하고 우울함을 넘어 밝고 환한 결이 묻어난 소리였다. 잠시 먼 곳의 고국을 기억해낸 것 같았다. 오랜 기억의 우물에서 퍼올린 고된 작업이 아닌, 마치 늘 습관처럼 입안에 담겨 있었던 것 같다. 그의 하나밖에 없는 딸은 어머니 앞에서 흐느꼈다. 딸은 어머니에게 이곳 세상으로 귀환을 염원했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세계 속으로 이미 깊은 여행을 떠난 지 오래였다. 딸에게는 슬픈 시련이었다. 어머니는 원초적인 모성애적 감성으로 그저 지그시 딸의 얼굴을 감싸안는 것으로 자신의 의식을 다한 듯 했다.  


치매는 암보다 무섭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육체가 아프다’는 자기 인식을 동반하는 여타 질환과 다르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통증을 인식하고 고통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자의적 판단이자 독립적인 결정이지만, 치매는 고통의 질과 양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치매는 환우 스스로 존재에 대한 상실의 시간이다. 인간의 존엄 위에서 남은 삶에 대해 고해성사할 시간이라도 있는 다른 질환과는 달리, 치매는 기억의 망각 속에서 헤매다 삶을 마감한다. 가족은 부재의 자리에서 솟구치는 환우와의 기억과 고통스럽게 대면한다. 그래서 가족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또한 환우를 떠나보낸 후, 살아남은 자로서의 후회와 회한 속에 생채기가 남아 있다.


그렇다면 치매가족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

그의 세계를 존중해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여행을 떠나는 그들을 인정해야 한다.

 다시 돌아오라고 정신 차리라고 다그치지 않아야 한다. 단지 그 여행을 더디가도록 조심스럽게 천천히 손잡고 동행해주어야 한다.

우리의 세계로 귀환할 수 없는 이미 늦어버린 치매환우를 위한 꾸준한 가족 안의 도움활동이 절실하다. 요양원에 있는 가족이라면 더욱 자주 방문을 통해 그들의 내적인 상처를 방치하지 않아야 한다. 그들의 세계 속에서도 외로움은 존재한다.

치매 환우, 그들의 세계 속에서도 기쁨과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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