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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강 작가의 독일삶 Nov 19. 2021

어느 파킨슨 환자의 하루 행복

몸은 파킨슨, 마음은 파도처럼 자유롭다

밤 10시. 근무가 끝나고 버스에 올랐다. 밤이 이윽한 무렵이라 겨우 몇 명의 사람만 있을 뿐이다. 옆 자리의 흑인 청년. 흘낏 바라본 그의 얼굴엔 인생의 고단함이 가득하다. 피곤한지 머리가 창문에 부딪히는 줄도 모르는 것 같다. 고개가 자꾸만 창 쪽으로 떨어진다. 가방 꾸러미를 보니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모양이다. 가방의 지퍼 사이로 흰 간호사 제복이 눈에 보여서 추측이 가능했다. 아마도 퇴근 후 부랴부랴 옷을 챙기면서 가방의 지퍼를 채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밤 근무를 마치고 퇴근을 할 때면 대중교통이 자주 오지 않아 구글맵으로 버스나 지하철이 오는 시간을 체크하곤 한다. 버스를 놓치면 20분이나 30분 넘게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래서 급하게 옷을 갈아입으면서 가방의 지퍼를 끝까지 올리는 것을 잊었을 것이다.

그에게서 이민자의 고단함이 창문 그림자를 통해 묻어난다. 저 청년은 왜 이 독일 땅까지 오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떤 하루를 살았을까, 같은 이방인으로 동병상련의 심정이 된다.

버스가 20여 분쯤 달렸을까. 버스 안의 기계음에서 정거장을 언급하자 소스라치게 일어나는 청년. 자신이 내려야 할 곳이었는지, 아니면 놓쳤는지 부리나케 뛰쳐나간다. 우리도 언젠가 인생의 어느 정거장에서 급하게 내려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이국 땅에서의 그의 노동이 헛되지 않길 청년의 뒤에서 간절히 빌어주었다.


오늘 아침에 출근 전 남편과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일 주일이 금방 가네. 그냥 있어도 시간은 가고 열심히 살아도 시간은 가네. 어차피 우리는 늙음과 죽음을 향해 열심히 달리는데 왜 이리 앞서거니 뒷서거니 경쟁을 하는 것일까.”

 “그러게. 어쨌든 시간은 흐르니 천천히 사는 게 방법일 듯 하네,”

매일 바쁨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위안 같은 각자의 자문과 자답이었다. 그럼에도 먹고 살기 위해 오늘을 버둥거려야 하는 우리는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오늘은 종합병원으로 근무를 갔다.

 난 1년 전부터 여러 병원과 양로원을 방문하는 돌봄사 역할을 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보건 관련 용역업체 직원으로, 도움이 필요한 의료시설에 파견 근무를 하는 셈이다. 오늘 내가 간 병원은 중환자실과 일반 병동 사이의 중간 중환자병동이라고 하면 적절할 것 같다. 어느 정도 숨을 돌린 중환자들이 일반 병동에 가기 전에 거쳐가기도 한다. 일반 병동과는 별반 다르지 않다. 의료진이 좀더 자주 병실을 드나드는 것 외에는.


환자의 이름은 마티아스. 그는 40세에 암을 앓았고 3년 전부터는 계속 넘어지면서 밥 먹듯이 병원을 드나들었다. 온 몸은 마치 그물망처럼 꿰맨 수술자국이 보인다. 며칠 전까지 중환자실에 있다가 옮겨졌다.

그는 50세로 아직은 젊은데, 파킨슨 병을 얻었다. 병 이름을 모르고 얼굴만 보면 큰 바위라도 이고지고 갈 것처럼 건장한 체구다. 그는 형제들이 5명이고 두 명의 자녀가 있다. 어제 형이 병문안을 왔단다. 병문안을 못 오는 사람들도 많은데 당신은 행운아,라고 말해 주었다. 특히나 코로나 상황이라 가족 아니면 면회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나에게 이것저것 가족과 관련한 말을 하는데 횡설수설하고 피로감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들어준다는 것이 좋은지 쉴 새 없이 말을 이었다.

집 욕실에서 넘어져 머리와 팔과 얼굴에 온통 상처 투성이다. 그는 외로움에 절어 있는 듯 했다. 그는 소망이 없다고 했다. 이대로 삶을 마감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기에 확실히 비교해줄 이 있었다.  당신보다 더 악조건 속에서 서른 세 살밖에 살지 못한 예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신은 그래도 오십은 넘었지 않느냐,고 말해주었다. 당신은 예수 보다는 훨씬 오래 살았고 잔인한 십자가에서 죽진 않았지 않느냐고, 또 나처럼 먼 동양에서 온 친절한 간호사의 보살핌도 받고 있으니 행복한 것 아니냐,고 이야기해줬다. 그는 아주 크게 웃었다. 오랜만에 웃었다고 했다. 자신은 예수를 어렴풋이 알고 있다고 했다. 어릴 때 교회를 가본 적 있었단다. 그리곤 잠시 후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어릴 때 어머니가 교회를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떴다. 덩치 큰 독일 남자가 그렁그렁 눈물을 흘리는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다, 그의 오랜 고뇌가 파도처럼 느껴졌다.

그는 100킬로가 넘었는데 두 달 사이 30킬로가 빠졌다. 의사는 그가 우울증 등 정신장애도 의심되기에 나에게 계속 예의주시하라고 일러주었다,

 그는 결국 일을 저질렀다. 고의는 아니었으리라. 그날 화장실 바닥에 오줌을 흥건하게 쌌다. 강물처럼 흥건하게 화장실 바닥을 메웠다. 독일의 화장실은 물을 바닥에 뿌리는 시스템이 아니다. 그러기에 그 냄새나는 소변을 수건을 사용해 일일이 청소했다. 거기에 알코올을 뿌려 소독을 했다. 그렇게 일을 저질러놓고는 자기도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그저 엉거주춤 팬티도 올리지 않은 채 바닥에 쏟아진 소변을 쳐다보고는 유유히 화장실을 나왔다. 거의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몸으로 유유히.

젊은 시절, 페인트공 마이스터였다는 그. 어지간히 돈도 벌고 힘차게 생을 살아가던 그에게 사십이 되던 해 찾아온 암은 불행의 씨앗이었다. 간신히 수술을 했지만 그때부터 생은 곤두박질쳤다. 아내는 떠났고 아이들도 흩어졌다. 그래도 살아남기 위해 발악했던 그는 갑자기 쓰러졌다. 낙상이 많이 되는 병, 파킨슨이었다.

파킨슨병은 알츠하이머병 다음으로 흔한, 대표적인 신경계 퇴행성 질환이다. 신경전달물질을 생성하는 뇌의 특정 부위 세포가 파괴되면서 도파민이 부족하게 돼 발생하는 병이다. 보통 노년이 되면서 치매와 파킨슨 병이 자주 발병한다. 파킨슨병의 주요 증상은 떨림, 경직, 운동 완만, 자세불안정 등이다. 이 중 자세 불안정과 보행 장애는 발병 초기보다 병이 진행되거나 악화되면서 서서히 나타나는 증상이다. 환자들은 침대에서 돌아눕거나 내려오기조차 힘들어하며, 걸을 때 발걸음 간격이 좁아진다. 그래서 주로 눕게 되는데 그런 경우 근육의 소실이 심해져 더 이상 움직이기 힘든 상태로 발전하기 쉽다. 특히 방향을 전환하려고 하면 균형을 잘 잡지 못한다. 결국 잘 넘어져서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하는 악순환 속에 삶의 질도 아래로 치닿는다. 환자들은 외출을 하거나 화장실에 가는 등의 일상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자세 불안정으로 발생하는 낙상이나 골절의 위험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기 쉽다.

내가 방문했던 양로원에서 뇌졸중으로 누워 있는 분들 중에 파킨슨을 앓는 분들이 많다. 그에 따라 근육의 경직 등의 합병증을 안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마티아스는 따뜻한 사람 같았다.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눈에 한 가득 물이 고였다. 나는 다른 환자를 돌보아야 하기에 시간이 없었지만 잠깐 쉬는 시간에 그에게 다시 왔다. 그는 이전에 하던 말을 되풀이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서 입교세례를 받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점점 그는 파킨슨으로 거동이 불편하다. 근육은 경직되어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지만 그의 영혼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해가는 것 같다. 몸은 거동하기 불편하지만 영혼은 마음껏 날개를 펴는지도 모른다. 페인트를 칠하면서 솜씨가 좋아 돈은 그럭저럭 많이 벌었고 가족과 행복한 꿈을 꿨다고 했다. 하지만 아프면서부터 모든 게 사라졌다. 그럼에도 그는 요즘 누워 있으면서 과거를 많이 생각하고 그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것은 또하나의 생의 여유라고 말이다.


우리 삶에서 몸이 연약해지면 정신의 힘이 살아난다고 한다. 앞이 잘 보이지 않으면 영혼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이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몸의 기능이 약해지는 것이 마냥 그의 삶에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고 그는 자신을 애써 위로했다. 오늘만큼은 그가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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