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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강 작가의 독일삶 Nov 25. 2021

은따녀 엘케

마음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양로원을 들어서는 정문 앞에 몇 명의 노인들이 앉아 있다. 휠체어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노인도 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도 사람이 그리운 그들은 찬바람을 이고서라도 세상을 보고 싶어한다. 곁에 누구도 없는 이들에게는 코로나의 거리두기가 얄밉기만 하다.


오늘 근무 장소는 3층이다. 언뜻 쳐다보니 양로원의 고정 근무자는 이미 식당에서 부산하게 움직인다.


낯익은 뒷테!


오후 근무자들의 시작은 커피와 달달한 것을 준비하고 나눠주는 것부터 시작한다. 근무자는 예순 살의 엘케였다, 독일인으로 150cm 정도 되는 작은 키에 종종거리며 걷는다. 원조 독일인들의 체형은 키가 작고 땅땅하다는 측면에서 오리지널인 것 같다.

그는 전형적인 독일인답게 또 말은 얼마나 많은지. 입으로 일하는 독일인들이 많은데, 엘케가 대표적 예다. 엘케는 원래 2층에서 근무했는데 동료들에게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당했다. 일이 느리고 특히나 말이 많은 엘케를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다. 동료들은 그녀가 조기 정년퇴직 하기를 바랐는데 엘케는 꿋꿋하게 근무하기를 원했다, 결국 그는 3층으로 근무공간을 옮겼다. 엘케에 대한 악명을 익히 아는 3층의 동료들은 좋아할 리 만무했다. 그래도 어쩌랴! 양로원 대장의 방침은 순종할 수밖에! 독일법상 엘케를 해고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은따나 왕따나 직장 내 사회악으로 간주되었다.


난 엘케가 2층에서 근무할 때 같이 일해본 적 있다. 정말 나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일은 잘 안하면서 훈수는 두는 성격! 그녀가 해놓은 일을 보면 다시 해야했다. 게다가 일을 같이하면서 그녀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머리에서 번개불이 지나갔다. 따지기라도 하면 그녀의 복수가 이어졌다. 몇 번 말싸움을 하다가 기가 빨렸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일을 안하면서 말이 많으니 아예 내가 다 해버렸던 기억이 난다. 오늘도 엘케를 딱 보는 순간 오늘도 무사하진 않으리라 생각이 스쳤다. 그래도 두 손을 모았다. 오늘도 무사히!

 엘케와 일을 하면서 사람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했다. 몸을 열심히 놀리긴 한데 능률이 없다. 환자의 몸을 움직이고 들어야 하는데 그저 말로 한다. 급기야 내가 소리쳤다.

 “엘케, 그냥 넌 쉬어~! 내가 할게.”

오늘 근무가 끝날 때까지 나 혼자 13명의 노인들을 관리했다. 마지막에서야 그는 쓰레기를 비우며 허드렛일을 하는 시늉을 보였다.

게다가 엘케는 환자들에게 불친절하다. 나의 경우는 어르신들이 엄마 같고 아빠 같아서 되도록 친절하게 응대하고 다가간다. 불친절함은 비단 엘케뿐만이 아니다. 근무자들은 되도록 거리를 두고 친절하지 말라는 주문을 한다. 목소리는 얼마나 큰지, 귀가 울릴 지경이다. 노인들에게 갑질하는 것은 근무자들이다. 노인들은 양로원에서 생을 마감할 분들이다. 그러기에 편안하게 삶의 질을 유지하려면 근무자들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 노인들은 목소리 강한 근무자들 뒤에서는 욕을 하더라도 그 앞에서는 고개를 숙인다. 물론 인성 나쁜 어르신들도 있지만 근무자가 친절하면 비교적 기가 꺾인다. 내가 나이 들어 독일 양로원에서 머물게 된다면 저런 쩌렁쩌렁한 소리를 들으며 쩔쩔매야 할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턱 막힌다.

오늘 근무하면서 엘케를 최대한 배려하며 일을 했다.

 “그래, 엘케 네가 나보다 언니니까 젊은 내가 좀더 많이 할게.”

그랬더니 엘케는 호호 웃으며 좋아한다. 기분이 좋은지 쉬는 시간에는 이것저것 자신의 지나온 삶을 이야기한다. 약간 지방 사투리가 섞인 독일발음은 정말 듣기가 힘들다. 나는 곧 갱년기가 될 것 같아 밤에도 잘 못 잔다, 고 이야기하자 자신이 갱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갱년기 차를 마시거나 운동을 하라며 아주 노멀한 대안을 마치 박사 논문이라도 낸 것마냥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난 그의 이야기를 다 들어준다. 그저 안쓰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과 이혼해 24살의 딸과 산다는 그녀는 참 외로워 보였다. 양로원의 노인들도 외롭지만 이제 얼마 후면 양로원의 후미진 방에 들어갈 수 있는 과년한 나이의 그에게서 영문 모를 삶의 두려움이 감지된다. 머리숱은 다 빠지고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엘케! 너, 정말 어려보여!”

 “그래? 얼마로 보여?”

 “음, 47세 정도?”

 “그래? 아니야. 내년이면 61세야. 호호”

 “오, 그 젊음은 어디서 나온 거야? 비결 좀.”


처음 만났을 때 그렇게 난 그를 추켜세웠다. 그는 무척 기분좋아했다. 내가 보기에 사실 육십은 족히 넘어보였는데 동료들에게 무시당하는 그에게 나름의 기쁨을 주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 이후 이 양로원을 방문하면서 엘케와 종종 일을 했다. 그때마다 일을 마친 후 내 육신은 점점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무지 힘들어 집에 오면 마사지를 받았다. 그에 비해 나에 대한 그녀의 만족도는 폭발적으로 커가서 내가 그와 같이 일해주길 늘 바랐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하지만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무례해지는 경우도 있다. 엘케도 그런 류의 인간이었지만, 하루 일해주는 것이기에 조금은 희생하자,라는 내 내면의 포용의 목소리가 컸다.


독일에 처음 왔을 때 친하게 지냈던 한인 아주머니가 있다. 그런데 그분은 친하게 지낼수록 점점 요구가 커져갔다. 걸핏하면 외출 때마다 아이들을 나에게 맡겨놓았고 나중에는 친하다는 이유로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그의 입에서는 늘 ‘우리는 가족’이라는 말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녀를 가족의 범주는커녕 친한 관계의 시작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우주는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그녀는 생각한 것 같았다. 그녀의, 그녀에 의한, 그녀를 위한!

연말이나 부활절이 되어 자신의 집에 초대했지만 나도 나만의 약속이 있었다. 하지만 초대를 거절하면 서운해 했고, 자신만 바라보기를 원했던 것 같다. 우리집에 손님이 오면, 자신의 아이들을 우리집으로 보내곤 했다. 그건 정말 사생활 침해였다. 그래서 결국 거리를 두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녀를 폭풍처럼 미워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거리를 두면서 이상하게 홀가분해졌다. 내 내면에는 함부로 하는 것에 대한 아킬러스 건이 있었다. 아무리 친해도 어느 정도의 예의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적절하게 거리를 두는 모습이 가장 편안하고 서로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에 대해 더 친밀감을 느낄 때 난감해진다.

사람 간에 적당한 거리란 무엇일까? 요즘 코로나로 사람 간에 거리두기가 필요하지만 심리적 거리두기는 애매하다. 인간관계에서 너무 가까워지면 기대가 높아지고 그에 따라 실망도 커진다. 친숙해지면 좋은 면도 있지만, 불편함도 커진다. 모든 비밀을 공유하고, 삶의 일상을 나눠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사생활이 사라진다.

한인 아주머니는 그렇게 가까이에서 나와 함께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나중에 깨달은 것은 그는 날 소유하고 싶었던 것 같다. 외로운 이국생활에 독일남편과 살면서 소통의 부재를 나를 통해 메우고 싶어했던 것 같다. 자기만 사랑해주고 자기 말에 순종하는 그런 내 편을 만들고 싶어한 것이다. 지금은 마음의 거리감이 확실히 생겨 그를 만나도 별 감흥이 없다. 그도 마찬가지길 간절히 바래본다. 나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은 쓰레기통으로 투사하길 바라는 마음! 그것은 내가 그를 인간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과 동의어일 것 같다.


엘케는 일이 끝나자,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너 덕분에 오늘 좋았어! 다음에도 같이 일하자!”

오 마이 갓! 너는 좋았겠지만 난 좀 힘들었지. 그래도 네가 좋았다니 기분은 좋구나. 동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받지 못하는 것도 자신의 행동의 열매일지 모르나, 엘케가 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다음 번에 그곳 양로원에서 일하게 되면 제발 엘케와는 일하지 않길 바라는 것은 나만의 솔직한 심정인 게다.


마음의 거리두기. 복잡한 세상에서 내 감정을 소중히 여기고 건강을 지키는 것에서 필수 덕목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누군가의 행복을 빌면서 일기를 갈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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