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 콘서트홀 Musiikkitalo in Helsinki
지난 9월부터 12월까지 나의 문화생활은 산술적으로 대략 열흘에 한 번 꼴로 공연을 보았다고 할 정도로 기회가 많이 있었다. 보통 학생 티켓으로 10유로에서 20유로 사이면 웬만큼 표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부담 없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헬싱키에서 가장 대표적인 클래식 콘서트 공연장인 뮤지끼탈로Musiikkitalo(music hall)에서 보았던 것들을 먼저 공유하려고 한다.
이 공연장은 핀란드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FRSO)와 헬싱키 심포니 오케스트라(HSO) 두 오케스트라가 주로 쓰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라디오 오케스트라가 훨씬 더 좋다는 인상을 받았었다(하지만 티켓을 잘 구하지 못해 헬싱키 오케스트라 공연을 더 많이 보게 되었다..) 또한 라디오 오케스트라는 한국인 오보에, 클라리넷 연주자 두 명이 활동하고 있고, 조성진과 잦은 협업을 하고 있다(그러나 안타깝게 20년 5월 협연은 취소되었다.) 나중에는 헬싱키 오케스트라는 기대도 안 하게 되어 같이 공연을 본 친구가 별로라고 했을 때도, 나의 낮은 기대보다는 괜찮아서 무난했다고 대답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니 내가 헬싱키 오케스트라를 언급하면 보통의 공연이었구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이 공연장에 허버트 블룸슈테트의 하이든 런던 교향곡과 브람스 2번, 유카-페카 사라스테의 차이코프스키 5번, 조성진 독주,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 등을 포함하여 네 번 정도 다녀온 것 같다. 블룸슈테트의 공연이 헬싱키에서의 첫 클래식 공연이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아서 당황스러웠다. 노익장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느낌이었달까. 참고로, 네덜란드로 교환 갔던 같은 동아리 친구도 유럽에서 이 사람의 공연을 보고 그를 좋아하게 됐다고 요새 표현이 상당하다. 클래식을 아예 모른다는 일본 친구들도 데려가서 걱정했는데, 팀파니 북 치고 있는 사람이 일본 사람이고 잡다한 이야기를 하니 재밌어하고 또 일본 학생들이 웬만큼 소양이 좀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잠깐 더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첼로를 연주하고 있어서 오케스트라를 볼 때도 첼로와 더블베이스를 위주로 보게 된다. 그래서 브람스 2번에서 첼로 독주가 두 번째 악장 초입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1악장이 생각보다 충격적으로 예뻐서 정작 두 번째 악장에서는 멍 때리고 있었다. 지루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럴 걱정 없던 양질의 공연이었다.
다음으로는 빼놓을 수 없는 조성진. 조성진이 온다고 하기에 공연을 예매한 것도 있지만, 프로그램은 자세히 알지 못해서 협주곡을 치려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연장에 갈 때 되어 보니 독주이고 정말 덩그러니 피아노 하나라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피아노 소리만 온전히 들을 수 있다니! 공연 제목도 '나의 흑백의 사랑My black-and-white love'라서 공연장에서의 한껏 분위기를 높이고 있었다. 이날은 다른 날과 비교했을 때 한국 사람이 다른 날보다 훨씬 많았다만, 앞자리에 앉아 보지 못한 것은 너무 아쉽다. 그래도 소리는 얼추 잘 들리긴 했다.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현대음악과 리스트, 앙코르 곡으로 쇼팽과 모차르트를 들을 수 있었다. 다른 연주자들의 피아노 협주곡 고연들을 볼 때 정말 옥구슬 같아서 가끔 하프랑 구분이 안 갈 때가 있었는데, 조성진의 연주는 기교도 기교지만 심적으로 더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 같다. 손가락이 통통 튀기는 발랄함과 엄숙한 음향을 낼 때의 강약이 정말 좋았고, 특히 나는 쇼팽의 장송행진곡 앙코르 곡이 무척 마음에 들어 집에 와서도 몇 번 반복해서 들었다. 아래에서 링크처럼 무료로 인터넷에서 현장 녹화공연을 볼 수 있으니, 세상 참 좋아졌다고도 느낀다.
https://yle.fi/aihe/tapahtuma/2019/10/11/frso-festival-my-black-and-white-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