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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닢channip May 09. 2020

오로라는 그냥 하늘에 떠있는 줄만 알았다

5박 6일 간 오로라 헌팅기

 북쪽 나라에 가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여름에는 백야, 겨울에는 오로라가 바로 그것이다. 내가 핀란드에 교환학생을 지원하게 된 까닭인 '자연'을 느끼는 것에는 오로라를 보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오로라를 보러 가기 전에는, 밤하늘에 별이 있는 것처럼 하늘에 그냥 오로라가 있는 줄만 알았다. 오로라가 극지방에서만 잘 보이는 이유는 태양풍이 지구로 불어오면 입자들이 지구 자기장의 영향을 받아 극지방으로 끌려 오면서 지구 대기와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은 막연한 상상 속의 이야기였으니까.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나라 위도에서도 볼 수는 있다고 하나 우리가 상상하는 초록빛이 아니라 붉은색이고 오로라가 맞는지 구분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하여튼 그렇기 때문에 태양풍이 오면 모든 북쪽 지방은 오로라로 뒤덮일 것이라는 상상 속에 빠져있었다. 

4박 5일 동안 나와 친구들을 데리고 다닌 마즈다 2. 킬로 수가 얼마 되지 않은 새 차였다.

 그렇게 12월 24일부터 크리스마스를 끼고 29일까지 라플란드 지방으로 불리는 로바니애미와 이발로에 머물면서 나와 친구들은 오로라를 보기로 했다. 그중에서 로바니애미에 머물렀던 것은 28-29일 단 하루로, 우리는 더 북쪽에 위치한 도시인 이발로에 오래 머물면서 오로라를 보고자 했다.

 사실 나는 오로라가 보기 힘들다는 것을 11월에 깨닫게 되었다. 위에서 서술한 대로 순진한 생각을 갖고서 대도시 헬싱키에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막상 핀란드 현지 친구들도 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학기 중간에 우리 학교 친구들과 모여서 5박 6일 동은 아이슬란드로 가게 되었는데, 구름에 가려 오로라를 볼 수 없었다. 그때서야 나는 오로라를 보는 것을 이르는 말이 '별을 보러 가다, 관측한다'가 아니라 '오로라 헌팅'이라고 하는지 알게 되었다.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오로라가 예보되는 지역으로 차를 타고 이동해서 다시 오로라가 뜰 때까지 다시 기다려야만 했다.

로바니애미에서 차를 렌트해서 이발로로 운전하는 밤길은 아름다우면서도 어둡고 고요함 때문에 두렵기도 했다.

 우리는 이발로에서 낮에는 스키나 허스키 썰매를 타는 등 액티비티를 즐겼고, 이른 저녁을 먹고 피로함 때문에 잠시 잠을 자고, 일어난 후에는 간식을 챙겨 더 북쪽으로 운전하며 돌아다녔다. 핸드폰 앱 중에는 오로라가 나타날 확률, 구름이 낀 정도 등을 예보해주는 것이 있었는데, 경보가 울릴 때마다 기대에 가득 차서는 이리저리 더 좋은 자리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하지만 첫 날도 실패, 둘째 날도 실패, 다음 날도 실패하면서 사실 나는 어느 정도 희망을 놓고 있었다. 우리 셋 중에서 오로라를 꼭 보고야 말겠다는 열정에 가득 찬 한 친구를 제외하고 나머지 둘은 솔직히 그냥 좋은 풍경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저런 에피소드도 생겼다. 셋째 날에는 이리저리 장소를 찾다가 사람은 찾아볼 수 없는 정말 깊은 호숫가까지 오게 되어 잠시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하다가 차 네 대가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것을 보았다. 알고 보니 그들도 오로라를 찾으러 온 무리로, 우연히 만난 중국인들끼리 뭉쳐서 우리처럼 깊은 숲 속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하루가 더 남아 있어서 좀 여유로웠지만 이 친구들은 그날이 마지막 날이라서 온갖 상의 끝에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얘기를 조금 해보다가, 이 친구들을 따라가면 뭐라도 보지 않을까 싶어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같이 오로라를 찾으러 다녔지만 결국 시간이 너무 늦어 우리는 중간에 포기했다. 오로라를 발견할 수 있는 난이도도 높지만 운전하고 기다리는 체력소모가 생각보다 상당해서 왜 사람들이 돈을 주고 오로라 헌팅 액티비티를 하는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마지막 날 저녁에 다시 숲 속을 누빌 채비를 하였다. 우리는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있는 호숫가에 눈치껏 차를 대고 차 밖을 나갔다 하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가져온 dslr 카메라를 깜빡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이 유독 추워 기온이 영하 15도 밑으로 떨어졌고 핫팩이라도 더 가져와야겠다 싶어서 숙소로 복귀했다. 30분 정도 후에도 여전히 주차할 공터가 있었지만 나와 한 친구는 추위에 떨기에는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열성적인 친구 만이 이리저리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오겠다고 했고, 한 5분이 지났을까, 흥분한 표정으로 우리 차 쪽으로 다가왔다. 오로라가 보인다고!


테스트해보면서 찍은 나와 오로라 샷. 

 당장 밖으로 나가 확인해 보았지만 오로라가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물음표를 그리고 있을 때, 자세히 보면 초록색 하늘이 있다고 하여 확인해보니 진짜였다. 내 dslr 카메라로 찍어야 하는데, 오로라 촬영이 처음인 나는 카메라를 만지작 거리다가 그야말로 '멘붕' 상태에 빠졌다. 오로라가 없어지기 전에 찍어야 하는데... 그때 또다시 열성적인 친구가 한국인 분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우리는 카메라 세팅과 명당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핀란드에서 한국인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고 이 넓은 핀란드 북쪽 땅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 도움을 얻다니, 정말 천운이 도왔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끼리 타이머를 눌러서 찍고, 카메라 속에 담긴 영롱한 초록빛에 놀랄 뿐이었다. 그 한국 분이 도와준 카메라 설정은 마치 백종원의 만능 양념소스처럼 자리를 옮겨도, 별 사진을 찍을 때에도 그것보다 더 나은 설정값을 찾기 힘들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북녘의 하늘을 우리 눈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오로라. 북극광(Northern lights)

 여행의 목적을 달성하고는 우리는 심지어 도움이 필요한 다른 중국인들의 사진도 찍어주었다. 만능 카메라 설정값을 서로 공유해주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하지만 여기서 나의 불찰이 있는 것이 내가 카메라 충전하는 것을 성실히 하지 않아 배터리가 일찍 다 닳아버렸다. 날씨가 추워서 배터리가 잘 견디지 못한 것도 크지만 방전이 되어 더 많은 사진을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솔직한 후기를 말하자면, 나는 너무나 희미한 오로라를 보았기 때문에 실망스럽기는 했다. 사진에 담긴 것처럼 초록색이 선명하지 않아서 지나가다 보면 뜬 구름처럼 보였을 것이다. 다만 사진은 6초 동안 렌즈를 노출을 시켰기 때문에 실제보다 선명한 색을 얻었을 뿐이다. 하지만 하늘의 별은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워 오로라가 채워주지 못한 아쉬움을 날리기 충분했다. 난생처음 성운도 보고, 별이 그렇게 촘촘히 박혀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자연은 참 경이롭다.


P.S. 혹시 오로라, 별 사진을 위한 카메라 세팅이 필요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F3.5 셔터스피드 6초, ISO 7200 (조리개는 숫자가 낮을수록 더 좋을 듯싶다. 그러면 셔터 스피드를 조금 줄여도 되겠지.)

물론, 그때마다 카메라를 조정할 수 있는 실력이면 정말 좋겠지만 긴급히 필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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