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oi Helsinki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닢channip May 07. 2020

내가 살던 그 집

헬싱키 도무스 아카데미카

 헬싱키로 교환학생을 오게 될 사람에게 머물 장소는 몇 가지 옵션이 있다. 1. 유니홈(Unihome) 2. 호아스(Hoas) 3. 알아서 방 구하기. 그중에서 현실적으로 학생들이 선택하는 옵션은 1번과 2번일 것이다.

 헬싱키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숙소를 구하기는 어렵지는 않다. 처음 지원서를 온라인으로 제출할 때부터 어떤 옵션의 집에 어떤 형태의 방에 살고 싶은 지를 물어보기 때문에 체크를 하면 알아서 유니홈이나 호아스에서 메일이 와서 메일대로 보증금을 선입금하고 주의사항을 숙지하면 된다. 기본적으로 유니홈은 시설이 좀 더 새 것이고 관리를 해주지만 호아스는 방만 덩그러니 빌려주는 것이다. 물론 일처리는 매우 느리다.

방에서 내다본 바깥 풍경

  그래서 내가 원한 기숙사 형태는 유니홈에서 하는 1인실로 지원을 했다. 한 달 가격이 대략 625 유로이므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매달 83만 원 정도 들었으니 월세가 꽤나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혼자 쓸 수 있는 화장실과 주방을 원했기 때문에 유니홈으로 지원을 했다. 값이 비싼 대신에 몇 가지 서비스가 있었는데, 기숙사가 호스텔과 겸용으로 사용되기에 24시간 상주하는 스테프에게 여러 가지 시설 보수나 문제점들을 문의하면 해결해주고, 2, 3 주에 한 번씩 청소 서비스를 제공했다. 공용 사우나가 있었고, 세탁기를 예약하지 않아도 넉넉히 쓸 수 있었으며(이것이 진짜 장점이다) 주방 용품들도 제공해주었다만, 그것들은 너무 헤져서 새로 사야 하기는 했다. 또한 유니홈은 호아스와 달리 도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학교까지 걸어가거나 트램으로 주요 관광지를 다닐 수 있는 지리적인 이점도 있었다. 호아스는 건물이 산발적으로 퍼져있어 같은 호아스여도 어디에 배정될지 모른다. 호아스와 비교했을 때 너무 쓸데없이 비싼 곳에 있나 싶기도 했지만, 친한 친구들이 대부분 유니홈 기숙사에 살았고 편리한 점도 많았기 때문에 지금은 잘 한 선택이었던 듯싶다. 호아스에 처음 숙소를 배정받은 한 일본인 친구는 첫날 침대가 없어 다음 날 이케아에서 침대를 사고 침대가 올 때까지 바닥에서 잤다는 슬픈 이야기를 떠올리면, 침대, 장롱, 책상, 의자 모두 갖추어진 유니홈이 고생을 덜한 옵션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바깥에서 바라본 건물

 유니홈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인 도무스 아카데미카(보스 헬싱키)는 유스호스텔 겸용으로 주로 교환학생을 위한 기숙사로 쓰인다. 물론 일반 투숙객과 교환학생들의 숙소는 분리되어 복도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교환학생이라고 보면 된다. 방학기간을 이용해서 학생들이 방에 머물지 않을 때에는 모든 방을 숙소로 쓴다는 점에서 기숙사의 재정적 안정을 추구할 수 있어 여행객과 기숙사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불행하게 학기 시작일 이전(가을에는 9월 1일)에는 학생 가격이 아니라 투숙객과 동일한 비용에서 조금 할인된 가격을 지불한다. 필수적인 오리엔테이션 때문에 나는 개강 일주일 전에 도착해서 6박 7일 간 350 유로를 더 내야 했다. 

 그런데 기숙사에 왜 이런 옵션이 있을까를 생각해보니, 그 이유로 학교에 기숙사가 없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냐 하면, 헬싱키 대학이면 헬싱키 대학이 운영하는 기숙사, 알토 대학이 운영하는 기숙사가 아니라 지역 별로 기숙사 재단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헬싱키는 호아스, 탐페레는 토아스 등으로 말이다. 그에 비하면 유니홈은 사기업에 가깝다. 그리고 이러한 옵션은 본교생들에게도 똑같은데, 대부분은 학생조합과 더 잘 연결돼있는 호아스를 통해서 집을 구한다. 

 전반적으로 나에게는 월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한 기숙사였기에 만족한다. 내 침대 밑에는 간이침대가 더 있어서 친구들이 나를 보러 헬싱키로 올 때마다 에어비앤비처럼 숙박을 제공했다. 또한 이불과 침대 시트와 수건도 2주마다 갈아주어 청소시간을 줄여주었다. 물론 이것은 서비스를 제공한 호스텔 직원과 그들의 서비스가 만족스러운 것이고, 월세와 보증금을 담당하는 유니홈 담당자들은 정말 답답하고 신경질적이었다. 한 건물에서 호스텔과 기숙사라는 양분된 기능을 갖고 있어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디에 연락을 해야 하는지 혼선이 있었지만, 언제나 친절했던 호스텔 스태프와 직원들과 달리 유니홈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한쪽이라도 친절한 게 어디냐면서 스스로를 위안 삼았다. 

 아직도 가끔 학교로 향하는 2번 트램을 타는 길이 생각난다. 그리고 캄피에 있는 K-Mart에서 식료품들을 사 와서 요리를 하던, 힘든 일도 있었지만 내게는 좋은 기억들이 많이 남아있는 장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로사 릭솜의 '짧은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