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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닢channip May 16. 2020

탐페레에서의 재회

타지에서 만난 친구

 내가 교환학생을 지원할 때, 나와 같이 교환학생을 희망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게 헬싱키 대학은 그저 하나의 옵션이었고 내 친구도 졸업을 앞두고 핀란드로 교환학생을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꺼내고서 나는 헬싱키로, 친구는 탐페레로 교환을 가게 되었다. 우리는 같은 나라에 있어서 서로 자주 왕래할 줄 알았는데, 다시 라플란드에서 만나 여행하기 전까지 내가 탐페레로 한 번, 친구가 크리스마스 파티 때 헬싱키로 한 번 오고 간 것이 전부였다.

헬싱키 중앙역. 왼쪽 알레그로는 러시아로 가는 기차이고 오른쪽이 탐페레로 향하는 기차였다. 장거리 노선은 주로 중앙 선로에 있다.

  헬싱키에서 탐페레까지는 기차로 빠르면 한 시간 반 안에 간다. 학생 할인으로 반값 할인을 받아 편도로 13 유로였으니 나름 합리적인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노선이 둘, 셋이 더 있어서 많이 정차하는 것도 있으며 캄피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면 더 값싸게 갈 수 있다(버스가 무조건 싸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나는 버스보다는 기차를 선호하여, 고민 없이 나의 집에서 가까운 시외버스 터미널을 지나치고 기차를 탔다.

 탐페레는 헬싱키와는 상당히 느낌이 다르다. 북유럽의 가을 하늘이야 워낙 우울증 걸리기 쉽다고 하지만 탐페레는 벽돌색 건물들에 둘러싸여 정도가 더 심하다. 탐페레는 기본적으로 공업을 바탕으로 형성되어 굴뚝의 연기와, 풍부한 물을 이용한 수력 발전 시설들이 중심으로 갈수록 더욱 뚜렷하게 보였다. 친구가 이곳에 교환학생을 온 것도 탐페레 대학 공과대학이 나름 유명하다고 하는데, 이 근방의 도시가 노키아(휴대폰 회사 노키아)라는 것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브랜드 소개를 하지 않았지만 유명한 핀레이슨(Finlayson)이라는 섬유 회사도 탐페레에서 출발했다고 하니, 분명 과거에는 더욱 번영한 도시였을 것이다. 비록 현재는 인구 노쇠화로 활기를 많이 잃었지만 말이다.

 친구가 나를 먼저 데려간 곳은 탐페레의 시장가였다. 거기서 무스타마카라(mustamakkara)라는 소시지를 먹을 수 있었는데, 나름 탐페레의 전통 음식이다. 우유와 곁들여서 소시지에 링곤베리 잼을 얹어 먹는데, 한국인들에게는 순대가 먹고 싶을 때 제격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순대 잘하는 집이 따로 있듯이 시장이라고 모두 신선하거나 맛이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다음으로 내가 가보고 싶었던 카메라 스토어가 있어 방문했다. 탐페레에 카메라 토리(Kameratori)라는 필름 카메라 전문점 본사가 있는데,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나로서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생각보다는 그리 체계적이라거나 잘 정리되었다는 느낌은 못 받았지만, 카메라 품질은 믿을 만하여 큰 맘을 먹고 구매했다. 나름 친절하여, 우리가 라이카나 핫셀블라드(참고: 카메라 하나에 그랜저 가격이다)와 같은 사지 못할 필름 카메라들을 만져보고 체험할 수 있어서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런 후에는 평범한 탐페레 방문 코스인 탐페레 대성당과 무민 박물관을 갔다. 대성당은 나름 운치가 있었는데,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프레스코화가 인상적이었다. 건물은 민족적 낭만주의 양식(National Romantic Style)을 바탕으로 라스 손크(Lars Sonck)가 건축했다고 한다. 중세 교회 같은 겉면에 투박한 돌과 빨간 벽돌이 인상적이다. 내부는 상당히 트여있고 환했다. 내부 프레스코화는 상징주의 예술가 휴고 심베리(Hugo Simberg)의 손길을 느낄 수 있고, 마그누스 엔켈(Magnus Enckell)이 제단화를 그렸다. 사람들이 부활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라고 하는데, 교회에 흔히 있는 그리스도와 십자가 상은 보이지 않고 사람들로 채워진 것이 인상적이다. 대신에 스테인드 글라스로 십자가 표현이 된 것, 그리고 성경 속 이야기를 그리지 않아도 몇 안되는 색으로 교회 이미지를 풍기는 것이 북유럽 스럽다고 느껴졌다.

 다음으로 무민 박물관을 들렀는데, 아쉽게도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무민 캐릭터는 핀란드 예술가 토브 얀센이 트롤들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등장하였고, 무민 이야기는 핀란드의 대자연 배경으로, 그리고 외연으로 확장하며 상상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다들 무민 캐릭터를 좋아하지만 무민 이야기를 잘 모르듯이 나도 그렇기 때문에 크게 재미는 없었다. 그래도 짧은 애니메이션 만들기 체험을 하고, 공인된(?) 무민 박물관은 탐페레에 있기에 어려운 발걸음에 가치를 두고자 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사라 힐덴 미술관(Sara Hilden Art Museum)이었다. 굉장히 외지면서 호숫가 근처에 있던 이 미술관은 실은 내가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궁전을 방문하면서 기억해두었다. 이곳에서 현대 미술가로서 이름난 키키 스미스(Kiki Smith) 특별전이 있었다고 하여 상당히 관심을 가졌었다. 내가 갔을 때는 핀란드 예술가인 유하니 하리(Juhani Harri)라는 아상블라주 대표 작가의 전시가 있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작품들의 내실이 충분했다. 유하니 하리는 물건들을 조합하여 하나의 예술로 표현하는데, 시간과 그것의 덧없음을 나타내고자 했다고 한다. 철판, 천, 버려진 물건 등 여러 가지를 사용하지만 사실 대표작은 돛단배를 달걀로 꾸민 것이 가장 유명하고 인상적이다. 불행히도 내가 사진을 워낙 잘 안 찍는 편이라서 가져오지는 못했다.

 아마 평생 다시 탐페레를 갈 일은 없을 듯싶은데, 하루 동안 둘러보면서 보고 싶은 것은 다 보아서 미련이 없다. 친구와 그날 어떤 공장을 개조한 양조장 맥주집에서 저녁 식사와 맥주를 곁들이면서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했다. 이때가 11월 첫 주였다. 우리의 교환학생 생활이 반 이상 지나서, 북유럽의 흐릿한 날씨 속에서 얼마 남지 않은 외국 생활을 생각하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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