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란드 여행
겨울의 라플란드는 해가 일찍 진다. 한국에 있을 때 친구와 여행 계획을 짜기 위해서 구글에 라플란드의 일출 시간과 일몰 시간을 검색해본 적이 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시간 없이 'Down all day'라고 쓰여있었다. 아무리 내가 어려운 영어 논문을 읽고 영어 수업을 들어도, 가끔은 이렇게 참 쉬운 영어 세 단어가 사람을 당황시킨다. 12월에는 해가 아래에 있다니 무슨 소리인가. 설마 해가 뜨지 않는다고?
그렇다. 12월 초부터 1월 초까지 예보상 해가 뜨지 않는다고 쓰여있었다. 물론, 일출이나 일몰을 유심히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일출 전과 일출 후에 하늘이 칠흑같이 깜깜한 것이 아니다. 햇빛은 있다. 그러나 라플란드에서 빛이 있는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대략 6시간 동안만 허락되었다. 우리의 여정도 이에 맞추어 잘 계획해야 했다.
우리가 5일 동안 라플란드에 있는 중에 온전히 하루를 쓸 수 있는 날이 3일이었고, 하루에 하나씩 액티비티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25일 성탄절에는 상당수 업체들이 쉬거나 일정을 줄이기 때문에 우리가 할만한 마땅한 액티비티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야심 찬 첫날이자 성탄절인 그날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타기로 결정했다.
우리 셋 모두 크로스컨트리 스키 경험이 전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올림픽에만 나오는 이야기로만 생각하면서 산비탈을 내려오는 다운힐 스키만 타봤지 한국에서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어디서 타겠는가. 그에 반해 핀란드는 겨울이 되면 운동장은 얼어서 스케이트장으로 쓰고 숲길은 트랙을 내서 스키를 타도록 하니 우리와는 전혀 다른 겨울 스포츠 문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발로의 이발로 호텔 1층에 클럽 노르드(Club Nord)라는 대형 액티비티 여행사(?)가 있는데, 상당수의 액티비티는 이곳에서 신청하고 장비를 빌릴 수 있다. 우리는 스키를 빌리는데, 하루 24시간 동안 50 유로도 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허스키 썰매나 스노 모빌 등이 한화 20만 원 정도를 호가하는 것을 고려하면 가성비 최고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이곳에서 평소 보던 스키보다 길쭉하고 얇은 스키 날과 폴대를 빌려 국립공원 지역인 사리셀카(Saariselkä)에서 스키를 시작했다.
사리셀카는 이발로보다 리조트나 시설이 더 많이 발달해있었다. 사람도 많았다. 스키장으로 들어갔을 때 우리는 신기하게도 길 양옆에 두 줄로 스키 트랙이 파여있는 것을 보았다. 이곳에 스키를 집어넣고 지팡이로 밀어주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는 모두 초보여서, 내리막이면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쉽게 넘어졌고, 평지나 오르막이면 스키를 타는 것이 아니라 걸었다. 생각보다 재미는 있었다.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이국적인 침엽수들을 보면서 신기해했다. 그렇지만 사리셀카는 규모가 워낙에 크고 사람도 좀 많아서 타면서 우리가 길을 계속 막는 느낌이 들어 마음은 그리 편하지는 않았다.
그다음 날 우리는 허스키 썰매를 탔고, 이번에는 우리 숙소 근처에 있는 이발로 스키 트랙을 돌아보자고 했다. 하루에 두 가지를 한 것은 그만큼 피곤했어도 스키 타는 것이 상당히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이발로에서는 사람도 없고 우리 마음껏 탈 수 있어서 그 전날보다 훨씬 좋았다. 그리고 해가 어둑어둑 해진 3시경에 즐기는 야간(?) 스키는 더욱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튿날 우리의 실력은 조금 좋아졌지만, 더 잘 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없잖아 있었다. 서로 사진을 찍어줄 시간도 충분했고 마을에 마실 나온 듯이 즐기는 여유도 좋았다.
스키를 마치고 스키 트랙 초입으로 갔을 때 어떤 할아버지가 스키를 타러 온 듯 차에서 내렸다. 우리를 보더니 오지랖 넓으시게도 손가락을 펴 보이시며 나이를 말씀하고, 자신의 부인도 나이가 어떻게 되는 지를 용케도 설명하려 하셨다. 핀란드어로만 말씀하셔서 우리도 여차여차 손짓 발짓하며 나이가 어떻게 되고 스키가 재밌다고 말했는데,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세계 어딜 가도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는 좀 비슷하니 닮은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