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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아 로 Feb 09. 2021

일 년 미리 쓰는 미래 일력 - 대충 하고 살련다.

2022년 1월 30일 일요일

일요일 저녁에 내모습


일 년 미리 쓰는 미래 일력

2022년 1월 30일 일요일


4년 전에 나는 내 인생에 가장 최대 몸무게를 만들었다. 몇 달 동안 22kg을 찌웠다.

찌기도 했고 찌우기도 했다.

10달 내내 입덧이 있었고 토하는 입덧과 먹어야 하는 입덧이 같이 있어서 살이 찌면서도 괴로웠다.

임신하면 죄책감 없이 실컷 먹을 수 있는 것 하나가 유일하게 좋은 점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누리지 못했다. 계속 메스꺼움과 멀미 증상이 있어서 빈속을 참을 수 없어서 음식의 맛과는 상관없는 섭식을 해야 했다. 자극적이지 않고 토해도 목이 덜 아프면서 향이 강하지 않은 음식들을 찾아 그것만 10달 동안 돌려먹었다.

누룽지, 식빵, 두부구이, 계란찜, 고구마 말랭이, 강냉이, 아이비, 맑은 된장국, 초코 에몽, 바나나. 특히 초코 에몽과 바나나 조합은 자기 전 머리맡에 두고 자다가 속이 울렁거려 깨면 그걸 입에 밀어 넣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속이 울렁거려 잠을 못 자거나 화장실로 가서 뭐라도 토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고 일어나면 고구마 말랭이부터 입에 물고 있어야 울렁거림을 견딜 수 있었다. 열 달을 그렇게 살았다. 특히 막달에는 20킬로나 쪘는데 아기가 작다고 물이 많은 과일을 먹으라고 해서 포도, 수박, 복숭아를 달고 살았다. 하루에 수박 반통을 혼자 먹었다.

결국 난 임신으로 22kg이 쪘다.

그리고 내 아이는 2kg으로 세상에 나왔다.



나에게는 20kg과 지옥 육아가 남았다.

다행히 그 둘은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지옥 육아를 하다 보면 끼니를 거를 때가 많았고 입맛도 사라졌다. 먹는 것보다 자는 게 더 좋았다. 그리고 자는 것보다 우는 게 더 좋았다. 그게 지옥 육아지.

아기를 낳고 일 년만에 임신 전 몸무게를 회복했다. 별다른 노력 없이 22kg이 빠졌다. 그게 지옥 육아지.



지금은 슬슬 지옥 육아에 적응해가고 있다. 적응과 동시에 사라졌던 입맛이 배달음식 안에서 튀어 나온다.


요즘은 다이어트와 육아에 집착하는 내가 어리석어 보인다. 그게 뭐라고. 나에게 두 가지 지옥을 만들어주나 싶다. 내가 스스로 만든 지옥이기보다 세상이 만든 지옥에 내가 슬슬 떠밀려 가는 것 같다.

그게 뭐라고 열심히 살고 있는 나를 저 모습으로 내가 제일 두려운 존재 앞에 서게 만드는 것인지.


대충하고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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