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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사이 Aug 20. 2019

우연히 살아남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위해서.

얼마전 나는, 나의 가까운 사람에게 나는 "지금까지 다행히, 우연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들은 그 순간에는 너무 충격적이었고, 그 다음으로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왜 나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밖을 돌아다니거나 그냥 걸어다니는 것,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는 것조차 걱정하고 두려워해야할까. 왜 나는 나의 목숨과 안전을 우연의 확률에 맡겨야할까.


어떤 사람이 칼을 들고 뒤에서 다가온다면 남자라고 무사할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자가  위험하다는 고정관념을 쉽게 떨쳐내지를 못한다. 마치 그 옛날 여성은 남성보다 지능이 낮다고 믿었던 그 때처럼. 하지만 우리는 잊은 것이 있다. 칼을 들고 누군가를 헤치기 위해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잘못한 것이라는 것을.


범죄는 범인이 저지른 것인데 우리는 피해자를 더욱 책망한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다거나, 크고 밝은 길로 다니지 않았고, 늦게 다니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라고 말하면서. 이는 여성에게 범죄 예방의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노출이 있는 옷을 입거나, 늦은 시간에 다니는 것은 본인의 자유다. 그리고 집 근처의 거리가 크고 밝지 않은 것이 누군가의 잘못인가? 이런 것은 여성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잘못된 프레임일 뿐이다.


심지어 반례는 얼마든지 있다. 첫째, 실제 성폭력을 겪은 여성들의 옷을 전시한 전시회가 미국 캔자스 대학 전시실에서 개최되었었다. 전시된 옷을 보면 면티에 긴 바지 등 노출이나 자극과는 무관한 옷이 대부분이다. 둘째, 크고 밝은 서울 서초동 상가의 공중화장실에서 벌어진 일명 '강남역 살인사건'도 있다. 한 여성이 새벽에 화장실에 갔다가 잠복해있던 생전 처음보는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이 문제를 두고 여혐이라는 주장과 어느 정신병자의 범죄라고 대립이 분분했다. 하지만 그날 화장실을 다녀간 사람은 남자 6명이 더 있었다. 정말 정신병으로 인한 살인이었다면 왜 6명의 남자를 그냥 보냈을까. 뿐만 아니라 범인은 검거된 후 직접 여성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 싫어 여성을 죽였다고 말을 했는데도 이를 여혐문제로 보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셋째, 최근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으로 알려진 사건의 사건발생시간은 오전 6시 30분쯤이었다. 늦은 밤길을 조심하라고 말하지만 늦은 시간이 아닌 아침에도 안전하지 않았다.


이런 반례들을 보면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 일들은 노출이 심한 옷을 입어서, 크고 밝은 길로 다니지 않아서, 늦게 다녔기 때문에 겪은 일이 아니라 여성이기에 겪은 일이 맞다. 범죄뿐만 아니라 잘못된 편견과 고정관념이 여성에게 범죄 예방의 책임과 동시에 범죄의 핑계마저도 짊어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집에 도둑이 들었을 때 혹은 길에서 소매치기를 당했을 때 우리는 피해자를 보고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집 창문을 모두 단속하지 않고 잠든 것이 잘못이라고 하거나 가방을 더욱 안전하게 보호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범죄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잘못이다. 피해자에게는 잘못이 없다. 늦은 시간이라고, 노출이 있는 옷을 입었다고 해서 범죄를 저질러도 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범죄를 겪을까봐 걱정이 된다면 최대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인식과 법, 사회시스템을 점검하고 보완해야한다. 또한 범죄의 피해자에 대해서 보도할 것이 아니라 가해자를 집중해서 보도해야한다. 언론에서 피해자에 대해서 언급할수록 피해자들은 2차 피해를 겪고 있다.


우연의 확률에 안전과 목숨을 담보잡히지 않아도 될때까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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