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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사이 Sep 24. 2019

부당한 것에 부당하다고 말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모든 사람이 서로를 배려하고, 다름을 존중하며, 성별, 인종, 문화, 인권 등에 대한 차별이 없는 곳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당장 그런 유토피아적인 사회가 되어야된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아니다. 단지 나는, 부당한 것에 "아니"라고 말하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당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그 행동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부당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환경과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니 너도 조심해" 혹은 "견뎌낼 수밖에"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환경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금연구역으로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렇다.


공공장소에 금연구역을 지정하고, 금연구역 내 흡연 시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안이 만들어지고, 시행되면서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는 사람을 보고 눈쌀을 찌푸릴 수 있게 되었고, 주의를 줄 수도 있게 되었다. 이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공공장소에서 담배피는 사람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조금 떨어져서 걷거나 숨을 참고 걸어야했지만 최소한 지금은 금연구역에서만큼은 담배피는 사람이 과거보다 현저히 적은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나는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인터넷 검색창 혹은 SNS에 "여혐"이나 "페미니즘" 과 관련된 단어를 검색하면 어떤 콘텐츠의 댓글이나 게시글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을, 남성들은 여성들을 비난하며 대립되는 구도를 보인다. 특히 온갖 신조어를 만들며 한국어이지만 은어에 가까운 말들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가하면 또 한편에서는 그렇게 논쟁하는 것은 일부의 일이라 치부하거나 무관심한 사람도 있다. 또한 여자친구에게 잘하기에, 여자를 좋아하기에 여성혐오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페미니즘은 불편한 단어가 되었고, 누군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려면 극단적인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것을 함께 말해야될 정도로 남녀대립과 비난이 거세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수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라 선언하거나 페미니스트까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부당한 것에 대해 부당하다고 이야기하며,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지금의 상황이 부당한 것에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견디고 침묵하는 시기를 지나서 대립하고 있지만, 그만큼 무엇이 잘못된 일인지 깨닫는 사람 역시 늘어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보며 부족하고 미숙하지만 다시 침묵하지는 않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부당한 것에 부당하다고 말하는 일이 두렵지 않고, 당연한 사회가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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