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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사이 Oct 11. 2019

간병에 대한 부담이 간병살인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누군가를 온전히 그 사람으로 만드는 건 몸이 아니라 기억인 것 같다'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 누군가를 낳고 기르며 부모가 되었던 기억, 그렇게 함께 했던 많은 순간들은 두 번 다시 그 때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해도 머릿속에 아로새겨져 기억된다. 하지만 평생 가지고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억들은 뇌의 기질적인 문제나 손상으로 인해 점차 사라져가는데 이것이 치매라는 증후군이다.


얼마 전 치매에 걸린 아내를 흉기 등으로 살해한 80대 남편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징역 3년인 실형을 선고받았다. 아내는 지난 2012년부터 치매를 앓아왔으며, 최근 증세가 악화됐다. 남편은 치매 증세와 당뇨 등 지병에도 그 동안 아내를 돌봐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요양병원에 입원하라”는 제안을 아내가 거절하자 홧김에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많이 지쳤고 힘들었다. 나이가 있어서 간병을 지속하기 힘들었다.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다”고 범행 동기에 대해 진술했다. 이에 재판부는 살인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반인륜적인 범죄이며, 동기여부를 떠나서 범행수법이 매우 잔혹하기에 이와 같은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간병살인'이라고 뉴스를 검색해보면 아들이 부모님을, 혹은 배우자를 간병부담으로 인해 살해하거나 자살한 경우가 많다. 위의 기사 역시 2012년부터 치매를 앓아왔고 다른 질병까지 있었던 아내를 최소 7년이상 홀로 간병을 해왔다는 것은 이 역시 간병살인으로 보아야한다. 


어떤 병이든 마찬가지겠지만, 그 중에서도 치매는 환자뿐만 아닌 보호자의 병이기도 하다. 치매환자의 일상생활수행능력 저하와 다양한 BPSD(행동심리증상)로 인해 보호자는 간병부담으로 야기되는 우울증이나 신체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다. 또한 치매 환자 1명을 돌보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 연간 약 2,074만원이 든다는 점 등이 치매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의 관점으로 보아야하는 이유이다. 


간병살인은 종종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간병살인과 관련된 통계는 아직 없다. 궁극적인 대책은 환자에 대한 지원이겠지만, 지금 당장 고통받고 있는 간병인들을 위한 지원이나 프로그램들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제대로 집계될 필요가 있는 통계, 그리고 그에 따른 대책이 필요하다. 현재 치매국가책임제의 도입으로 중앙치매센터와 광역치매센터 이외에 구군에도 치매안심센터를 개소하여 지역주민들에게 치매 그리고 보호자와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초기단계인 만큼 전문인력이 충원되지 못하고 있는 점, 그리고 현재 치매안심센터 직원 1명이 돌보는 치매환자는 평균 102명에 이르는 점 등 지속적인 관심과 개선이 필요하다.


치매안심센터 이외에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등급을 판정받아 그에 따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노인장기요양서비스가 있다. 등급에 따라 시설 혹은 재가 급여를 받을 수 있고, 등급 외 판정을 받은 경우 노인돌봄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월 27혹은 36시간의 방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장기요양등급판정 인정률은 높아지고 있지만, 그보다는 등급 외 판정을 받고 노인돌봄 서비스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양이 작아 여전히 치매환자에 대한 가족 부양의 부담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늙고 싶지 않고, 아프고 싶지 않지만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지고, 병이 생기는 것, 그리고 죽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과학기술과 사회가 발전된 지금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병의 진행을 최대한 늦추면서 하루라도 더 아프지 않게 살 수 있는 약을 개발하는 일, 그리고 아프게 되어도 병원비나 부양에 대한 부담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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