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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사이 Oct 04. 2019

"술 취해 기억 안나" 그 놈의 술, 술, 술

술과 가까운 사회일수록, 법은 술을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2019년 10월 2일, 20:30~23:30분 기준 네이버 급상승 토픽에 '술 취해 기억 안나'가 차트에 올랐다.

해당 기사는 이것이었다.


일산 상가 화장실서 여성 ‘묻지마 폭행’ 군인 검거..."술 취해 기억 안나"

A씨는 범행 당일인 지난달(2019. 09) 22일 부대 동료와 외박을 나온 뒤, 해당 상가건물에 숙소를 잡고 술을 마셨다. A상병은 B씨를 따라들어가 화장실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막으며, 머리와 얼굴 등을 집중적으로 폭행했다. A상병은 B씨가 소리를 지르는 등 반항하자, 달아난 뒤 부대로 복귀했다. B씨는 폭행으로 전치 3주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폐쇄회로(CC)TV 추적을 통해 검거된 A씨는 경찰 조사에서 폭행 사실을 인정했지만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술에 많이 취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피해 여성의 말은 다르다. 당시 가해 남성에게서 술 냄새를 맡지 못했고 취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또 폭행 직후 계단으로 달아나려다 여의치 않자 급히 엘리베이터 문 앞에 숨는 CCTV 장면도 취한 모습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주취감형 주장은 여전하다. 주취감형은 술이 취한 상태로 범행을 저질렀을 때, 그 당시 상태가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형벌을 감형해주는 제도를 말하는데 이 법의 허점을 노려 폭행, 성범죄, 아동학대 그리고 가정폭력 등의 범죄를 저지른 후 죄다 술에 취해 있어서 기억이 안난다고 주장을 한다.


여론은 이와 같은 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주취감형을 폐지하라고 계속 청원을 내지만, 법조계는 '술에 취해있었다'는 이유로 감형받지 못할 경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속아 술이나 약물을 하게 된 상태 즉, 비자발적인 음주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때 일괄적으로 감형을 받지 못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조항 자체를 삭제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조두순 사건 이후 법이 개정되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0조를 살펴보면 음주 또는 약물에 취한 상태에서 성범죄를 저질렀을 때 심신미약에 의한 감형 조항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경향신문에서 지난 판결문들을 확인하여 쓴 기사를 보면 성폭력처벌법 개정 이후에도 재판부 재량에 따른 ‘주취감형’ 판결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첫째, 2017년 6월 대구지법 서부지원 형사1부(조현철 부장판사)는 강제추행상해 혐의로 기소된 ㄱ씨에게 심신미약을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ㄱ씨는 2017년 1월 대구 달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학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던 여중생을 마구 폭행한 뒤 추행했다. 재판부는 “ㄱ씨가 음주로 인한 블랙아웃 현상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당일 회식 자리에서 주량을 초과해 술을 마신 점,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일관되게 진술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둘째, 2014년 11월 부산지법 형사5부(권영문 부장판사)는 준강간 혐의로 기소된 ㄴ씨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ㄴ씨는 2014년 6월 양산시의 한 계곡 민박집에서 후배 애인이 만취해 자고 있는 틈을 타 성폭행했다. 재판부는 “ㄴ씨가 낮 12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계속 술을 마셨던 점, 함께 술을 마신 피해 여성도 성관계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점, 자신의 범행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일관되게 진술하는 점 등에 비춰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했다.

셋째, 2016년 10월 광주지법 형사11부(강영훈 부장판사)는 강간미수 혐의로 기소된 ㄷ씨에게 심신미약을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ㄷ씨는 2016년 2월 친구 집에서 셋이서 술을 마시다가 친구가 취해 방에 들어가고 거실에 여성과 둘이 남게 되자 성폭행을 시도했다. 재판부는 “ㄷ씨가 범행 직후 그대로 잠을 잤던 점 등에 비춰보면 심신미약 상태”라고 했다. 2013년 10월 서울고법 형사9부(김주현 부장판사)는 주거침입강간 혐의로 기소된 ㄹ씨에 대해 심신미약을 인정해 징역 2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년3월을 선고했다.


뿐만 아니라 성폭력을 동반하지 않은 아동학대, 가정폭력, 살인 및 강도 등의 범죄에서는 주취감형이 적용되고 있다. 경찰청 5대 강력범죄(2012년~, 5년간) 4건 중 1건 이상이 음주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것을 보면 주취감형이 폐지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를 '술 권하는 사회'라고 많이들 이야기한다. 잦은 회식문화와 밤새도록 열린 술집 등 술에 접근하기도 쉽다. 동네 슈퍼나 편의점만 가도 술을 쌓아놓고 팔고, 고깃집, 치킨집 할 것 없이 술을 함께 팔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술과 가까운 사회일수록, 법은 술을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보다 술때문에 벌어지는 사건사고가 많다. 알코올중독자의 아동학대나 가정폭력("술을 안먹을때는 괜찮은데"), 각종 강력 범죄 발생, 음주운전 등 술을 빌미로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도록 주취감형은 폐지되어야 한다. 비자발적으로 약물을 복용하여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다른 법으로 보호해야 하지만, 애초에 약물이나 술을 먹고 저지른 범죄에 대해 가중처벌을 해야 '술먹고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뿌리뽑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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