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이기에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정말로 잠재적 가해자가 되고싶지 않다면.
며칠 전 나는 길을 지나가던 한 남성 어른으로부터 "따먹고싶다"라는 말을 들었다.
모욕감을 느끼기 이전에 그냥 두려웠다. 그 상황에서 내가 생각해낸 대처방법은 (겨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저 멀리 보이던 편의점에 들어가 그 사람이 계속 따라오는지 확인하는 일뿐이었다.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뒤돌아보는 행동이 오히려 그 사람을 자극하는 일일까봐 무서워도 돌아볼수조차 없었다.
'나를 따라오는 저 사람이 우리집을 알게 되면 안 되는데', 그리고 '제발 따라오지 말았으면'.
이번뿐만 아니라 나는 1년에 한 번 이상씩은 꼭 모르는 남성으로부터 스토킹을 당하거나 성추행, 성희롱을 당했다. 자위하며 나를 부르는 바바리맨도 만났고, 이상한 느낌에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는 나를 20분이 넘는 시간동안 계속 따라오던 사람으로부터 스토킹을 당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 있었던 "따먹고 싶다"는 말과 뒤돌아 나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의 자세까지.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잊혀지지도 않는다.
나뿐만 아니다. 내 주변 친구들, 지인들에서부터 범위를 넓혀 내가 사는 지역에서, 그리고 대한민국 안에서 수많은 (정확히 성범죄 피해자의 90% 이상인) 여성들이 겪고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공적인 자리에서 "엘레베이터를 탈 때 손을 엑스자로 모아 가슴앞에 두어야겠다" 는 식으로 비꼬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보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하는 말 (이라고 부르고 성희롱이라 쓰는) 에 대해 제재를 가하면 "무슨 말을 못 하겠다"며 도리어 제재를 가하는 사람이 잘못한 것처럼 군다. "무슨 말을 못 하겠다."는 말이 하는 말마다 문제가 있다는 말인줄도 모르고.
당연히 세상에는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보다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많다. 그러나 얼굴에, 겉으로 어떤 표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딱 알아보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피해자는 집 밖으로 나갈 때마다 혹은 그 길을 지나다니며 공포감을 느끼고, 잠재적 피해자는 혹여나 내가 피해자가 될까봐 두려운데, 실제 가해자는 (죄에 합당할만큼)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성범죄 가해자의 94%를 차지하는 성별이 남성이라는 이유로 잠재적 가해자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해자 취급을 받았다는 그 사실에 분노한다. 남자는 다 늑대고, 조심해야한다고 말할 땐 언제고.
아니 애초에 잠재적 가해자 취급받는 것이 기분 나쁘다고 오히려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갑이기에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나는 그 말조차도 을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갑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성폭력 특벌법이 제정된지 이제 겨우 25년 남짓, 심지어 그 이후로도 큰 변화없이 20여년이 더 흘렀고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과 미투운동 이후 이제야 듣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하고 있다.
모든 남자가 가해자,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란 것을 안다.
그런데 왜 모든 여자는 잠재적 피해자로 살게 되는 것일까. 정말로 잠재적 가해자 취급받는 일이 싫다면, 실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더욱 강력히 처벌해달라고 함께 외쳐주었으면 좋겠다. 몇시에, 어디서, 어떤 옷을 입고 걸어다녀도 두렵지 않을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