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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사이 Mar 31. 2020

"너의 잘못이 아니야"

텔레그램 내 성착취에 대한 세 번째 이야기.

대부분의 범죄에서 피해자가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는 없을텐데, 이상하게도 성범죄는 피해자가 자꾸 움츠러들게 된다. 아니 피해자에게서 자꾸 범죄의 이유를 찾으려하기 때문에, 피해자가 움츠러든다. "왜? 그런 옷을 입었는지", "왜? 그런 사진을 게시했는지", "왜? 신고하지 않았는지" 묻고, 그 중 하나라도 핑계로 삼을만한 건더기를 찾으면 "네가 그러니까 그런 일을 당한거야"라며 책임전가를 한다. 이번 텔레그램 내 성착취 사건에서도 미성년자가 sns에 노출 사진을 올리고, 조건만남에 응했기 때문이라며 2차 가해를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논리에 의하면, sns에 죽고싶다는 글을 게시한 사람은 죽여도 된다는 뜻인가.


심지어 피해자는 말을 너무 잘해도 피해자답지 않다는 질타를 받고, 말을 못하면 있었던 일이 맞냐는 의심을 받는데, 그에 비해 가해자는 초범이라는 이유로, 어리다는 이유로, 진지하게 반성을 하고 있다는 반성문을 제출했다는 이유 등으로 제대로 처벌조차 받지않고 아무렇지않게 또 살아간다. '태평양'이라는 닉네임을 쓴 만 16세의 이모 군은 다음달 20일 첫 공판을 앞두고 법원에 반성문을 제출했으며, 앞서 재판을 받고 있던 닉네임 와치맨인 전모 씨 역시 3차례의 재판 과정에서 12차례에 걸쳐 반성문을 제출했었다고 한다. 침묵해야될 해자는 여전히 침묵하지 않고있다.


성범죄의 경우 알려지지 않기를 원하는 피해자가 많기에, 피의자는 늘어나는데 구속은 감소세를 보인다. 이번 사건에서도 74명에 이르는 밝혀진 피해자 중 신고를 한 이들은 고작 6명이라고 한다. 여전히 "주변에 알리겠다"는 협박이 피해자에게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사회가 성범죄 피해자를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 그리고 그런 시선이 반영된 2차 가해가 피해자의 입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네가 이거 안하면 지금까지 네가 보냈던 것들 네 주변 사람에게 보낼꺼야. 혹은 유포할꺼야" 라고 했을 때, 피해자가 "네 그러세요. 저는 그럼 신고할께요.(지금 나를 협박하고 착취하는 당신이 가해자예요.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당신이고, 나는 피해자예요.)"라고 대응할 수 있어지고, 그 누구도 피해자의 조심여부를 사건과 연관짓지 않는다면 2차 가해로 인해 자책하거나 죄책감을 느끼 일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범죄의 책임은 가해자다.


무슨 옷을 입고, 몇 시에 다니고, 누구랑 술을 마셨고, 직업이 어떻고, sns에 어떤 사진을 올린다해도 그이 성범죄를 야기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2차 가해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낙인이 사라지지 않는 한, 가해자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도, 반성도 없이 기고만장할 것이다.



같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구성원으로서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 때문인지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다.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고, 그 사람의 방식으로 또 다른 곳에 표현을 하고, 그 표현들이 뭉쳐 지금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길 바랄 뿐이다. 텔레그램 내 성착취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게시하는 유일한 이유이자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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