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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사이 Apr 18. 2020

"넌 안 돼" 라는 말은 누구나 싫습니다.

나는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일들로, 누군가는 고민 끝에 그만둡니다.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은 원래 소란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노키즈존이 생긴 이유는 오직 '아이'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아이의 잘못도 있지만, '아이'의 잘못을 방관하거나 오히려 비매너적인 행동(카페 트레이에 사용한 기저귀를 올려놓고 가는 등)을 일삼는 몇몇 어른들때문에 만들어졌다.


내가 노키즈존을 반대하는 이유는 비매너적인 일부의 행동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노키즈존' 으로 인해 더많은 사람들의 권리가 존중되지 않는 일들이 생겨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물론 피해를 입고 싶지 않은 업주들은 '노키즈존'을 선언했지만, 그 단어의 등장으로 이제는 노틴에이저존, 노초딩존, 심지어 최근엔 만 49세 이상의 출입을 금하는 노시니어존까지 등장하여 특정집단만이 이용하거나 특정집단은 이용하지 못하는, 차별을 바탕으로한 시설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나의 차별이 시발점이 되어 그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실 노키즈존이나 노시니어존은 비교적 최근의 몇몇 사건들로 인해 만들어진 새로운 차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훨씬 오랫동안 간과한 차별이 있다.

비장애인들은 엘레베이터가 없는 3층, 5층 건물을 보면서 '아... 걷기 귀찮다'는 생각을 할 수는 있지만, 올라갈 수가 없는 건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어느 좌석에 앉아야 영상과 자막이 한 눈에 들어올지 걱정해 본 적은 있어도 영화관에서 내가 이용할 수 있는 좌석이 있는지 고민해 본 적은 없다. 심지어 버스와 같은 이동수단 조차도.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다름없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여전히 부족하다.



모든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당연히 돈이 필요할 것이다. 건물들이나 도보는 수리해야 하고, 법도 재개정해서 시스템들을 만들어야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돈 때문에, 우리는 차별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는 것일까?


아마 아닐것이다. 다만 이미 특권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거나, 차별이 있다한들 굳이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특권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법과 문화, 시스템 등이 '살아가는 데 불편함이 적도록 맞춰진 정도'이다. 그래서 한국에 살면서 한국인인 것은 강자에 속하고, 이런 이유로 남성이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성애자인 것 역시 특권을 누리고 있으며, 아이나 노인보다는 청년과 중장년이 강자가 될 수 있고, 그리고 비장애인인 것 역시 여전히 특권을 가지고 있다.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그 부분이 특권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특권을 가진 사람은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일들이지만, 특권을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는 살아가는 데 문제가 생기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차별에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무엇이라서 안 되고, 내가 무엇이라서 할 수 없는 일이 사라지는 그런 사회'가 될 때 까지.



차별, 단어 그대로 이미 불평등하게 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민자여서, 여성이어서, 나이때문에, 성애자여서, 장애인이어서 아니면 학벌, 외모 그 이외의 모든 것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하게 대하는 그 자체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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