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2020년 1월경) 더불어민주당 원종건 영입 인재가 데이트폭력으로 사퇴했을때, 그를 내세웠던 민주당에서는 '그런 부분까지 확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나는 이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의 사회적인 능력을 평가할 때 학벌, 능력 등은 꼼꼼히 살핀다. 그러나 여성혐오나 성인지감수성은 그 조건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성혐오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여성'에 대한 혐오인 동시에 약자에 대한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 동서양 나눌 것 없이 여성은 (신분에 관계없이) 권리도, 자유도 남성보다 늦게 얻었다. 아니 아직 제대로 얻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양육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고, 임금 차이 역시 OECD 1위다. 여전히 폭력에서조차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의 텔레그램 내 성착취 사건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예술가 알렉산드로 팔롬보가 세계 여성 정치인의 구타당한 포스터를 제작하여 전 세계 수백만명의 여성들이 처한 극적인 사진을 보여줌으로써 이를 고발한 것처럼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은 단절되지 않고 있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연인과 가족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폭력과 차별을 일삼는 사람이 과연 자신과 일면식도 없는, 심지어 자신이 폭력과 차별을 저지르던 집단을 위한 차별에 저항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국민의 절반인 여성, 그보다는 비율이 적지만 그렇다해도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장애인, 아이, 이주노동자, 노숙인, 성소수자, 심지어 저소득층까지 차별에 저항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차별할 수 있는 대상이 수없이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 사회경제적 능력이나 영향력으로만 따지면 대다수의 국민이 약자가 될 수도 있다.
많이 배우고, 여러 능력을 갖춘 훌륭한 인재.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정치를 하고, 정책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일에 대한 능력 외에도 차별에 저항하고, 약자가 약자로 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는 그런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길, 그리고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