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이사이 May 29. 2021

길고양이가 차 밑으로 다니지 않는 세상이 되길

햇살이 좋았던 어느 주말 오후였다. 나는 1층에 살고 있어 창문 밖 담벼락위로 고양이들이 가끔 지나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 날 역시 잘 닦여있는 담벼락 위로 고양이가 지나갔다. 경계심어린 모습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아이는 이내 나를 발견하고 나를 한참동안 빤히 쳐다봤다.  몸이 왜소하여 성묘가 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외형으로 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아이는 잠시 경계를 풀고 똑바로 서서 마치 내게 '여기에 잠시 앉아도 되겠냐'고 묻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나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이나 소리에 고양이가 떠날까봐 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아이의 눈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도 내 표정과 끄덕이는 행동에서 위협을 느끼지 못하였는지 몸을 낮추고 앞발을 숨겨 앉으며 햇살을 즐겼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을 그 시간, 그 순간이 나에게는 여러가지 의미로 기억이 되었는데, 우선은 그 아이가 잠시동안이라도 쉴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위협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 감사했고누구에게나 공평한 햇살을 쬐는 일이 그 아이에게는 쉽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우리 사회가 고양이에 대한 위협과 혐오범죄가 줄어든다면 마음껏 어느 담벼락 위에서나 햇볕을 쬐며 쉴 수 있을텐데. 주인없는 담벼락의 30cm 공간에 잠시 앉아쉬는 일마저 너에게 동의가 필요했다는 것에 나는 마음이 아팠다.


사람에게는 집이있지만, 길고양이에게는 지구가 집인 세상이 되길

<고양이가 지구를 구한다.>는 소금툰 작가님의 책에 보면 러시아 상트페테부르크에서는 길고양이를 위한 급식소가 ㄷ자로 생긴 건물의 한 가운데에 설치되어 있고, 사람들이 지나가도 숨지 않는다는 글이 있다.


우리나라의 서울에서도 동물보호 사업의 일환으로 공원에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하는 사업이 실행되고 있는데, 이 사업이 하루빨리 정착되고 당연해져서 아파트 곳곳, 길 곳곳에 있는 캣맘들의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밥 그릇이 아니라 안전한 급식소가 마련되길, 위험하게 차 밑으로 숨어다니지 않길, 어디에서든 길 한 켠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세상이 되길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려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