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된다"는 말에 기생하고 있는, 통제와 억압
"여자가 밤늦게 돌아다니면 안돼.", "여자가 옷을 그렇게 입고 다니니까 위험하지.", "여자가 잠은 집에서 자야해." 등. 대부분 이러한 말들을 듣고 자랐고, 지금도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이런 말들을 듣고 살아가고 있다.
매일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과 신체적으로 남성에 비해 연약한 여성이라는 핑계를 이용해 여전히 통금시간을 정해놓는 집이 많다. 나는 이것이 여성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인 자식이 걱정되는 부모님의 잘못은 아니다. 다만 여성인 자식만을 억압해야하는 현실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만약 어떤 범죄자가 칼과 같은 무기를 들고 공격해온다면 여성이 아닌 남성 역시 위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통금은 여성에게만 부과하려 한다. 이렇게 1982년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통금은 법적으로는 사라졌지만, 일반인이 아닌 여성으로 범위가 좁혀진 채로 여전히 남아있다. "걱정이 된다"는 말에 기생하면서 통금은 여성을 억압하는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
내가 이토록 통금을 보고 여성을 억압하는 무기라고 지칭하는 것은, 통금때문에 더욱 여성이 위험에 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가족내에서 여성에게 통금을 부과하여 여성을 조심시키고 통제할수록, 통제되지 않는 여성을 비난하게 된다. 예를 들어 밤길에 여성이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다고 하면 주변의 밤길에 돌아다닌 여성들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하게되는 것처럼.
통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 인식하지 않고, 통제되지 않는 여성을 비난하게 된다. 결국 여성을 비난의 대상으로 만들고 이는 더욱 강한 통제로 악순환될 뿐이다. 통금은 몇몇 가족만이 아니라 10~20대, 30대의 여성인 자식을 둔 많은 가정들이 여전히 통금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개인이 아닌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라고 해도 과언이라 할 수는 없다.
범죄가 발생했을 때, 범죄에 대한 잘못과 책임을 가해자만큼 피해자에게 덮어씌우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즉, 여성이 조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에게 더욱 책임을 묻고, 제대로 처벌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