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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사이 Aug 03. 2018

나의 가치는 얼마인가?

-카프카의 <변신>과 경제적 효용성만을 생각하는 사회

‘아침에 일어나니 내가 벌레가 되어 있었어요.’  카프카의 <변신>은 하루아침에 크고, 징그러운 벌레가 되어버린 그레고르의 이야기이다. 그는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벌레가 되었다. 그 모습을 본 여동생은 그를 처음에는 무서워하면서도 돌보았으나 결국 경멸하게 되고, 어머니는 졸도하고 피했으며, 아버지는 아들을 긴 막대기로 누르고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며 심지어 사과를 던지는 등 벌레 취급을 한다. 이 때 던진 사과의 파편이 등에 박혀 상처가 났고, 죽게 되는 원인이 된다.

   

집안의 경제상황이 어려워지자 가족들은 하숙인을 받게 되는데 그레고르가 잠시 밖으로 나온 사이 그의 모습이 들켜 하숙인들은 돈을 주지도 않고 나가버린다. 이 일로 인해 가족들은 그레고르를 한 때 사랑했고 아꼈던 가족이 아닌 쓸모없는 벌레로 여기고 그가 죽기를 바란다.    


상처는 더욱 악화되고 가족들의 마음까지 알게 된 그레고르는 더 이상 삶의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죽어간다. 이 벌레의 시체를 발견한 가족들은 슬퍼하는 것이 아닌 안도하며 벌레의 시체를 치운다. 이후 남은 가족들은 함께 교외로 소풍을 떠나게 되고 부모는 성숙해진 딸의 모습을 보며 시집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이야기의 결말을 보면 딸의 성숙해진 모습을 보고 시집을 보내려는 부모의 모습이 보인다. 성숙해진 딸의 모습에서 시집을 보낼 수 있는 가치를 찾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그레고르를 생각해보면 그레고르가 꼭 벌레가 된 것이 아니라 그레고르의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그의 가족들로부터 내쳐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것은 비단 그레고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산업화되고 계속 자본주의화 될수록 우리 사회의 비 경제활동인구 즉, 사회에서 경제적 효용성이 떨어지는 집단은 그레고르와 다를 것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슬픈 일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그레고르와 같은 입장인 사람들이 많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아동과 노인, 장애인은 우리 사회에서 취약한 계층으로 구분되고 있다. 또한 현재의 우리 사회는 임신을 한 여성, 육아휴직을 쓰는 여성 모두 경제적 효용성과 거리가 멀다고 판단하고 사회에서는 가임기 여성마저 배척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여성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고, 저 출산은 해결해야 할 중요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인 우리 사회에서는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정도를 가지고 한 인간의 가치를 매기는 것을 우리는 그냥 자본주의의 폐해라며 ‘어쩔 수 없는 일’로 보고 말아야 하는가.

복지 용어 중 ‘탈 상품화’라는 용어가 있다. 탈 상품화는 복지의 질적 지표 중의 하나로 쓰이는데 용어의 뜻은 한 사람이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팔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


즉, 탈 상품화가 잘 되어 있는 국가일수록 경제적 효용 가치만으로 한 개인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는다. 탈 상품화 정도가 높아지기 위해서는 개인의 사유재산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확대되어야 하고 소득 재분배도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등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부분들이 바뀌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런 부분들이 개선되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좋은 사회가 된다면 아무리 많은 기간이 걸리고, 또 반대가 극심하다 해도 개선되어야 한다. 개선된 이후만 좋은 것이 아니라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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