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과 나누는 우정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하다. 그래서 2012년부터 교육부는 봄과 가을이면 학교마다 온라인으로 학교폭력실태조사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설문 응답률이 학교평가 항목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학교들은 학생들이 설문에 응하도록 권하고 있다. 이 온라인 설문뿐만 아니라 학교 자체적으로도 설문지를 통한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매월 혹은 학기별로 실시하고 있다. 이 설문조사를 통해 친구를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아이를 찾아내고 찾아낸 가해 학생에게는 학교폭력예방을 위한 자치기구 회의를 통해 처벌의 수위를 결정한다.
왜 모든 학교가 이와 같은 설문을 하게 되었을까? 아이들이 받는 고통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따돌림은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에게 심리적인 고통을 안긴다. 미 소아과학회(2016.06.27)의 임상보고서에 따르면 만 8세 시절 가해자였던 어린이들은 나이 들어서 자살 시도를 하거나 자살하는 비율이 평균보다 높았고, 고교 시절에 왕따를 경험한 사람들은 몇 년 후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비율이 매우 높았다. 학자들의 연구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 많은 아이들이 학교폭력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화하여 자신이 받은 피해를 동일한 방법으로 보상받으려 하고 있다. 이렇게 늘어가는 학교폭력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기 때문에 매년, 매학기, 혹은 매월 아이들에게 학교폭력실태조사라는 설문을 실시 하고 있다.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
질문이나 문제 제시 방법(틀)에 따라 사람들의 선택이나 판단이 달라지는 현상으로 특정 사안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는 이론.
예를 들어 의사가 실시하는 환자의 수술 생존율이 70%인 경우 내놓을 수 있는 답변은 두 가지다. 첫째는 사망률이 30%라는 것, 둘째는 성공률이 70%라는 답변이다. 결과는 같지만 어느 쪽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해석이 정반대로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프레이밍 효과를 학교로 가져와 보자. 매년 2회에 걸쳐 실시하는 학교폭력 실태조사 설문 문항은 학교폭력 피해·가해 경험과 예방교육 효과에 관한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교폭력 피해 또는 가해 경험에 대한 문항은 또래 친구들 혹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선후배로부터 학교폭력 피해를 입은 적은 없는지, 혹은 학교폭력을 가한 적은 없는지를 묻는 것이다. 다시말해 친구들을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자신은 피해자로 프레이밍하게 한다. 이러한 질문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학교폭력 예방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요인을 고르자면 크게 2가지를 말할 수 있다. 첫째로 발견이 어렵다. 학교폭력은 주로 교사가 없는 시간에 주로 이뤄지며, 이를 교사가 발견하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생간의 상호작용이 충분히 이뤄질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업무에 시달리는 교사의 시야는 좁아져 있고, 아이들은 그 시야 너머에서 서로를 괴롭힌다. 둘째 침묵하는 다수의 아이들이다. 1997년 11월 서울시내 중고등학생 2,565명을 대상으로 삼성생명 사회정신건강연구소에서 학교생활에 관한 조사연구를 실시하였다. 이 조사에서 76.5%가 자기 주변에 따돌림 당하는 친구가 있어도 선생님께 말씀드리지 않는다고 하였고, 전체의 35.8%의 아이들, 특히 중학교 여학생의 경우 50.8%가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를 친구로 사귀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해마다 국가가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현재는 따돌림과 같은 학교폭력의 발견이 쉽게 이뤄지고 있을까? 더불어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방관하는 아이들이 친구가 되어주고 있을까? 교육부의 2015년 2차 학교폭력실태조사 결과 분석에 따르면 목격 후 도움 비율이 82.7%에 이르렀다. 아이들이 학교폭력을 목격하거나 혹은 피해나 가해를 했을 경우 이를 신고하는 방법이 매우 쉬워졌다. 다시말해 학교폭력의 발견은 쉬워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학교폭력은 정말 줄어들고 있을까? 2015년 상반기 교육부 학교폭력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년도 같은 기간에 발생했던 9713여건보다 9.8% 증가한 10,662여건이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학교폭력은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까? 우리나라에서 집단따돌림, 학교폭력, 왕따, 이지메 등이 알려진 시기는 1990년대 중반부터였다. 1990년대 우리나라는 수도권 비대화로 대도시 인구와 기능분산을 위해 일산, 분당, 산본, 평촌, 중동과 같은 신도시 및 신시가지 개발 사업이 본격화 되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에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게 살게 되었고, 단독주택보다는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비율이 훨씬 많아졌다. 공동주택이 많아지고 도시 근로자들이 늘어나면서 지방의 많은 학교들은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수도권 신도시를 중심으로 한 학교들은 과밀학급이 되어갔다. 부모들은 이웃과 인사조차 나눌 여유가 사라지고, 아이들은 이웃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아이들의 사회적 관계는 급속이 결핍되어 간 것이다.
어른들 속 이웃 간의 정이 사라지면서, 아이들 속 친구 간의 우정이 사라졌다.
친구와의 우정을 쌓아가기 위해 함께 할 시간보다 친구를 이기기 위해 공부할 시간이 더 중요해졌다.
학교는 성적순에 따라 아이들을 차별했고, 아이들은 행복은 성적순임을 이야기하는 어른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맡겼다.
벗과 우정을 나누는 경험을 해야 할 시기에 친구를 이겨야 할 경쟁상대로 인식해 버린 것이다.
친구는 더 이상 벗이 아니고 적이 되었다. 아이들은 벗을 만들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적을 이기기 위해 애쓰게 되었다. 이는 결국 아이들의 공감능력을 빼앗아 갔고, 학교폭력은 점점 잔혹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더하여 매년 혹은 매월 설문조사를 통해 학교폭력의 피해경험 혹은 가해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아이들은 친구를 적으로 여기는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에 빠져든다.
이러한 경험은 뇌를 고착화 시킨다. 10대 초반에 발달하는 변연계로 인해 아이들의 감정표현은 극적이지만, 감정표현을 조절하는 전두엽의 발달은 10대 후반에 이뤄진다. 청소년 초기의 뇌는 회백질의 밀도가 증가했다가 급격히 감소하는데 이 때 뇌의 가지치기(Pruning)과 수초화(Myelination)가 이뤄지므로 정서적 신경회로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도록 하여 타인의 정서적 상태와 경험을 이해하고 이것에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이 시기에는 새로운 정보에 뇌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뿐만 아니라 얼굴표정을 통해서 타인의 감정을 알아채고 자신의 정서를 조절하게 된다. 정서와 관련된 신경회로가 12개가 있는데 사춘기 시절에 8개가 완성된다고 하니 청소년 시기 사회적 관계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린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학교폭력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할까? 우정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할까? 과연 학교에서 학교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을까?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있을까? 학교에서 친구가 자신을 괴롭혔는지, 혹은 자신이 친구를 괴롭혔는지를 생각하도록 하는 것 보다 친구가 자신을 도와주었는지, 혹은 자신이 친구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었는지 생각하도록 하면 안 될까? 친구와 함께 우정을 나누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학교폭력을 가장 먼저 발견하는 대상은 바로 아이들이다. 학교폭력을 발견하는 것도, 예방하는 것도 아이들끼리의 도움이 훨씬 직접적이고 효과적이다. 물론 아이들 옆에 부모가 있지만, 부모의 맞벌이와 지나친 노동시간은 아이들 목소리에 귀 기울일 부모의 여력을 빼앗아 가고 있다. 부모보다 가까이에 교사가 있지만, 교사들 역시 학생지도나 수업지도에 우선하여 처리해야 하는 업무에 갇혀 아이들에게 눈 돌릴 여유조차 없다. 지금 당장 부모와 교사를 아이들 옆으로 보내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그렇다면 우린 이대로 포기해야만 할까?
교육의 3주체는 학생, 학부모, 교사다. 3주체가 각자의 위치에서 어떤 노력을 해야만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벗과 우정을 나눌 수 있을까?
먼저 교사의 역할부터 살펴보자. 앞서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에 대하여 언급한 바와 같이 학교폭력실태조사가 주는 프레이밍 효과는 벗을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여기게 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인식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 벗과의 우정을 재는 척도를 마련하고, 스스로 더 나은 벗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야 한다. 또한 학생 한 명 한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업무보다 수업, 생활지도를 우선하는 학교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다음으로 부모의 역할을 살펴보자. 부모는 자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자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있다. 가족 좌담회다.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잘 들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015년 5월 TED에 소개된 셀레나 헤들리는 10가지 비법을 소개하고 있다. 첫째 다른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대화에 집중할 것, 둘째, 가르치려 들지 말 것. 셋째, 어떤 느낌이었는지, 어땠는 지와 같은 단순한 질문을 할 것, 넷째, 자신이 생각난 것을 기억하고 말하려 하지 말 것. 다섯째, 모르면 모른다고 할 것, 여섯 째, 부모의 경험을 아이의 경험과 동일시 하지 말 것. 일곱째 했던 말 또 하지 말 것. 여덟째, 연도나 이름, 날짜와 같은 세부적인 정보에 집착하지 말 것. 아홉째, 들을 것. 열 번째 짧게 말할 것. 이 모든 것은 좌담회 속 대화의 광장에서 이뤄진다. 또 하나 가족 좌담회에서 가족 간 대화의 광장을 할 때 초를 켜두면 더 효과적이다. 어둠 속의 불빛은 사람의 정서를 자극하고 대화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먼저 기억해야할 문장이 하나 있다. “이 세상에서 비참이라는 두 글자를 없애고 싶다.” 이것은 내 스승의 비원이었다. 이는 나와 인연이 있는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서원이다. 나를 아는 모든 친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먼저 인사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먼저 남에게 인사를 하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 먼저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는 친구가 많은 학교나 교실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부모도 교사도 아닌 바로 학생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벗과 벗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는 교실, 벗과 나누는 우정을 가르치는 학교, 그 우정을 키워나고 지속시킬 수 있도록 격려하는 가정이 늘어간다면 언젠가는 더 이상 학교폭력이나 따돌림이 우리 사회에 발붙일 수 없지 않을까?
이런 꿈을 꾸게 하는 것이 Seligman이 말한 행복의 3요인 중 Meaningful life라고 생각한다. 우정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게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Masten & Reed (2002)가 말한 아동청소년을 위한 Resili
ence 보호 요인 중 낙관적인 전망과 정서 및 충동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능력 등과 관련된 개인적 요인, , Buckner와 그의 동료들(2003)이 말한 문제의 중요한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고 노력을 경주하는 인지적 자기조절에 해당한다고 본다. 학교폭력이나 따돌림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은 결국 우리들 가슴에 잊었던 꿈, 잊었던 우정을 꿈꾸게 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벗과의 아름다운 우정을 경험한 사람이 많아질수록 성인이 되어서도, 노인이 되어서도 더 행복한 삶을 살 것은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1.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119619&mobile&cid=51004&categoryId=51004 따돌림 네이버 자료.
2. http://www.knn.co.kr/97531 왕따의 자살생각
3.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0630601006 “왕따 괴롭히기는 뇌가 원하는 달콤한 보상”(네이처誌)
4. http://news.mk.co.kr/newsRead.php?no=462348&year=2016
5.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54423
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6/23/2016062301380.html
7. http://www.kormedi.com/news/article/1218758_2892.html
8.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6/23/2016062301380.html
9. http://www.brainmedia.co.kr/brainWorldMedia/ContentView.aspx?contIdx=17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