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과 자기조절에 대하여.
“이거 하나만 먹어.”
“싫어. 안 먹어. 맛없단 말이야.”
아이를 키우면 누구나 한 번쯤 듣는 말이다. 물론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급식을 지도하는 교사들은 편식을 하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먹을 것을 권하지만, 교사의 눈을 피해 바닥에 버리거나 잘 먹는 일부 친구들에게 몰래 전달하기 일쑤다.
편식이 심한 아이의 부모가 상담을 왔을 때 이렇게 말을 건네 본다.
“음식을 같이 만들어 보세요.”
그러나 부모는 이렇게 말한다.
“같이 만들어서 저만 먹어요.”
많은 가정에서 아이들과 자주 마주하게 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편식이다.
도대체 왜 아이들은 편식을 할까?
첫째로 아이들은 자기조절을 잘 못한다. 채소나 나물은 여러 번 씹어서 삼켜야 한다. 만약 제대로 씹지 않은 채 목구멍으로 넘기면 반드시 걸리게 되고, 아이는 헛구역질을 하며 뱉어내야만 한다. 이런 경험이 주는 부적 정서는 아이가 본래 가진 부정적 기대와 일치하고, 유사한 음식을 마주하는 순간 이 경험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먹기 싫은 강력한 이유가 등장한 셈이다.
둘째로 맛이 없다. 맛이 없기보다는 채소나 나물이 가진 고유한 쌉싸름한 맛이 주는 공포 때문이다. 소리에도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소리가 있고, 색에도 사람의 정서를 좌우하는 색이 있듯이 맛에도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거나 나쁘게 만드는 맛이 있다. 채소나 나물과 같은 식물성 반찬이 주는 조금은 쓰고, 묘한 맛과 향은 아이들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먹었다가 채소나 나물 특유의 향이나 맛에 의해서 거부감을 일으키는 아이들도 있다.
셋째로 쉽게 접하지 못한다. 학교 급식에서 처음 보는 반찬이 많을 정도다. 가정에서 온 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는 일은 드물다. 가족이 모이는 주말에는 외식을 하고, 바쁜 아침에는 시리얼이나 빵, 혹은 삼각 김밥으로 대체하는 아이들이 많다.
넷째로 부모들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음식 재료를 준비하고,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고, 이를 함께 나눌만한 여유가 없다. 바쁘게 등교하는 아이들, 헐레벌떡 출근하는 부모들에게 아침 식사는 사치다. 저녁은 물론 함께하지 않는다. 국가가 책임지고 12시간 보육을 책임지겠다는 세상이다. 회사에서 일찍 퇴근을 한 후에 시장에서 장을 보고,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만들며 준비하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
다섯째로 채소는 시들고, 나물은 상한다. 매일 먹지 않으면 재료의 신선도가 떨어지고, 쉽게 상하는 반찬을 만들지 않는다. 오래 두어도 쉽게 상하지 않는 반찬으로 계란과 김의 인기는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필자 역시 계란과 김은 삶의 일부로 여긴 지 오래되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음식을 먹지 못한다. 치아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젖이나 분유를 먹는다. 젖꼭지를 빨면서 폐기능이 발달하고, 호흡이 조금씩 깊어지면서 잠을 잘 자게 되며, 잠을 잘 자게 되면 성장호르몬이 잘 분비되고, 이로 인해 신체의 각 기관에 보다 튼튼해지고, 어려운 과제를 잘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음식으로 치면 구강 내에서 씹고, 아밀라아제와 같은 소화 효소를 포함한 침과 섞여 위장으로 영양분을 내려 보내는 일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아이가 처음 먹는 이유식에는 간을 하지 않는다. 이유식 재료가 본래 갖고 있는 소금의 양은 미각이 지각하기에는 너무 소량이고, 감각적으로 염분의 섭취를 확인하려는 욕구는 간이 되어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 채워진다. 그래서 간이 안 된 이유식을 아이들은 잘 먹지 않는다. 자신의 만족을 지연시킬만한 자기조절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간이 된 음식을 먹어본 아이는 십중팔구 간이 안 된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는다. 이미 소금에 빠져든 것이다.
아이가 어린이 집을 가기 시작하면 distress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급격히 치솟는다. 온몸의 근육은 긴장하고, 호흡은 가빠지며, 얼굴은 빨개지고 울음이 시작된다. 에너지의 과다소모가 시작된 셈이다. 신체 내에 포도당 수치는 떨어지고, 아이의 우울과 불안은 지속된다. 아이의 불안과 우울을 손쉽게 잠재울 방법은 오직 하나. 아이에게 포도당을 공급해주는 것이다.
소아과나 치과에 가면 아이들이 사탕이나 비타민을 받는다. 어린이 집에 등원하기 전에 아이에게 사탕을 입에 물려주거나, 하원 할 때 과자를 사주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원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왜 과자나 사탕, 혹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할까? 자신의 심리적 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가 손쉽게 아이들 손에 쥐어주는 단당류 위주의 사탕은 그 효과가 매우 즉각적이다. 사탕 껍질을 까고, 입에 문 순간 아이의 얼굴에서 우울과 불안은 사라지고, 웃음이 가득하다.
문제는 음식을 먹는 습관이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이를 조절하는 방법 중 하나가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을 ‘마시거나’, 음식을 ‘씹거나’, 담배를 ‘빤’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그 자체가 가진 성분과, 음식을 섭취하는 방법이 다르다. 다양한 재료를 통해 고른 영양을 섭취하고, 그 섭취의 방법은 씹는 것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
그렇다면 왜 씹는 것을 기본으로 해야 할까? 앞서 사람은 태어나면서 젖이나 분유를 먹는다고 하였다. 빠는 행위가 폐의 기능을 강화하고, 호흡이 길어지면서 수면의 질이 좋아지고, 이로 인해 성장호르몬이 잘 분비되어 신체의 각 부위가 제대로 기능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신체의 발달과 더불어 뇌의 발달은 더욱 중요하다. 특히 말을 배우고, 세상에 대한 지각을 통해 경험적 지식을 쌓는 것에 더해서 길을 찾고, 심부름을 하는 등의 장기 기억이 활용되는 경우가 늘어날 때 뇌 부위 중에서 해마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씹는 행위가 바로 이 해마에 영향을 준다.
씹는 행위는 뇌로 가는 혈류량을 증가시키고, 이는 생각하는 능력과 관련이 깊은 전두엽의 혈중 산소 농도를 높여준다. 전두엽뿐만 아니라 기억, 학습, 동기와 관련된 해마의 혈중 산소 농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혈중 산소 농도만 높여주는 것이 아니다. 세로토닌, 히스타민, 아세틸콜린과 같은 뇌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어 뇌가 활성화되는데 도움을 준다. 씹는다는 행위가 얼마나 이로운지 알 수 있다.
채소나 나물은 종류에 따라 맛이 매우 다르다. 복잡하고 미묘해서 각각의 차이를 천천히 음미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이는 지금 이 순간의 행위에 집중하게 한다. 이는 마음 챙김(mindfulness) 행위와 일치한다.
마음 챙김은 감각에 집중하게 하고, 감각은 현재 벌어지는 일에 대해 수용적 태도를 유지하게 만든다. 이는 뇌의 섬엽을 자극하고, 섬엽을 통한 자극은 편도체의 지나친 활성화를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야말로 자기조절 훈련이 되는 셈이다.
뿐인가? 단당류가 아닌 당류의 섭취는 당의 분해과정에 걸리는 시간과 분해된 포도당이 인체 내에 흡수되는 시간이 매우 완만한 곡선을 따라 변화한다. 따라서 인체 내 포도당의 수치가 하락하는 것도 완만한 속도를 띄게 된다. 더구나 보약이나 건강 보조제를 통한 영양소의 낮은 인체 흡수율에 비해서 음식을 통한 영양소의 섭취는 높은 흡수율을 보인다.
먹는 거 하나 바꾼다고 아이가 잘 자라냐고 묻는다. 물론 그렇지 않다. 인간을 성장시키는 수많은 요인 중 하나 일뿐이다. 그 수많은 성장요인을 최대한 지켜가는 것이 부모나 교사로서 해야 할 일이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력이 필요해도 그 과정을 지켜가는 것이 아이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가족이 함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서로가 좋아하는 음식을 이야기하고, 이에 필요한 재료를 고르고, 함께 준비하며,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천천히 음식을 씹으며 맛보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함께 만들 음식, 먹고 싶은 음식을 이야기하면서 보다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고르게 음식을 섭취하며, 보다 건강한 아이로 자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