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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철학, 그리고 심리학의 상관 1.

교육의 목적은 행복. 행복에 대한 탐구는 철학으로 시작해서 심리학으로.

교육은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철학은 인간관이고, 가치관이고, 생명관이며 세계관이고, 우주관이다.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가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생명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우주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전부 철학으로 결정되고, 그 바라보는 바를 결정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철학은 영어로 philosophia로 표현한다. philo는 '사랑하다', '좋아하다'라는 뜻이고, sophia는 '지혜'를 뜻한다. 교육은 영어로 education이라 표현한다. education은 라틴어의 educare는 'e' 밖으로, 'ducare' 끌어낸다는 의미다. 이를 풀어보면 인간이 본래 좋아하고 사랑하는 지혜를 밖으로 끌어내는 일이 바로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왜 지혜를 사랑하는가. 지혜가 삶을 풍요롭게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풍요롭게 행복한 삶이란 인간이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고 그에 맞게 살아갈 때 가능하다. 

과연 그러한지는 차차 심리학 이론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어쨌든.


그렇다. 교육은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철학은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리키는 나침반이다. 

그래서 늘 나침반이 잘 작동하는지 살펴볼 줄 아는 것을 철학하기라고 이름 붙였다. 

아이들 표현으로는 이영근 선생님의 글똥누기랄까?


삶의 나침반이 되어 줄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도덕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본다.


도덕의 의미.

덕(德)이란? 선을 생함을 덕이라 한다.
도(道)란? 인간으로서 걸어가야 할 길.

결국 도덕이란 선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은 어떻게 실천하는가?

톨스토이의 3가지 질문이 이에 대한 적절한 답을 주고 있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당신 옆에 있는 이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다.
이는 helper's high와 the mother teresa effect, 그리고 프레드릭슨의 정적 정서의 확장 구축 이론으로 설명된다

어두운 밤길에 남의 앞을 밝히면 자연히 내 앞이 밝아지듯이 지금 내 옆에 있는 이에게 선을 베푸는 것은 곧 나 자신을 위한 일이 된다. 

helper's highthe mother teresa effect가 그 근거가 된다.

뿐인가? Barbara Fredrickson의 Broaden and Build Theory는 타인에게 선을 베풀면서 경험하는 정적 정서가 개인의 사고와 행동의 범위를 확장시키고, 나아가서 신체적이고, 지적인 자원뿐만 아니라 심리적, 사회적 자원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자우너을 확장시키고 자신의 것으로 구축하는 능력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인간으로서 걸어가야 할 길을 나타내는 성인의 문장이 하나 있다.


은혜를 아는 자를 인륜(人倫)이라 이름하고 알지 못하는 자를 축생(畜生)이라 합니다(어서 491쪽).


그래서일까? 스웨덴 정신의학자가 쓴 '아이들은 어떻게 권력을 잡았나'라는 책에서 북유럽 교육의 고민은 '감사'에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발달은 이해하되 아이들의 욕구에 초점을 맞춘 배려는 아이의 심리 사회적 발달에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사하는 마음은 타고나는 것이 아닌가?

타인을 공감하고 고마움을 아는 것은 인지상정일까? 학습의 성과일까? 

연구(Dunn과 Kendrick  및 MacNamee(1981)는 2세에서 4세 아동의 25%가 어린 형제를 자주 위로해 주었고, 30%는 가끔 그런 행동을 보였으며 나머지 45%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보고)에 따르면 기질적으로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아이의 비율이 45%, 높은 아이는 25%에 불과하다고 한다. 


결국 감사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사의 대상은 누구이며 어떻게 보은 하도록 해야 하는가?

과거에는 주사친 즉, 임금과 스승 그리고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가르쳤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주의 사회이고 임금에 대한 보은은 나와 연이 있는 모든 이를 위한 보은으로 치환된다.


그럼 어떻게 보은 하는 것이 현명한 보은일까?     

먼저 부모에 대한 최고의 보은은 무엇일까? 과연 부모들은 자식에게 무엇을 기대할까? 왜 아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좋은 성취를 거두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길 바랄까? 아마 부모보다 훌륭한 삶, 아니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기대해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먼저 건강해야 한다. 건강해지려면 골고루 음식을 섭취해야 하고, 운동을 꾸준히 고르게 해야 하며, 악기 하나 정도는 다룰 줄 알아서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는 기술을 익히고, 미술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이어가서 심미안을 갖고 인간을 이해할 줄 아는 안목을 가지며, 배움의 즐거움을 느껴서 20살에 학문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 배우고 성장하는 삶이 진정한 행복임을 사무엘 울만이 이야기하는 청춘이란 시처럼 온 삶으로 절절히 느끼고 실천하는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다음으로 스승에 대한 최고의 보은은 무엇일까? 스승에 대한 최고의 보은은 청출어람이다. 스승보다 뛰어난 제자가 되는 것이다. 청출어람은 순자(荀子)의 권학 편(勸學篇)에서 나온 말로 청출어람 청어람이 본래 문장이다. 이는 쪽이라는 풀로 만든 푸른색이 본래의 쪽빛보다 더 푸르고 맑은 청색이 된다는 말로, 스승보다 나은 제자를 가리킨다. 이는 아이들의 행복을 바라는 교사들의 로망이다. 교사보다 더 배움을 즐거워하고, 더 건강해지며, 더 효도하고, 더 깊은 우정을 나누며, 누구에게나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가는 것보다 훌륭한 보은이 어디에 있을까?


마지막으로 임금에 대한 은혜, 아니 민주주의 사회이므로 나와 연이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보은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신고 있는 신발을 만들어 준 분들의 노고에 보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침에 일어나 말끔히 청소가 된 길을 걸으며 우리는 누구에게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결국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이 자신의 수명을 다할 때까지 본래의 쓰임에 맞게 아껴서 잘 사용하는 것이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 우리가 오가는 길을 깨끗이 치워주신 분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이 보은 하는 길이 아닐까?


이는 Ryan &Deci의 자기 결정성 이론과 자기 가치 확인 이론, Buckner의 Resilience 관련 인지적/정서적 자기조절, 애착 및 심리치료에서 섬엽과 편도체의 관계, 사회 정서적 선택 이론 등으로 설명된다.


먼저 스탠퍼드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인 Claude Steele이 이야기하는 자기 가치 확인 이론(self- affirmation theory)과 지은보은의 상관을 설명해보자. 은혜를 안다는 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연결된다.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분명하다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에피네프린이라는 호르몬의 수치가 변화하지 않았다. 이는 외부의 압력이 있을 때 덜 방어적으로 대응하고 타인의 시선에 대해 자유로워져서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보은 즉, 감사에 대한 보답은 부모나 어른 혹은 사회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Peterson & Park(2006)의 연구에 따르면 아동의 연령이 증가할수록 감사와 행복의 연관성은 높아졌다. 왜 그랬을까? 타인의 노고를 알고, 기억한다는 것은 타인과 맺는 관계성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그 노고에 스스로 보답한다는 것은 자율성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노고에 보답하는 보은의 행위는 행위를 보는 주변인들의 심리 상태에도 영향을 준다. 이는 앞서 소개한  the mother teresa effect와 관련이 있고, 이는 다시 개인의 유능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으로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음식을 편식하지 않으며, 건강을 위해 꾸준히 운동을 하고, 타인과 눈을 맞추며 대화하는 행위는 대뇌피질의 섬엽과 관련이 깊은데, 이 섬엽은 정서조절과 관련이 밀접한 편도체의 과도한 흥분을 억제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자연스레 안정애착의 장점 중 하나인 비언어적 표현과 언어적 표현의 일치된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는 자극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들의 노고는 물이나 공기 같아서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없으면 대단히 불편하다. 만약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이 없다면, 길거리를 청소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우리의 대소변을 처리하는 분들이 계시지 않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 


Buckner(2003)에 따르면 탄력성이 높은 아동, 청소년의 인지적, 정서적 자기조절이 높다고 하였다. 이들이 말하는 인지적 자기조절은 행동을 이끌어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집행기능과 관련이 있고, 전전두피질 부위와 연관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나무보다 숲을 보는 능력이고, 전체를 조망하는 메타 인지와도 상관이 있다. 전체를 조망하기 때문에 결과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에 벌어지는 갖가지 난관을 미리 가늠할 수 있고, 이는 과제의 중요한 부분에 대한 주의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과제를 완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인지적 자기조절을 잘할 수 있으면 정서적 자기조절력 역시 향상된다. 정서적 자기조절이란 어려운 상황에서 스스로 냉정함을 유지하고, 타인의 부적 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며, 자기 기분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는데 매우 능숙해서  타인과의 효과적이고 지지적 관계를 개발하고 유지하는 능력을 말한다. 


은혜를 알고, 은혜에 보답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주는 심리적 효과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행복한 삶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아이들은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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