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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에 대하여. 1

우리 아이 기 죽이지 말라.

 내 아이의 기가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름 있는 브랜드의 옷을 입히고, 

좋은 차를 사서 학교까지 등교시키며, 

더 넓고 좋은 집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돈을 많이 번다. 

그래야 아이의 자존감은 상처입지 않고,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랄 것이다.  


부모들은 생각한다. 아이가 어린 시절 겪은 작은 마음의 상처가 훗날 잊지 못할 아픔이 될 거라고. 

이를 심각한 말로 요즘에는 트라우마라고 한다. 

그래서 조금 야단이라도 치려면 득달같이 달려와 왜 내 아이 기를 죽이느냐고 대드는 부모가 있다. 


모 회사 임원의 아들이 자기 마음대로 근무하고, 동료 직원들에게 자기 부모를 들먹이며 갑질을 한 사건이 기사에 등장한 적이 있었다. 그때 부모는 자기 아들이 이 일로 상처를 받았을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아마 아이가 죄책감이라는 부적 정서를 경험하는 것이 아이의 자존감을 낮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부모가 아이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고 있다. 부모가 아이의 자존감을 훼손하는 것은 작은 일상에서 벌어진다. 그럼 우리는 과연 언제 아이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고 있을까?     


첫 번째로 부모가 아이와 함께 밥을 먹을 때다. 자녀와 함께 식사를 하는 시간은 매우 소중하다. 왜냐하면 같이 밥을 먹을 때 주로 대화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특히 아빠와의 대화는 식사자리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하루 중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할 수 있는 때는 저녁이다. 직장에서 갖가지 힘든 일을 하고 돌아와 마주 앉은 아빠와 엄마, 그리고 아이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아니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준비를 하고 있을까?      

스트레스가 높은 상태의 가족들이 나누는 대화는 결과, 능력, 겉모습에 주로 국한된다. 아빠는  아이들의 힘들어하는 표정이 마음에 안 들고, 차려진 음식 맛이 별로이며, 편식하는 아이들에게 짜증이 나고, 밥 먹는 와중에 휴대폰으로 친구와 연락을 주고받는 모습에 화가 솟구친다. 엄마는 현관 앞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신발, 아무 데나 벗어놓은 옷가지들, 켜져 있는 화장실 등을 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로 가득 차 버린다. 이런 기색을 눈치챈 아이들은 빨리 자기 방으로 도망갈 궁리만 하며 빠르게 밥을 먹으면서 휴대폰을 들여 다 본다.   

   

아이들은 미성숙한 존재다. 다시 말해서 조금씩 성장하면서 성숙한 한 개인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 따라서 실수나 실패는 필수다. 그러나 스트레스에 휩싸인 부모가 보이는 반응은 아이에 대한 이해가 아닌 질타일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기억에 정서를 더하는 부위가 바로 편도체다. 이 편도체를 포함하는 중요한 정서처리 회로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시상-편도체 정서회로로 감각기관의 자극을 대뇌피질로 전달할 때 감정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상에서 편도체로 직접 이어지며, 빠르고 본능적인 정서적 반응 처리에 중요한 정서회로다. 기본적인 윤곽만을 전달해서 대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식하는 데는 부족하다. 예를 들어 부모가 화가 난 상태에서는 아이의 행동을 오해하고 야단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화가 난 부모는 시상 편도체 정서회로가 작동하고, 아이의 행동을 빠르게 중단시키기 위한 최선의 대응은 야단을 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피질-편도체 정서회로다. 피질의 감각 영역과 편도체를 연결하고 정서적 정보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보다 광범위한 맥락을 제공하는 회로다. 다시 말해서 상황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고려해 적절한 정서적 반응을 하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경로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이의 행동을 보고 화가 났다. 그래서 심호흡을 하거나 물을 마시거나 하는 자기조절 행동을 하거나 아내와 포옹을 하거나 함께 산책을 다녀오거나 집안 청소를 하면 스트레스 역치 수준이 높아진다. 다시 말해서 아이의 행동에 부정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이때 피질-편도체 정서회로가 작동한다. 아이 행동의 맥락을 이해하고, 부모의 의견을 잘 전달하기 위해 효과적인 방법을 고민하게 한다.     


다시 자녀와 함께 하는 저녁 식사 자리로 돌아가 보자. 함께 밥을 먹는 자리는 심리적으로 긴장이 풀어지기 쉽고, 평상시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꺼내기 편하다. 그래서 밥상머리에서 아이를 칭찬하고 격려할 준비를 미리 해두는 것이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아이를 칭찬하려면 아이가 보여준 노력, 행동의 과정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그 노력과 행동의 과정을 살펴보는 일이 바로 관심(觀心)이다. 즉, 마음을 보는 일이다.    심리학에서 인간의 정동(감정)은 행동에 있다고 하였다. 


아이의 노력과 행동의 과정을 살펴보는 일이 아이의 마음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아이가 하는 말보다 아이가 하는 행동 속에 감춰진 마음을 들여다보려면 바로 부모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그것이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첫 번째 방법인 셈이다.    

 


아이의 자존감을 훼손하는 두 번째 일상은 바로 시험이다. 많은 학교가 아이들의 노력에 등급을 매기거나 점수를 부여한다. 그리고 부모는 아이의 등급과 점수에 주목한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이가 받은 점수나 등급의 뒤에 가려진 노력은 사라진다


눈을 뜨기 힘든 아침마다 어렵게 일어나 학교를 향해 걸어간 아이의 노력.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를 마주하고 창피함을 무릎 쓴 채 친구에게 물어봤음에도 대답해 주지 않았던 아이의 아픔. 

선생님의 설명을 두 번, 세 번 들어도 이해할 수 없었을 때 겪은 좌절감. 

그 모든 일들이 등급과 점수로 치환되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평가된다.      


성적이 우수한 아이도 다르지 않다. 머리가 좋아서 성적이 좋다는 평가를 받거나, 잘할 줄 알았다는 기대를 접한 아이는 실패할 경우 자기 능력의 한계가 드러날까 두려워 어려운 과제를 회피한다. 그래서 칭찬은 과정과 노력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결과와 능력에 초점을 둔 칭찬은 현재의 노력에 충실하지 못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결과에 대한 불안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결과에 따라 자신의 능력이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아이가 이러한 위험을 접하게 만드는 방법이 바로 결과와 능력에 대한 칭찬인 셈이다.    

 

‘Feedback for Learning’에 보면 피드백에 대해 기억해야 할 7가지가 소개되어 있다. 그중 4번째에 ‘우리가 평가에 대한 피드백으로 등급을 매길 때, 아이들은 습관적으로 등급만 읽는다.-When we give a grade as part of our feedback, students routinely read only as far as the grade.’고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들 자신도 등급이나 점수만을 보고 자신의 능력을 비관하며 자존감에 상처를 받고 있을 때 교사나 부모는 아이의 노력과 행동의 과정에 대해 칭찬과 격려(激勵)를 해주어야 한다. 그때 아이는 일만(萬)의 힘(力)을 얻어 다시 일어서게 되며 실패나 좌절에도 다시 회복하는 자존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아이의 자존감을 훼손하는 마지막 일상은 바로 집안일이다. 더 정확히 말해서 집안일을 대하는 태도다. 집안일은 가족의 생활을 위해 집에서 해야 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따라서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할 수 있는 일들의 범위가 확장된다. 물론 아이에게 집안일을 온전히 맡기는 것은 학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집안일을 집 안에서 사는 모든 이들이 함께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기는 태도다.      

그렇다면 왜 집안일이 아이의 자존감과 관련이 있을까? 보통 집안일은 엄마나 아빠가 하는 일로 여긴다. 아이가 집안일을 하려고 나서면 부모는 아이의 일을 가로챈다. 아이의 미숙한 움직임으로 다치거나 혹은 망가지거나 혹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차라리 부모가 해버리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빠르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다. 이때 아이는 자존감이 훼손된다. 자존감이란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사랑받을 만한 존재이자, 어떤 성과를 낼만한 유능한 사람이라는 자기 인식이다. 그런데 집안일이라는 과제를 해낼만한 유능함을 갖지 못했다는 좌절이 생기게 되고, 이러한 자기 인식은 결국 자신의 유능함을 발휘할 영역이 아니므로 집안일은 부모나 혹은 엄마가 해야 할 일로 치부해서 상처받은 자신의 자존감을 위로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정을 비롯한 학교나 학원에서 공통적으로 아이의 자존감을 훼손하는 경우를 살펴보자. 아이들이 어릴 때 많은 어른들이 조건적 사랑을 보여준다. 시험 성적이 좋으면 휴대폰을 바꿔 주겠다거나, 게임기를 사준다는 등의 약속을 한다. 일종의 미끼인 셈이다.      

공부라는 매슬로우의 자아실현 욕구는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여기에 물질적 보상을 한다. 아이의 노력에 물질적 보상이 연결되면 노력은 자율성을 잃어버린다. 즉, 보상 때문에 노력을 하는 것이고, 이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아닌 인정의 욕구로 낮아지는 것이다.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려는 행위가 오히려 아이의 자존감을 훼손하는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다.      


물론 모든 보상이 아이의 자존감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스키너의 고전적 반사 행동이 그려지는 보상 만능주의는 반드시 아이의 자존감을 훼손한다. 아이가 노력한 과정에 기울이는 관심과 격려가 물질로 대체되는 순간, 노력의 가격은 곧 물질의 가격과 같아지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스스로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마음이다. 아이가 스스로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려면 유능함을 발휘해야 한다. 아이가 유능함을 발휘하려면 부모가 기회를 주어야 하고, 실패나 실수에도 노력을 칭찬하며 격려해주어야 한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기울인 노고를 칭찬해야 한다. 자존감은 결국 스스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더불어 타인에 대한 믿음이 탄탄할 때 높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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