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너의 즐거운 시간 ㅣ 2022년 12월
절대 집으로 가져올 수 없는 좋은 것이 있다. 바로 아들이 학교에서 만든 눈오리다. 대신 하얗고 미끈한 똥그란 오리를 담은 사진과, 이 눈오리를 만들던 순간을 기억하며 이야기할 때 아들의 얼굴에 담긴 행복감이 집으로 와서 내게 전해졌다.
눈오리 사진을 한참 들여다 보면서, 집에 가져올 수 없는 선물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건 시간이 지나면서 녹아 없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에,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과만 나눌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특별하게 느껴졌다. 함께함의 선물이라 이름 붙일수도 있겠다.
아들은 태어나 세 살까지는 눈이 내리지 않는 지역에서 살았다. 미 서부 캘리포니아 남쪽의 베이 지역은 일년 내내 활동하기 좋은 날씨를 자랑하지만, 눈이 귀하다. 한 번은 아이 프리스쿨 친구가 휴가에 스키장에 놀러갔다 오면서 아이스박스에 눈을 담아 와 친구들에게 보여준 적도 있었다. 책과 TV에서만 보던 흰 눈 한 뭉치를 두고 옹기종기 모여들던 아이들이 생각난다.
아이 네 살때 한국에 귀국하고, 다행인지 그 겨울에는 유난히 눈 오는 날도, 눈이 아주 많이 내려 소복히 쌓인 날도 많았다. 아들은 그해 겨울 난생 처음으로 하얗게 눈 쌓인 세상을 본 것이다. 눈이 아주 많이 온 어느 날, 당장 아이의 방한부츠와 방한장갑을 사오고 모자도 씌워 밖으로 나갔다. 진짜 눈을 그것도 아주 많은 눈으로 하얗게 변한 세상 속에서 아이들은 내내 까르르거리며 뛰어다녔다. 두 아이와 함께 조그만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면서 한참을 그러고 같이 놀았다. 그럴 때면 나도 어릴 적 눈밭에서 뒹굴던 행복한 기억이 슬며시 찾아온다.
이제 그 시절은 지나갔고, 아들은 눈 오는 날 학교가 너무 좋다고 말하는 중학생이 되었다. 과거의 우리가 눈밭에서 함께 나눴던 즐거움은 이제 아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재생되고 또 새로운 버전으로 재탄생하고 있겠지. 눈오리를 함께 만들고, 서로가 만든 눈오리를 건네고 받으며 그 시간 속에 공존하는 대상이 나에게서 친구로 옮겨간 아이. 그리고 나는 이제 함께 눈을 맞으며 뒹구는 사람에서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으로 살짝 역할이 바뀌었다.
이런 경험도 큰애부터 해서 몇년 계속되니까 슬프고 아쉬운 마음은 점점 작아진다. 감정이 일긴 하지만 조금 떨어져서 볼수 있게 되었달까. 대신 얼마간의 시간이 더 흘러, 우리가 함께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마침 눈이 많이 내려 쌓인다면 가까운 운동장에 같이 가서 눈오리를 만들어 건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2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