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na Apr 30. 2023

아들이 잠들고 난 후

독립으로 완성되는 성숙한 관계 ㅣ 2021년 11월


둘째가 벌써 자러 들어갔다. 확실히 등교 주간에는 취침 시간이 앞당겨진다. 오늘은 웬일인지 조금 전까지 종알종알거리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아이의 자취가 그립다. 들어간 지 30분도 안 됐는데 말이다.


이런 날은 아이들 어릴 때도 가끔씩 있었다. 잘 때가 제일 예쁘고 천사 같은 건 맞는데, 어떤 날은 뭔가 날 가득 채우고 있던 것이 쑥 하고 빠져나가고 없어진 것 같은 상실감이랄지 공허함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보통은 아이들이 더 잘 느끼는 감정인 것 같긴 하다. 혼자 컴컴한 방에 누워 한없을 것 같은 고요를 감당하기 힘든 아이들은 잘 시간이 되어도 더 놀다 잘 거라고 하거나, 옆에서 책 읽어주는 내게 다른 책도 더 읽어달라고 하면서 함께 있는 시간을 연장하려고 했다. 그렇다고 같이 시간을 보내며 매 순간 좋았냐면 전혀 아닌데도, 혼자 남기가 싫어 분리되기를 미루곤 했었다.

오늘은 내가 그런 날이다.




사춘기를 잘 보내야 하는 이유는 부모에게서 잘 독립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오늘 같은 날이면 나 역시 아이들에게서 잘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성숙한 관계, 특히 사랑하는 두 사람의 관계는 함께 진하게 사랑을 나누며 탄탄한 유대감이 생겨난 후, 잘 독립하는 단계를 지나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게 아닐까 싶다.


아주 가까워져 두 사람이 딱 붙어있는 것이 익숙해지게 되면, 상대에게 기대고 있던 나를 똑바로 세우는 일에도 꽤 힘을 써야 한다. 그래서 그냥 적당히 기대인 채 경계 없이 두루뭉술하게 뭉쳐져, 나인 듯 남인 듯 알듯 말듯한 사이가 되기도 쉬운가 보다. 그런 관계는 결국에는 퍽 난감한 관계가 되기 마련이다. 너무도 당연히 나는 네가 될 수 없고 너도 내가 될 수 없는 거니까.


양육은 참 절절하게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느끼는 친밀감은 굉장히 커다란 긍정의 감정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이 꼭 목적 없는 투쟁 같다가도 때때로 이번 생에 아이들의 엄마가 되게 해 주신 것에 감사인사가 올라오는 이유이겠지.


커다란 선물에는 그만큼 복잡한 주의사항이 딸려오곤 한다. 재료를 구하고 만드는 과정이 어려운 물건일수록 보존에 더 큰 힘을 써야 하듯이 말이다. 세상 귀한 친밀감을 선사해 주는 관계 역시 꽤 까다롭게 다루어주어야 오래도록 그 빛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 같다. 아이들과 나, 우리 이 가깝고 또 가까운 관계를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 이유다.


하여, 한밤중 아이가 방으로 들어가고 나만 남은 지금, 아이의 자취를 그리워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귀하디 귀한 혼자만의 시간 아니었냐며.



2021년 11월

중2 아들 (코로나) 등교 주간에 쓴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