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함’이라는 마법
아이들과의 추억보따리가 얼마나 될까. 잠깐 생각에 잠겨 가늠해보니 보따리 가지고 안 될 것 같다. 추억창고가 있다. 나의 기억 안에 행복한 추억으로 가득 찬 커다란 창고가 있다고 생각하니, 밥 한 끼 안 먹어도 될 것 같다. 든든하다.
오늘 유난히 크게 다가온 기억 하나. 큰아이 프리스쿨 다닐 때, 좋아하고 친하게 지내는 백인 아이가 있었다. 원생들은 백인 50: 비서구권 50 비율이어서 평소 지내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그 친구의 생일파티가 문제였다. 아이답게 며칠 전부터 딸에게 자기 생파에 오라고 초대를 했고 딸은 집에 와서 나한테 자랑을 했다. 집주소도 알려줬다며 숫자를 기억해서 내게 말해주었다. 그러나 여섯살 아이의 생파를 주관하는 건 본인이 아니라 부모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 다른 나라의 엄마가 우리 아이를 초대하지 않는 일은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었다.
당일에 딸에게는 적당히 무겁지 않게 하지만 거짓을 보태지는 않고 설명을 해주고, 대신 우리끼리 스페셜 데이를 보냈다. 평일에는 잘 들르지 않는 동네 반스앤노블에 가서 그림책도 사고 아이가 좋아하는 공작 재료들이 잔뜩 있는 마이클스에 가서 두고두고 집에서 만들기할 때 쓸 반짝이풀, 알록달록한 종이도 사서 어두워지고 난 뒤에야 집에 들어왔다.
자기 전까지 시간도 왠지 침울하게 보내기 싫어서 파자마파티 컨셉 놀이라며 스케치북에 파자마 파티라고 캘리그라피도 하고, 딸이랑 둘이 양갈래로 머리 묶고 잠옷 입고 킥킥 대며 사진 찍고 놀다가 지쳐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아이가 속상함을 완전히 잊고 그 시간을 즐겼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아이의 어두운 얼굴을 보는 것이 힘든 나를 위한 셀프 처방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왠지 요즘도 아이들과 낄낄거리며 별 거 아닌 장난을 치는 시간이면, 그때 그런 일들이 추억이 되어 방울방울 나를 간지럽힌다. 우리가 함께 지나온 시간들, 내가 어린 아이들을 보호했다지만 실은 내가 잡은 아이들 손의 온기가 나의 외로움을 견디게 해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야자(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온 아들과 한바탕 놀고 다시 각자 영역으로 돌아갔다. 아들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딸은 거실에서 과제때문에 컴퓨터를 붙잡고 있는 걸 보고 나는 안방으로 들어오면서, 오늘치 행복을 잘 누리고 평화로운 시간으로 입장하는 기분이었다.
고작 15분 정도지만 그런 시간에는 마치 추억창고에 들어와 있는 것같은 마음이 든다. 짧지만 진한 함께함의 마법에 걸렸던 것만 같다.
2023. 6. 20